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논두렁 시계' 제안한 국정원, 내가 강하게 질책했다"
7일 검찰 통해 입장 밝혀… "해외 도피 아냐, 조사 요청 오면 귀국할 것"
▲ 지난 2009년 6월 12일 당시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박연차 게이트' 수사와 관련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포함해 전체 21명을 기소하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수수 의혹 부분은 내사 종결했다는 내용의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사 보강: 7일 오후 6시 15분]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논두렁 시계' 보도 책임을 국정원에 돌리고 미국 도피 의혹을 부인했다.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에 따르면, 이인규 전 부장은 2009년 4월 21일 국정원 간부를 통해 "고가 시계 건은 언론에 흘려 적당히 망신주는 선에서 활용하고, 수사는 불구속으로 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내용을 전달 받았다. 앞서 같은 달 17일, 20일 원세훈 국정원장은 "동정 여론이 유발되지 않도록 노 전 대통령의 이중적 행태 및 성역 없는 수사의 당위성을 부각시키겠다"라는 보고를 받고 승인했다.
이인규 전 부장 "미국 도피 아니다"
이인규 전 부장은 지난 8월부터 해외 체류 중이다. 이때는 국정원 적폐청산TF(태스크포스)가 관련 내용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시점이다. 이 때문에 도피성 출국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최근 워싱턴D.C에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고, 북미민주포럼 등 교민단체들은 현상금 500달러를 걸고 그의 행방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이인규 전 부장은 '도피성 출국'을 부인했다. 그는 "일하던 로펌을 그만둔 후 미국으로 출국하여 여러 곳을 여행 중에 있다"며 "노 전 대통령 수사의 잘못을 회피하기 위해 해외로 도피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가 잘못한 점이 있어 조사 요청이 오면 언제든지 귀국해 조사를 받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전 부장은 논두렁 시계 보도 책임을 국정원에 돌렸다.
그는 "2009년 4월 14일 퇴근 무렵 강아무개 국장 등 2명이 저를 찾아와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노 전 대통령에게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면서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화가 난 제가 내일 오전 기자 브리핑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려 감사한 마음을 표시하겠다며 정색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정원이 이래도 되느냐며 강하게 질책하자 국정원 간부들이 사죄하고 황급히 돌아갔다. 이런 사실을 위에 보고했다"며 "논두렁에 시계를 버렸다는 보도가 연이어져, 국정원의 소행임을 의심하고 나름대로 확인해 본 결과 그 근원지가 국정원이라는 심증을 굳히게 됐다"라고 밝혔다.
이 전 부장은 과거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 대해선 "검찰이 시계수수 사실을 흘려 망신을 준 것 아니냐는 질문에 비보도를 전제로 국정원 관련 사실을 언급했는데 약속을 어기고 보도했던 것"이라고 했다.
당시 <경향>은 "권양숙 여자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언론보도 등은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는 이 전 부장의 발언을 보도한 바 있다.
다음은 이 전 부장이 검찰에 메일을 보낸 전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 도중 세상을 달리하신 것은 진실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하여 검찰이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일을 한 사실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일하던 로펌을 그만 둔 후 미국으로 출국하여 여러 곳을 여행 중에 있습니다. 이로 인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의 잘못을 회피하기 위하여 해외로 도피하였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하여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일은 없었으며 검사로서 소임을 다하였을 뿐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만일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하여 제가 잘못한 점이 있어 조사 요청이 오면 언제든지 귀국하여 조사를 받겠습니다.
아울러 노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 사건 보도와 관련된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노 전 대통령 수사 중인 2009. 4. 14. 퇴근 무렵 국정원 전 직원 강 모 국장 등 2명이 저를 찾아와 원세훈 전 원장의 뜻이라며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하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노 전 대통령에게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말하였습니다.
국정원이 노 전 대통령 시계 수수 관련 수사 내용을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들의 언행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화가 난 제가 '원장님께서 검찰 수사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오전 기자 브리핑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려 감사한 마음을 표시하겠습니다. 원장님께도 그리 전해 주십시오.'라고 정색하며 말했습니다.
이에 강 국장 등이 크게 놀라면서 '왜 이러시냐?'고 하기에 제가 화를 내면서 '국정원이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이냐?'고 강하게 질책하였습니다. 이에 강 국장 등 2명은 '자신들이 실수한 것 같다면서 오지 않은 것으로 해 달라'고 하고 사죄한 뒤 황급히 돌아갔으며 저는 이러한 사실을 위에 보고하였습니다.
그 후 2009. 4. 22. KBS에서 '시계수수 사실' 보도, 같은 해 5. 13. SBS에서 '논두렁에 시계를 버렸다'는 보도가 연이어져, 국정원의 소행임을 의심하고 나름대로 확인해 본 결과 그 근원지가 국정원이라는 심증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2015. 2. 23. 경향신문 기자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검찰이 시계수수 사실을 흘려 망신을 준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보도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국정원의 노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 보도 관련 사실을 언급하였는데 약속을 어기고 보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노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 보도와 관련하여 알고 있는 대략의 내용입니다.
이 인 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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