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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30분 복원한 <히트>, 이런 재개봉은 언제든 옳다

[프리뷰] 22년만에 재개봉,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연기 대결 백미

등록|2017.11.06 19:17 수정|2017.11.06 19:17

▲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대결을 펼친 마이클 만 감독의 고전 <히트>가 22년만에 재개봉된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알 파치노, 그리고 로버트 드 니로. 말이 필요 없는 최고의 명배우다. 두 배우가 뿜어내는 엄청난 연기 내공은 보는 이들을 단숨에 압도한다.

두 사람은 마이클 만 감독의 1995년작 <히트>에서 숨막히는 연기대결을 펼쳤다. 이 둘은 1974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 속편에 함께 출연한 바 있었다.

이 작품에서 로버트 드 니로는 젊은 시절의 비토 콜레오네를, 알 파치노는 전편에 이어 또 다시 마이클 콜레오네로 분해 명연기를 펼쳤다. 그러나 <대부> 속편의 시간적 구성 탓에 두 배우를 한 프레임에서 볼 수는 없었다. 따라서 두 배우가 제대로 연기력을 겨룬 작품은 <히트>가 유일하다. 여기에 발 킬머, 톰 시즈모어, 존 보이트 등 쟁쟁한 조연들이 두 사람의 연기 대결을 받친다. 애슐리 주드와 나탈리 포트만의 풋풋했던 모습을 보는 건 또 하나의 묘미다.

이 작품은 9일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첫 개봉 이후 22년 만의 재개봉이다. 개봉 당시엔 30분 분량이 잘려 나간 채 영화관에 걸렸는데, 이번엔 잘려나간 분량을 복원해 상영한다. 상영시간은 171분. 두 배우의 팬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다크나이트>에 영감 준 액션신 

이 작품은 오프닝부터 심상치 않다. 주인공 닐 맥컬리(로버트 드 니로)는 다른 팀원들과 손발을 맞춰 현금수송 차량을 노린다. 호송 담당 직원은 강도를 당하자 긴급 구조신호를 보낸다. 이제 80초 후면 지원병력이 도착한다.

닐 일당은 아주 치밀했다. 다른 물건엔 손도 대지 않고, 오직 돈세탁 업자 로저 반 잰트(윌리엄 피츠너)의 무기명 채권만 노린다. 현금은 추적 당하기 쉬운 반면, 돈세탁 업자의 무기명 채권은 즉각 현금화가 가능해서다. 또 범행을 저지를 때 80초에 타이머를 맞춰놓고 작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1초의 오차도 없이 일을 끝낸다.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이 시각 LA경찰국 강력반장 빈센트 한나(알 파치노)는 아내와 사랑을 나눈다. 그러다 현장 상황을 점검한 뒤 본능적으로 프로의 솜씨임을 직감한다. 이때부터 빈센트 한나와 닐 맥컬리의 대결이 펼쳐진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백미는 은행 총격신이다. 닐 맥컬리 일당은 LA시내 극동은행에 1200만 달러 가량의 현금이 모인다는 정보를 손에 넣는다. 이에 이 은행을 털기로 뜻을 모으고 수일 전부터 물밑 작업을 벌인다. 한나는 닐의 동선을 추적하면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다. 그러다 이들의 범행대상이 극동은행이란 첩보를 입수하고 즉각 출동한다. 이내 현장에서 마주친 두 사람은 그야말로 숨막히는 접전을 벌인다.

닐 맥컬리 일당과 한나 반장 사이의 총격신은 10여 분 넘게 이어지는데, 실제 상황처럼 느껴질 정도로 박진감이 넘친다. 이 대목은 마이클 만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히트>의 총격신은 이후 많은 액션영화에 영감을 불어 넣었다. 한 예로 <배트맨 리부트 - 다크나이트>에서 조커 일당이 은행강도 행각을 벌이는 오프닝 신은 카메라의 움직임, 장면 구성, 범행 방식 등이 <히트>와 유사하다. 심지어 조커 일당에 맞서는 은행 매니저를 맡은 배우가 <히트>에서 로저 반 잰트로 분한 윌리엄 피츠너였다. 여러모로 <다크나이트>의 오프닝신은 <히트>의 오마주(프랑스어로 '경의, 존경'을 뜻하는 말로, 영화에서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의 업적이나 재능에 경의를 표하는 것 – 글쓴이)인 셈이다.

