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 아이의 엄마다
[2017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4] 모두가 이어진 신명나는 마을을 꿈꾸다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배움터경당)은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며 2014년부터 해마다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열어왔습니다.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2014년), '나로부터 행하는 교육, 공적 글쓰기'(2015년), '생명의 교육, 역사 위에 서다'(2016년)를 거쳐, 올해는 '생명의 교육, 생명의 마을'을 주제로 정했습니다.
2017교육문화연구학교는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안양 동안구 비산3동 마을을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고민과 소망을 담아 진행됩니다. 기간은 10월 13일부터 12월 29일까지이고, 비산동 마을 관련 6가지 주제(△마을개선, △마을허브공간, △언론출판, △농사준비, △재개발연구, △문화사업)를 나눠 총화와 팀별 세미나 및 마을 대상 다양한 실천 활동 등을 병행해 나갑니다. - 기자 말
나는 세 아이의 엄마
난 세 아이의 엄마다. 올해 새들생명울배움터경당 2년차 아홉 살 큰딸, 얼른 누나와 경당에 다니고 싶어 몸살이 난 여섯 살 둘째 아들, 그리고 태어난 지 5개월 된 막내딸까지. 배움터경당의 교육문화연구학교가 시작된 이래로 세미나에 참석할 때마다 나는 아이들의 엄마이므로 소극적인 자세로 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늘 아이들을 주시하며 있는 곳에서 세미나에 있었고, 띄엄띄엄 내용을 들을 수밖에 없구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난 6월 셋째가 태어나고, 몸이 가벼워지듯 마음이 함께 가벼워지는 게 아닌가.
큰아이는 경당에서 4시 반에 하교한다. 작은 아이는 아빠와 어린이집을 다니고, 나는 막내와 늘 함께 한다. 우리 집 막내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싼다. 이 세 가지를 잘하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칭얼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생활이 이렇듯 순조로운데, 내가 아이들 핑계를 대며 못하겠다고 망설이면 진짜 핑계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용기를 내어 세미나에 참여 신청을 했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언론출판팀에 들어갔다. 그리고 더 큰 용기를 내어 기사 작성에 도전했다. 물론 용기를 낸 이후로 후회가 급속도로 밀려오긴 했지만, 나를 뛰어넘고자 하는 용기였으니, 끝까지 책임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미래를 위해 나는 '지금'을 바꾸고 싶었다
큰아이가 일곱 살이 되기 바로 직전 이맘 때 즈음, 3년 전, 우리는 서울에서 이곳 비산동으로 이사를 왔다. 우리 아이들이 대안학교인 배움터경당에 다니는 것도 이사의 한 이유였다. 배움터경당에 다니는 언니 오빠들이 학교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선생님들이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잘 만나가기 위해 진심으로 애쓰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아이를 잘 설득하고자 했다. 일곱 살이 되어 어느 날, 큰아이는 엄마아빠가 왜 자신을 배움터경당으로 보내고자 하는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게 좋겠다고 대답을 해 주었다. 굳이 일반 학교를 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이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우리가 무엇 때문에 비산동으로 왔는지 돌아보았다. 비단 아이의 교육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와 함께 우리도 자유롭게 성장하고 싶었고, 꿈을 꾸고 꿈을 따라 살고 싶었다. 사람을 사람답게 진심으로 만날 수 있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서로를 보며 행복해 할 수 있는 삶, 나 홀로 분투하지 않고,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그런 만남을 이곳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이들은
사랑이라는 걸 만들어 가겠죠
이별이란 한 마디는
상상할 수 없는 채로
누군가는 사랑을 하고
누군가는 헤어진다는
알 수 없는 날이 다가오고 있는 걸
서로 모르는 시간에서
내일을 알 수는 없겠죠
어쩌면이라고 예상할 뿐이죠
늘 생각했던 게 늘 바래 왔던 게
이뤄져 가는 거죠 이뤄져 온 거 겠죠
언젠간이라는 아름다운 얘기
그 누군가의 기도로 이뤄져
예상할 수 없는 그 어느 날에 always
내일을 알 수는 없겠죠
어쩌면이라고 예상할 뿐이죠
늘 생각했던 게 바래 왔던 게
이뤄져 가는 거죠 이뤄져 온 거겠죠
누구나 상상을 하겠죠
언젠간이라는 아름다운 얘길
견딜 수 없도록 힘겨운 날들이
지금의 너와 나를 만들어 왔던 거죠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는 시작할 때 늘 노래 한 곡을 선정해 다 같이 부르는 시간을 갖는다. 11월 3일 네 번째 시간은 부활의 '누구나 사랑을 한다'를 불렀다. 처음 불러보는 노래였지만, '늘 생각했던 게 바래 왔던 게 이뤄져 가는 거죠 이뤄져 온 거겠죠'라는 가사가 마음 깊이 다가와 열심히 불렀다.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 안에 사랑이 있지 않으면, 일이 완성되었다고 해도 온전하게 느껴지지 않듯이 말이다. 노래를 함께 부른 뒤, 새들생명울배움터 최봉실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심오하고 감동적인 노래에요. 우리들이 소원하는 많은 바를 포기하지 않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노래인 듯합니다. 통일이 될 즈음에 부르면 좋을 노래예요. 그때를 대비해 지금부터 목록을 만들어 둬야겠어요. 이 노래는 꼭 넣으면 좋겠는데, 우리 같이 기억해요."
