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아이 사이에 '오직' 하루인 날
[시골에서 만화읽기] 마스다 미리 <너의 곁에서>
마스다 미리 님 만화책 <너의 곁에서>(이봄 펴냄)는 <주말엔 숲으로> 하고 이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너의 곁에서>를 펴면 첫머리에 어머니하고 아이가 주고받는 말이 나와요. 아이는 학교에서 '내가 태어난 날 이야기'를 집에 여쭙고서 학교에서 말하라는 숙제를 받습니다. 아이는 이 숙제를 어머니한테 들려주고, 어머니는 아이 말을 듣고서 가만히 생각에 잠기더니 한 마디를 해요.
"엄마, 내가 태어난 날 말인데, 어떤 날이었어?" "알고 싶어?" "응!!" "특별한 날 이야기니까 차 마시면서 천천히 할까." (9쪽)
"엄마는 그래서 알았지. 타로가 오늘 태어나는구나. 왜 거기 병원 앞에 커다란 졸참나무가 있잖아." "응." "졸참나무 잎도 바람에 흔들리면서 '기뻐! 기뻐!' 하고 말했어." "나뭇잎이?" "응. 엄마에게는 그렇게 들렸어." (12쪽)
어머니하고 아이가 밥상맡에 나란히 앉아서 찻잔을 손에 쥡니다.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두르지 않으나 그렇다고 미적거리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낸 숙제이기 앞서 어머니하고 아이 사이에 흐르는 삶과 사랑이 얽힌 이야기인 터라, 느긋하게 나누려고 하지요.
아이는 처음에 어머니가 왜 바로 이야기를 안 해 주나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시나브로 풀어놓는 이야기를 듣고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겠지요. 어머니하고 아이 사이에 오직 하루 있는 날일 뿐 아니라, 서로 두 눈으로 처음 마주한 날이거든요.
아이는 제가 태어난 날을 어머니가 또렷이 떠올리는 모습에 놀라기 일쑤예요. 그러나 아이가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서 어버이 나이가 되면, 어버이가 된 아이로서 새롭게 아이를 낳으면 '새로 낳은 아이하고 얽힌 일'을 거의 모두, 때로는 송두리째, 낱낱이 떠올릴 만하지 싶어요.
"잎에 글씨를 쓸 수 있지. 자, 연필 대신 작은 나뭇가지로." "옛날에는 이걸로 편지 썼던 거 아냐?" "그럴지도. 학교 교과서도 잎으로 되어 있으면 재밌겠다." (25쪽)
"'가르쳐 주고 싶은 사람'이 타로가 좋아하는 사람이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건 좋은 거지!" "엄마는 날 좋아해서 가르쳐 준 거야?" (35쪽)
해질녘에 가랑잎을 모아서 불을 피우곤 합니다. 겨울을 앞두고 이제 잎이나 줄기가 그리 많이 돋지 않으니, 드문드문 모닥불을 피웁니다. 아이들한테 딱히 말하지 않고서 마당에서 불을 피우면, 두 아이는 어느새 알아채고는 슬금슬금 마당으로 나와 불가에 앉습니다.
가을에 봄에 여름에 마당에서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시골집이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서 숲에 느긋하게 마실을 다닐 수 있는 시골집이란. 자전거를 조금 달리면 바다가 가까운 시골집이란.
'아이를 돌보며 숲 곁에서 사는 아주머니'를 중심으로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하나로 묶인 만화책 <너의 곁에서>에 나오는 아이는 날마다 숲을 가로질러서 학교를 다닌다고 해요. 일부러 숲길을 가고, 좋아서 숲길을 간다지요. 어머니하고도 곧잘 숲마실을 하면서 숲 이야기를 배워요.
만화책을 읽는 동안 저는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숲 이야기를 들려주나 하고 헤아려 봅니다. 즐겁게 하루를 짓는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불을 피우면서 피어오르는 불꽃하고 연기가 무엇인가를 얼마나 차근차근 알려주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선생님, 저 밤나무는요, '친절한 나무'라고 엄마가 이름 붙여 줬어요. 친절한 나무는 친절하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든지 해도 된대요." "어떤 거라도?" "네. 말하기 힘든 마음 같은 것도요." (77∼78쪽)
"선물은 뭐야?" "오! 질문 잘하셨습니다. 봐 봐. 이 병에 체코의 공기를 담아 올게!!" (83쪽)
만화책에 나오는 아주머니는 체코라는 나라로 여러 날 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아이한테 '체코 바람'을 선물로 줍니다. 그래요. 그렇지요. 우리가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마실을 가든, 부산을 떠나 광주로 마실을 가든, 우리는 새로운 고장에서 새로운 바람을 누리고 싶습니다. 한국을 떠나 일본이나 중국으로 마실을 갈 적에는 일본 바람이나 중국 바람을 쐬지요.
새로운 바람을 쐬면서 새로운 마음이 됩니다. 숲에서도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새로운 마음으로 웃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새로운 기쁨을 지핍니다.
돈으로 치르지 않고 작은 병에 담아 온 바람 한 줄기가 선물이 되어요. 작은 엽서에 적은 글월이 먼곳에 사는 이웃한테 선물이 되어요. 때때로 전화를 하는 목소리가 동무한테 선물이 됩니다. 어머니한테서 배운 '숲 나무 이야기'를 스스로 좋아하는 사람한테 선물처럼 들려줍니다.
