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손익계산서, 명분과 실리 주고받았다
[해설] 북핵 평화적 해결 원칙 재확인, 코리아패싱 불식... 무기구매 재정부담, 주변국 갈등 우려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미 공동 언론행사에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은 얻어내야 할 것을 얻었지만 일정 대가를 치러야 하고, 미국은 손해 볼 것 없이 확실한 이익을 챙겼다. 7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결과는 이렇게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 재확인', '코리아패싱 논란 불식'이라는 대북 정책에 대한 명분을 얻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FTA 개정 압박과 무기 판매 실적이라는 실리를 가져갔다.
북핵 평화적 해결 원칙 재확인, 대북정책 명분 확보
먼저 문 대통령의 이번 정상회담 성과는 무엇보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을 재확인했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 미국과 공조하면서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일정 부분 완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자신이 밝혀온 대북 정책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명분을 얻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양국 정상은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기로 했다"며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대화에 나설 때까지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을 가해나간다는 기존 전략을 재확인하고 동시에 올바른 선택을 할 경우 밝은 미래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음도 재확인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북핵 문제의 평화적이고 근원적인 해결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북한을 향해 공격적인 발언을 계속해 온 만큼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군사행동을 포함한 돌발 발언에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월 UN연설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로켓맨(Rocket Man)'으로 칭하고 북한을 '완전히 파괴'(totally destroy)할 수 있다거나, 세계 곳곳이 분쟁으로 '엉망이 되고 있다'(지옥으로 가고 있다, going to hell)는 등 거친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군사적 행동 가능성에는 상당히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미국은 동맹을 방어하기 위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전 방위적 능력을 사용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면서도 "필요시에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3척의 항공모함과 핵추진잠수함이 한반도 주변에 배치된 것을 언급하면서도 "실제로 사용할 일 없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 원칙을 재천명하면서도 불필요한 긴장 조성은 피한 셈이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이 '코리아패싱(한반도 문제 해결에 한국이 제외되는 현상)'을 불식시킨 것도 문 대통령이 얻어낸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보수층과 야당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미국의 기조와 맞지 않는다며 한국의 역할이 극히 축소됐다고 비판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한국은 굉장히 중요한 국가다. (북한 문제 해결에) 한국을 우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문 대통령은 국내정치에서도 대북정책에 중요한 명분을 획득했다.
▲ '마이크 받으세요'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오후 경기도 평택 험프리스 미군 기지에서 열린 오찬에서 연설을 마친 뒤 문재인 대통령에게 연설을 제의하며 마이크를 넘기고 있다. ⓒ 연합뉴스
탄도 중량 해제, 전략무기 획득 등 주변국과 갈등 우려
실리를 챙긴 부분도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을 평택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에서 맞이했다. 대통령이 외국 정상을 청와대 경내가 아닌 외부에서 맞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파격적인 의전을 보인 것이다. 여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방위비분담금 문제를 제기한 것에 일정 제동을 걸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평택미군기지는 한국이 부지를 제공하고 100억 달러에 달하는 조성비용의 92%를 부담한 곳이다.
문 대통령은 "한미 동맹의 미래와 대한민국의 기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평택기지를 함께 방문했다"라며 "앞으로도 합리적 수준의 방위비를 분담함으로써 연합 방위 태세 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도 비용을 부담했다.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지출한 것이지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불만을 가진 발언이었지만 그동안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를 비판했던 것과 비교해서는 많이 누그러진 모습이다.
한국의 미사일 탄도 중량 제한을 완전히 해제하기로 한 것과 첨단 정찰자산 등 미국의 전략자산을 획득하기로 한 것에는 명과 암이 동시에 존재한다. 두 가지 조치 모두 한국의 국방력을 높이고 북한에 대한 억제력을 끌어올릴 기회는 맞지만 주변국과의 갈등 우려가 제기된다. 사드 배치와 마찬가지로 중국과 갈등 요인이 될 수 있고, 일본의 군사력 강화에 명분이 될 수도 있다. 또 무기 구매에 막대한 액수를 써야 한다면 재정적 부담과 함께 국내 반대 여론도 감당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회견에서 "첨단 정찰자산을 비롯해 미국이 보유한 군사적 전략자산의 획득에 대해 한미 간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며 "이는 한국의 자체 방위능력과 한미연합방위능력을 향상시키는데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서 수십 억 달러에 달하는 무기를 주문하는 것으로 말했다. 미국에서도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관련 질문에 "전략자산에는 그동안 얘기해 온 핵추진 잠수함과 최첨단 정찰자산이 포함돼 있다"라며 "핵추진 잠수함, 최첨단 정찰자산 등 2가지는 우리 정부가 향후 미국과 긴밀하게 협의를 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무기획득의 프로세스가 시작됐지만 즉시 결론이 나지 않은 부분"이라며 "구입을 할 수도 있고, 한미가 같이 개발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기술적인 측면에서 함께 검토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무기 판매 실적 올리고 한미FTA 개정에 고강도 압박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한국의 미 전략자산 구매 결정을 이번 회담의 최대 성과로 꼽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확대정상회담 전 모두발언에서 "한국이 미국의 군사 시설물과 무기를 구입하기로 한 데 대해 감사한다"라며 "미국의 무역 적자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평택미군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한국이 앞으로 주문할 미국산 군사 장비의 양이 늘어날 것"이라며 "한미 간 무역적자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FTA의 불공정성을 강조하며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양국이 FTA 개정 협상을 이제 막 시작한 상황에서 미국 측에 유리한 개정을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그는 "(한미FTA는) 성공적이지 못했고 미국에 그렇게 좋은 협상이 아니다"라며 "우리 측과 더 나은 협상을 하길 촉구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자유롭고 공정하고 호혜적인 무역의 혜택을 함께하기 위해 한미 FTA 관련 협의를 신속히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라고 응수했다.
결과적으로 이날 양 정상의 합의를 통해 한미FTA 개정협상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개정협상이 빨라지면 국내 산업별 이해관계가 첨예한 한국 측에는 불리한 측면이 있다. 미국은 자동차, 철강 품목 분야의 무역적자 해소와 한국의 미국산 농산물 관세 철폐 일정 단축, 서비스 시장 개방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측의 요구가 반영될 경우 농업 분야를 비롯해 국내 산업 분야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