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자전거 대여료, 튀김집 사장까지 나오는 '특종' 교과서

[bulgom의 교육현장(18)] 서울대영초 6학년들이 쓴 <우리가 만드는 배움길>

등록|2017.11.03 16:13 수정|2017.11.03 16:13

▲ 자신들이 만든 교과서를 들고 있는 서울대영초 6학년 학생들. ⓒ 대영초


학교에서 찾아가는 방법, 버스 번호, 자전거 이용요금, 물 놀이터 운영시간, 건어물집 사장과 튀김집 사장 인터뷰….

학생들이 학생들을 위해 만든 '꼼꼼' 교과서

이런 내용이 모두 들어간 정말 '꼼꼼'한 교과서가 나왔다. 이처럼 보기 드문 '특종' 교과서의 저자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로에 있는 대영초 6학년 3개 반 전체 학생 56명.

그래서 이 교과서의 이름도 <우리가 만드는 마을 배움길>이다. 지난 26일 출판기념회에서 처음 공개된 교과서 표지엔 '지은이: 대영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란 글귀가 찍혀 있었다.

119쪽에 이르는 교과서를 펼쳐봤다. 학생들이 직접 쓴 마을의 역사, 문화재, 동네 시장과 숲, 도서관, 숙박시설 등이 적혀 있다. 한 페이지마다 보통 2장 이상의 사진도 들어 있다. 대부분 학생들이 직접 찍은 것이다.

학생들은 지난 8월 28일부터 9월 25일까지 모두 16시간에 걸쳐 사전조사와 현장탐방, 마을교과서 만들기 등의 활동을 펼쳤다. 사회와 국어 교과, 그리고 창의적체험활동을 한데 묶은 프로젝트 학습을 벌인 것이다.

이 학생들은 9개 조로 할일을 나눠 맡은 뒤, 발품을 팔며 직접 인터뷰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그런 뒤 교과서에 실을 글을 썼다.

▲ 아이들이 만든 교과서 표지. ⓒ 윤근혁


이 과정에서 담임교사와 영등포구청 마을누리 활동가 등이 아이들과 함께 했다. 진행은 양천 나눔교육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맡았다. 이 학교가 '마을결합형학교 공모 사업'에 응모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700만 원을 지원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교과서는 양화 한강시민공원 주차요금과 자전거 대여 요금까지 적혀 있을 정도(78쪽)로 자세하다. 기계공구 상가 문 여닫는 시간(94쪽)도 적혀 있다.

'사러가 시장' 상인의 기쁨과 보람 담은 교과서

이 뿐만이 아니다. 이 학교 주변에 있는 '사러가 시장'의 경우 튀김집 사장 인터뷰 내용도 다음처럼 담겨 있다.

"45년 여간 오징어 튀김, 김밥, 순대 등을 골고루 판매하는데 재고가 남지 않고 다 팔릴 때와 6남매가 잘 자라서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어가는 모습이 가장 기쁘고 뿌듯하다."

자세해도 너무 자세하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56명의 학생이 점찍은 곳을 직접 방문해 현장을 취재한 뒤 심층 인터뷰까지 벌였기 때문이다.

일반인이라면 평생 경험하기 어려운 교과서 만들기. 이를 초등학교 때에 직접 만든 아이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 교과서 단원 맨 마지막 페이지마다엔 학생 소감이 적혀 있다.

"여의도에서 간식을 먹어서 좋았다. 바람의 길에 올라갔는데 바람이 안 불어서 아쉬웠다. …다음에도 꼭 가보고 싶다. 하지만 교실에서 자료 찾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손도 아프고, 핸드폰으로 찾기가 힘들었다."(문준기)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탐방도 하고 자료 정리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부족하지만 점차 완성돼가는 것을 보니 묘한 성취감을 느켰다."(윤지수)

▲ 교과서 제작을 위해 현장 취재를 하고 있는 서울대영초 학생들. ⓒ 대영초


이 교과서는 모두 300부를 찍었다. 지난 19일 이 학교 6학년 전체 5개 반 학생 93명에게 배부됐다. 학교 도서관 서재에도 30권을 꽂았다. 후배들도 이 교과서를 갖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협력으로 만든 교과서, 아이들 모습에 교사들도 놀랐다"

이 학생들은 지난달 26일 오후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교과서를 만들 때처럼 출판기념회 준비도 스스로 척척 해냈다고 한다. 다음은 이 학교 노유림 교사(6학년 부장)의 전언이다.

"프로젝트 수업은 결과물이 좋아야 자신감이 생기는데 교과서 나왔을 때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다. 당연히 출판기념회 분위기도 엄청나게 좋았다. 협력적 인성을 키워주기 위해 교과서도 만들고 출판기념회도 아이들이 연 것인데, 이것이 우리 아이들의 모습인가 할 정도로 교사들이 정말 놀랐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울시교육청 공식블로그<서울교육나침반>에도 실렸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