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활비 상납 의혹' 남재준 "찬사 받지 못할망정 수사라니"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조사받으러 나와... 박근혜 지시 여부에는 묵묵부답
▲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피의자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 하고 있다. ⓒ 이희훈
"국정원 직원들은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이자 최고의 전사들이다. 그들이 그들의 헌신과 희생에 대해 찬사를 받지는 못할망정 수사를 받다가 목숨을 끊는 참담한 현실에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낀다."
국가정보원(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과 사법방해 등 각종 의혹의 정점에 서 있는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이 한마디만 남기고 취재진을 거칠게 밀치며 포토라인을 떠났다. 앞서 취재진은 그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시했는지, 직원들의 사법 방해 행위를 알고 있었는지를 물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3부(부장검사 양석조)는 8일 오후 남재준 전 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공개 소환했다. 남 전 원장은 박근혜 정부 초대 국정원장을 지냈다. 남 전 원장 취임 두 달 후인 지난 2013년 5월부터 매달 5천만~1억 원 가량의 현금이 청와대로 넘어간 과정에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가 있었는지가 핵심 조사 대상이다.
각종 의혹에는 묵묵부답... '억울하시냐' 물음엔 고개 끄덕여
▲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피의자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 하고 있다. ⓒ 이희훈
이날 오후 1시 55분께 서울중앙지검 청사 현관에 나타난 남 전 원장은 "국정원 돈을 왜 청와대에 상납했습니까"라는 질문에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고 조사실로 향했다. 취재진이 계속 따라붙자 마지못한 듯 가던 길을 되돌아와 취재진이 설정한 포토라인에 섰다. 하지만 각종 의혹을 묻는 질문에 어떤 해명도 내놓지 않았다. 최근 사법방해 사건으로 수사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변창훈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와 정아무개 국정원 소속 변호사의 명복을 빈다고만 했다.
취재진은 남 전 원장을 따라 청사 안까지 따라가 "왜 청와대에 돈을 상납했나", "국정원 직원들이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방해하는 일이 국가를 위한 건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상납을 지시했느냐"라고 물었다. 남 전 원장은 도망치듯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다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억울하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찰은 박근혜 정부 화이트리스트 의혹을 수사하던 중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상납 혐의를 포착했다. 상납금은 최소 40억 원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또한 법적 근거 없이 상납 받은 돈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개인 비자금으로 유용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전달받은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역시 검찰 조사에서 "박 전 대통령 지시로 받았다"고 진술했다.
앞서 수사팀은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지속적으로 상납받은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과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해 특가법상 뇌물수수·국고손실 혐의로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죄를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남재준 전 원장은 사법방해 혐의로도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있다.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검사)은 지난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때 국정원이 검찰 수사와 재판에 대비해 '현안TF'를 꾸리고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직원들에게 증거인멸과 허위증언을 지시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들은 검찰 압수수색을 앞두고 가짜 사무실을 차린 뒤 허위 서류를 채워 넣기도 했다.
직제 상 남 전 원장을 바로 아래 위치한 서천호 전 국정원 2차장은 지난 7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은 윗선 지시 여부 등 사법방해 사건의 명확한 사실관계를 밝히기 위해 남 전 원장을 조사할 예정이다.
▲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피의자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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