나는 네 곁에서 즐겁게 삶을 꾸립니다. 너는 내 곁에서 즐거이 살림을 가꿉니다. 우리 곁에 있는 바람을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새로운 하루를 되새깁니다. 십일월에 만화책 한 권 곁에 두면서 싱그럽습니다. 다만, 이 만화책 이름 "너의 곁에서"는 "네 곁에서"로 손질해야지요. 한국말은 '너의'가 아닌 '네'입니다.
▲ 겉그림 ⓒ 이봄
"엄마는 그래서 알았지. 타로가 오늘 태어나는구나. 왜 거기 병원 앞에 커다란 졸참나무가 있잖아." "응." "졸참나무 잎도 바람에 흔들리면서 '기뻐! 기뻐!' 하고 말했어." "나뭇잎이?" "응. 엄마에게는 그렇게 들렸어." (12쪽)
어머니하고 아이가 밥상맡에 나란히 앉아서 찻잔을 손에 쥡니다.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두르지 않으나 그렇다고 미적거리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낸 숙제이기 앞서 어머니하고 아이 사이에 흐르는 삶과 사랑이 얽힌 이야기인 터라, 느긋하게 나누려고 하지요.
아이는 처음에 어머니가 왜 바로 이야기를 안 해 주나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시나브로 풀어놓는 이야기를 듣고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겠지요. 어머니하고 아이 사이에 오직 하루 있는 날일 뿐 아니라, 서로 두 눈으로 처음 마주한 날이거든요.
아이는 제가 태어난 날을 어머니가 또렷이 떠올리는 모습에 놀라기 일쑤예요. 그러나 아이가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서 어버이 나이가 되면, 어버이가 된 아이로서 새롭게 아이를 낳으면 '새로 낳은 아이하고 얽힌 일'을 거의 모두, 때로는 송두리째, 낱낱이 떠올릴 만하지 싶어요.
"잎에 글씨를 쓸 수 있지. 자, 연필 대신 작은 나뭇가지로." "옛날에는 이걸로 편지 썼던 거 아냐?" "그럴지도. 학교 교과서도 잎으로 되어 있으면 재밌겠다." (25쪽)
"'가르쳐 주고 싶은 사람'이 타로가 좋아하는 사람이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건 좋은 거지!" "엄마는 날 좋아해서 가르쳐 준 거야?" (35쪽)
▲ 속그림 ⓒ 이봄
가을에 봄에 여름에 마당에서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시골집이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서 숲에 느긋하게 마실을 다닐 수 있는 시골집이란. 자전거를 조금 달리면 바다가 가까운 시골집이란.
'아이를 돌보며 숲 곁에서 사는 아주머니'를 중심으로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하나로 묶인 만화책 <너의 곁에서>에 나오는 아이는 날마다 숲을 가로질러서 학교를 다닌다고 해요. 일부러 숲길을 가고, 좋아서 숲길을 간다지요. 어머니하고도 곧잘 숲마실을 하면서 숲 이야기를 배워요.
만화책을 읽는 동안 저는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숲 이야기를 들려주나 하고 헤아려 봅니다. 즐겁게 하루를 짓는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불을 피우면서 피어오르는 불꽃하고 연기가 무엇인가를 얼마나 차근차근 알려주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선생님, 저 밤나무는요, '친절한 나무'라고 엄마가 이름 붙여 줬어요. 친절한 나무는 친절하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든지 해도 된대요." "어떤 거라도?" "네. 말하기 힘든 마음 같은 것도요." (77∼78쪽)
"선물은 뭐야?" "오! 질문 잘하셨습니다. 봐 봐. 이 병에 체코의 공기를 담아 올게!!" (83쪽)
만화책에 나오는 아주머니는 체코라는 나라로 여러 날 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아이한테 '체코 바람'을 선물로 줍니다. 그래요. 그렇지요. 우리가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마실을 가든, 부산을 떠나 광주로 마실을 가든, 우리는 새로운 고장에서 새로운 바람을 누리고 싶습니다. 한국을 떠나 일본이나 중국으로 마실을 갈 적에는 일본 바람이나 중국 바람을 쐬지요.
새로운 바람을 쐬면서 새로운 마음이 됩니다. 숲에서도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새로운 마음으로 웃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새로운 기쁨을 지핍니다.
▲ 속그림. 마음에만 담은 말을 나무 곁에 서서 손을 가만히 짚고서 마음으로 속삭이는 주인공 아주머니 모습. ⓒ 최종규
돈으로 치르지 않고 작은 병에 담아 온 바람 한 줄기가 선물이 되어요. 작은 엽서에 적은 글월이 먼곳에 사는 이웃한테 선물이 되어요. 때때로 전화를 하는 목소리가 동무한테 선물이 됩니다. 어머니한테서 배운 '숲 나무 이야기'를 스스로 좋아하는 사람한테 선물처럼 들려줍니다.
나는 네 곁에서 즐겁게 삶을 꾸립니다. 너는 내 곁에서 즐거이 살림을 가꿉니다. 우리 곁에 있는 바람을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새로운 하루를 되새깁니다. 십일월에 만화책 한 권 곁에 두면서 싱그럽습니다. 다만, 이 만화책 이름 "너의 곁에서"는 "네 곁에서"로 손질해야지요. 한국말은 '너의'가 아닌 '네'입니다.
덧붙이는 글
<너의 곁에서>(마스다 미리 글·그림 /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6.9.23.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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