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 편집국장의 집요한 피아노 연습기
[리뷰] 앨런 러스브리저의 <다시, 피아노>
▲ 책표지 ⓒ 포노
갖고 태어난 가능성이 아니라 개인이 애써 노력해 얻은 가능성에 나는 더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용기를 얻는 이야기는 언제나 후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앨런 러스브리저의 <다시, 피아노>에도 박수.
1953년생 앨런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편집국장이다(지금은 은퇴했다). 이 책을 쓸 당시 오십 대 후반이었던 앨런은 목표 하나를 세운다. 피아노 곡 중에서 가장 어려운 레퍼토리로 악명(?)이 높은 쇼팽의 <발라드 1번 G단조>를 1년 안에 악보 없이 완주하기.
처음 보는 악보로 연주를 해내는 초견 실력은 좋은 편이었지만, 악보를 외워본 적은 없던 저자는 자신의 '늙은' 뇌가 새로운 정보를 과연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과연 그는 악보 없이 그 어렵다는 곡을 쳐낼 수 있을까.
어려운 목표를 달성하기에 너무 나이가 많다는 것만큼 시간이 너무 없다는 것 역시 앨런에게는 큰 문제였다. 더군다나 앨런이 목표를 세웠던 해는 가디언 역사상 가장 바쁜 한 해로 기록될 만했다.
줄리언 어산지의 위키리크스 사건에서 시작해 미디어 재벌 머독이 소유주로 있는 타블로이드지 <뉴스 오브 더 월드>의 폐간에 이르기까지 정말이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앨런은 딱 20분, 출근 전 20분에 피아노 연습의 모든 걸 걸기로 한다.
책에서 앨런의 열정은 정말 대단하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바쁜 와중에도 그는 기어코 피아노를 찾아내 연습을 강행한다. 인질로 잡힌 가디언 기자를 구하기 위해 리비아로 향했을 때조차, 불안한 호텔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잠시나마 쇼팽을 연주한다.
시간만 되면 음악 애호가 친구들을 불러와 합주를 하고, 기회만 되면 자신의 피아노 실력을 프로들에게 확인받는다. 선생 마이클의 한숨 소리에 기가 죽었다가도, 주말엔 연주실에 틀어박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이쯤 되면 집요하게 노력하는 능력이 그의 재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처음 목표였던 1년은 지키지 못했다. 악보를 보고 완주할 수 있는 실력은 됐지만, 안정적으로 완주하진 못했다. 앨런은 4개월을 더 연장하기로 한다. 2011년 12월, 그는 소극장에 친구들을 불러 모아 드디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쇼팽 발라드를 연주해낸다. 이로써, 16개월 전에 스스로에게 던진 두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얻었다. 물음 하나, '시간은 충분한가?' 이에 대한 답은.
"그렇다, 시간은 있다. 아무리 정신없이 바쁜 삶이라 할지라도 시간은 있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되면 시간이야 여기서 10분, 저기서 10분, 하는 식으로 야금야금 모으면 그만이다."
물음 둘,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이에 대한 답은.
"2010년 여름만 하더라도 쉰여섯 먹은 두뇌에 새로운 요령을 집어넣은 게 과연 가능한 일일지 의심스러웠다. 내 두뇌가 평생 보여주지 못한 자질들을 함양토록 하기 위해 1년 반 동안 노력했다. (중략) 중년에 접어든 지도 한참인 두뇌가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은 신경 회로를 전면 가동해 새로운 과제를 받아들일 유연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기분이 무척 삼삼했다. 그러니까, 아니, 너무 늦지 않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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