실제 <다크나이트> 연출자인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국에서 열린 개봉 20주년 기념 상영회에 진행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놀란은 이때 "내 영화 <다크나이트>를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떠올리고 비주얼적으로 참조한 영화가 바로 <히트>"라고 밝혔다.

복원된 30분, 그 속엔....

▲ <히트>는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대결을 보는 것 만으로도 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첫 개봉 당시엔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대결, 그리고 강렬한 액션신 만으로도 좋았다. 그런데 첫 개봉 당시 잘려나간 30분을 복원한 171분 버전으로 보니 작품에서 단순한 액션활극 이상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에 복원된 30분 속엔 닐 맥컬리와 빈센트 한나의 드라마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빈센트 한나는 강력반장으로선 제격이다. 그러나 범죄자들 소탕하느라 두 번 이혼했고, 세 번째 아내와의 결혼생활도 순탄치 않다. 그럼에도 그는 조금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자, 아내에게 조차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그에겐 오히려 함께 일하는 동료 형사들이 가족이다.

닐 맥컬리 역시 마찬가지다. 일찌감치 범죄자의 길에 접어든 닐은 살벌하기 그지없는 어둠의 세계에서 살아남고자 스스로 관계의 여지를 차단했다. 그러나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만큼은 보스를 넘어 가장의 역할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어느 날 닐은 동료이자 부하인 크리스(발 킬머)가 아내 샬린(애슐리 주드)과 심한 불화를 겪고 있음을 직감한다. 이러자 닐은 샬린의 뒤를 밟고, 이내 샬린이 다른 남자와 외도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한다. 닐은 곧장 샬린에게 달려가  "크리스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줘. 그래도 안 될 땐, 내가 대책을 마련할게"라고 다그친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빈센트 한나와 닐 맥컬리는 서로가 속한 세계는 달랐지만, 자의든 타의든 보통의 삶을 빼앗겼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였다. 즉, 한나는 닐 같은 범죄자 때문에 삶이 무너졌고 닐 역시 한나 같은 경찰의 추적을 피하고자 관계맺기를 피해왔다는 의미다. 한나와 닐이 비벌리 힐스의 케이트 만틸리니 식당에서 나눈 대화는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닐 : 난 절대 (감옥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한나 : 그럼 작업을 벌이지마. 
닐 : 난 내가 잘하는 걸 해. 그게 작업이지. 자네는 자네가 잘하는 일인 나 같은 일당을 막아봐. 

한나 : 그럼 자네는 평범한 삶은 원하지 않나? 
닐 : 바비큐와 야구 게임이 있는 그런 삶? 그럼 자네는 그런 삶을 살고 있나?
한나 : 내 삶? 내 삶은 아니지. 

이 지점에서 빈센트 한나와 닐 맥컬리가 펼쳤던 접전의 본질이 드러난다. 한나는 보통의 삶을 빼앗긴 분노를 닐에게 표출하고, 닐 역시 관계단절에서 오는 외로움을 한나를 향해 뿜어낸다. 말하자면 서로를 향해 복수극을 펼쳤다는 말이다. 각각 한나와 날로 분한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는 각각의 캐릭터가 겪는 내면의 갈등을 노련하게 연기해 낸다. 이 작품 <히트>가 개봉 이후 22년이 지난 지금까지 명작으로 꼽히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난 솔직히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많았던 탓에 옛 영화의 리부트 내지 리메이크가 달갑지 않다. 오히려 원작의 재개봉이 더 반갑다. 특히 최고의 연기파 배우인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를 한 프레임에서 볼 수 있는 <히트>의 재개봉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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