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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개혁을 위해서 실시한 세종의 여론조사

[역사로 살펴보는 토지문제 ②] 숙의민주주의로 완성한 세종의 공법개혁

등록|2017.10.31 17:12 수정|2017.11.01 09:10
토지문제는 사람이 사는 모든 역사의 공간에서 언제나 중요했습니다. 오늘날의 토지 문제는 전세값, 부동산 투기, 주택 모기지 대출 등의 이름으로 우리의 삶에 숱하게 다가옵니다. 토지문제를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정권이 바뀌기도 하고 민생의 질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토지개혁으로 시작한 조선의 건국에서부터 그 양상과 전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토지문제가 시대와 역사의 공간마다 어떤 문제를 야기했고 우리의 삶은 그와 얼마나 연관돼있는지 말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똑같은 문제 앞에서 다른 이름으로 같은 씨름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기자 말



세종이 왕위를 물려받은 1418년은 조선이 건국된 지 26년밖에 안 된 시점이다. 그야말로 신생국가인 조선의 통치자 세종은 나라의 모든 기틀을 제대로 확립해야 할 막중한 사명감을 가졌다. 그중에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세금 문제이다. 누구에게 거두어 누구에게 사용할 것이냐의 문제는 공평과 정의의 핵심을 이룬다. 세종은 당연히 이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구체적인 개혁에 착수한다.

조선의 관료는 과전법 개혁을 통해 수조지에서 1/10의 전세(토지세)를 월급으로 받았다. 문제는 전세의 기준인 수확량이다. 매년 수확량이 제각각이다. 이 수확량을 확인하고 전세의 기준을 확인하는 권한은 각 고을의 수령이 갖고 있었다. 수령은 자신의 재량으로 전세 기준을 확인하다 보니 농민들은 재량권을 가진 수령에게 각종 향응을 대접했다. 결과적으로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은 기준치보다 낮은 세금을 내었고 상대적으로 가난한 농민은 과다한 세금을 부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것이 세종의 고민이었다. 어떻게 하면 관료의 재량권을 최소화하여 부패의 여지를 줄이고 농민들에게 공평하게 과세할 수 있는지 말이다. 세종은 '담헙손실법'을 주요 문제의 근원으로 파악하고 개선하고자 했다. '답험손실'이란 고을의 수령이 과도한 재량권을 가지고 수확량을 확인하고 조세 기준을 결정한 것을 말한다. 세종은 답험손실에서 공법으로 개혁해 정액 세금을 매기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보았다. 그렇게 되면 관료의 재량이 축소되고 부패가 일소되어 농민들의 부담이 덜해질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정액 세금은 수확량의 기준이 매년 다르고 평균 수확량이 높은 지역과 낮은 지역 간의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 세종은 혼자 고민하지 않았다. 세종 9년인 1427년 직접 과거시험문제에 국정의 주요 현안을 묻는다. "공법을 사용하면서 이른바 좋지 못한 점을 고치려고 한다면 그 방법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라는 과거시험 문제를 제시한다. 이를 기점으로 신료들과 치열한 토론과 모색을 전개한다.

백성들에게 직접 의견을 물어본 세종대왕

세종대왕(1397~1450) ⓒ 김덕영


세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법 개혁이 주요 지주들이었던 관료들의 반대에 부딪치자 직접 백성들의 의견을 물어보자는 생각에 이른다. 왕이 곧 절대 권력이었던 조선시대에 이미 세종은 백성들을 공론화 과정에 참여시킨다. 세종은 재위 12년 공법의 찬반 여론조사를 무려 5개월에 걸쳐 진행했다. 양반 관리들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백성들에게까지 묻도록 했다. 그 결과 찬성은 9만8657명이었으며, 반대는 7만4149명이었다. 총 17만2806명으로부터 여론을 수렴한 것이다.

대단위의 여론조사 이후 세종 20년에는 공법을 시험적으로 실시하기에 이른다. 경상도, 전라도 양민 중 공법 찬성을 하는 비율이 3분의 2가 되자 1차 시험 공법을 실시한다. 그야말로 활발한 공론화, 끊임없는 토론 그리고 시범사업까지 모든 민주적 절차를 거친 셈이다. 15세기 조선은 가장 민감한 세금의 문제를 놓고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하기 힘든 숙의민주주의의 합리적 절차를 집요하게 밟은 것이다. 결국 세종 공법은 재위 26년 만에 최종 제정되었다.

세종 공법의 골자는 고을 수령의 재량권에 크게 의존하는 기존의 답험손실 과세 방식을 전면적으로 개편하여 정액세제인 공법으로 전환한 것이다. 공법은 정액세제의 단점을 보완하여 전분6등법과 연분9등법을 핵심으로 만들어졌다. 즉, 토지를 비옥도에 따라 6개의 등급으로 나누고, 다시 그 해 농사의 풍흉에 따라 9개 등급으로 나누어 차등 있게 세액을 산정하고 징수하게 한 것이다.

"진실로 과세 방식은 금액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무거운 짐도 잘 실으면 말이 거뜬하게 운반할 수 있지만 가벼운 짐도 잘못 실으면 말에게 큰 고통을 줄 수 있다. 적절한 방식으로 부과하면 별 어려움 없이 부담할 수 있는 조세도 잘못 부과하면 국민을 궁핍하게 하고 부의 생산력을 파괴할 수 있다." - <진보와 빈곤> 396쪽 

세금을 어디에서 어떻게 걷느냐의 문제는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하다. 세금의 성격에 따라 민생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헨리 조지가 생각한 좋은 세금의 기준은 중립성, 경제성, 투명성, 공평성이다. 중립성은 세금이 경제 자체를 위축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고, 경제성은 조세 징수 과정이 간명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투명성은 조세 징수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는 원칙이고, 공평성은 사회의 혜택에 비례해서 부담을 지게 하는 원칙이다.

15세기 세종이 공법을 시행하는 과정은 오늘날 합리적 세금의 원칙에 비추어볼 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공법 개혁을 통해 세금 징수 과정이 명료해져서 관료의 무분별한 재량권을 제한할 수 있었고 확실한 기준과 체계화를 통해서 누구도 납득할 만큼의 투명성이 확보되었다. 무엇보다 수확량에 비례하는 기준을 제시함으로 공평한 과세를 지향했다. 또한 이 과정이 끊임없는 토론과 숙의의 연속이었으며 지방단위에서의 시범실시를 거쳤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각종 개혁 현안 가운데 가장 갈등이 치열하고 어려운 문제가 오늘날도 역시 세금 문제이다. 더군다나 국민 대다수의 자산 80% 이상이 잠식되어 있는 부동산에 대한 세금 여부는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이다. 숙의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문재인 정부는 세종의 민주적 세금 개혁의 길에서 새로운 가능성의 길을 발견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당사자인 깨어있는 시민들의 관심과 토론 그리고 참여가 있을 때 의미 있는 개혁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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