겸손히 배우고 가르치는
새들생명울배움터의 교육 가치관을 나타내 주는 문구는 '더불어, 더 나은, 온전한'이다.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고 누리며,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해, '온전한' 삶을 살고 배우고 가르치며 사는 것을 뜻한다. 큰아이가 경당에 입학하고 배우는 내용들을 들여다보며, 정말 부럽다 생각했던 적이 있고, 지금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글자나 피상적인 뜻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함께 묻고 나누는 시간이 교과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친구들, 언니오빠들, 선생님들이 온 마음을 다해 배려해 주고 도와준다. '온전한' 배움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낸다. 이 모든 것이 한 번에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항상 서로에게 겸손한 자세로 배우고 가르칠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나는 우리 아이들이 삶을 진지하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하다.
함께 마주 앉아서
비산동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면서 주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간 경당 아이들의 소리가 시끄러울 법도 한데, 한마디의 불평도 없으셨다. 비봉산 자락 텃밭을 일구는 회원들에게 도움의 손길로 온정을 베풀어 주셨다. 그 도움과 이해, 넘치는 감사를 담아 지난 9월 30일에는 비산3동 마을 분들을 위한 '마을감사장터'를 열어 신명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관련 글 : '도시에서도 장터, 잔치 가능하다')
마을감사장터에서의 만남의 감격을 이어받아 아나바다 복합문화예술공간을 마련하기로 했고, 11월 13일 개장을 앞두고 있다. 이 공간의 이름은 '울'이다. '울'은 '울타리, 우리'의 준말이며, '울림'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함께 비산3동 마을 안에서 신명나는 울림을 울려 가자는 뜻이다. '울' 안에 담긴 모두의 마음이 마을 곳곳에 잘 스며들기를 바라며, 우리 아이들이 그 뜻을 잘 이어갈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다.
아직 공간 구성과 관련한 많은 결정이 남아 있지만, 이날은 '울'의 외부 데크에, 누구든지 쉬어가라는 의미로 장소를 마련했는데, 이름을 '체리암'으로 정했다.
'체리암(滯離巖)'은 故 최명희 작가의 <혼불>에 나오는 장소로, 먼 길 다녀온 이들을 마중하고, 기약없이 떠나보내는 것이 못내 아쉬워 잡은 손을 차마 놓지 못하는, 하지만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떠나는 그곳을 부르는 이름이다.
"혼불을 읽으면서 인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책을 읽으시면 공감하실 텐데요, 인생에 너무 슬픔들이 많으니까, 그 슬픔을 알게 된 사람이 내가 태양이 되어서 햇살을 비추는 존재가 되겠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시에서 '너'는 '인생'을 뜻하는데,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인생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흐릿한 안개 자욱 속을 거닐었다
햇살이 날아올 수 없는 강력한 막에 갇혀
걸음을 멈추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알았다.
인생이 그러하다는 것을
너를 알아 사랑이 낳다
가고 머물 인생
가야 할 때 가고
머무를 때 머문다
뜨거운 사랑을 끌어안고.
그리하여 내가 태양이 되었다
너를 비추는 태양
스스로 살아 생동하는 햇살이 되었다
잠시 앉았다 떠난 바위에
따뜻한 온기가 남았다
–최봉실, 체리암에서-
허브공간에 대한 의미를 더 잘 숙지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개장식 때 하려던 시 발표를 지금 한다는 최 대표는 "우리가 허브공간에서 아나바다, 또는 쉼, 모임 등 많은 걸 할 텐데,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가 계속해서 일어나는 장소가 되면 좋겠다"라고 했다.
아이들이 대신 나섰다!
내가 속한 언론출판팀에서 다음날 마을을 돌면서 주민 분들께 11월 11일 '울' 개장식 초대장을 전달하기로 했다. 엄마는 기사를 써야 하니 첫째와 둘째가 이모, 삼촌들과 마을 사람들을 만나겠다고 했다. 미세먼지 상황이 좋지 않아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고, 혹시나 이모·삼촌들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물으니, 그래도 자신들은 초대장을 잘 전달할 수 있다고 했다. 단번에 이모·삼촌들의 오케이 승낙을 받고, 늦가을 바람에 대비해 옷을 입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집 앞으로 데리러 오마 한 이모·삼촌들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아이들을 이모삼촌들과 보내고, 남편은 막내를 안고,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어떻게 기사를 풀어 가면 좋을까를 고민했다. '톡, 톡, 톡...' 단체 대화방에 초대장을 돌리고 있는 이모·삼촌들, 그리고 아이들의 모습이 사진으로 떴다. 초대장을 돌리며 즐거워 보이는 우리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들뜬 마음으로 마을 곳곳을 돌며 "11월 11일 아나바다, 복합문화예술공간 '울'에 초대합니다!"라고 이야기했을 아이들을 상상했다. 참고로 우리 아이들은 초대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 규모가 이리 커졌으니 초대하는 기분이 오죽 좋으랴. 엄마 대신 나선 게 아니라 정말 기꺼운 마음으로 그 길에 참여한 것이다. 나는 아직 마을 사람들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걸까, 순간 아이들의 활짝 열린 마음 앞에 나의 작은 마음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교육문화연구학교 첫 번째 시간에 각자가 최선을 다해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했을 때, 우리 모두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고, 함께 도약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고 이야기했던 최 대표의 말이 떠올랐다. 이는 배움터경당에서 겸손히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아이들과 선생님들께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매시간 요청되는 자세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게 된다. (관련기사 : '마을만들기', 왕도를 걷다)
함께 꾸는 꿈이 현실이 되는 미래
새로운 공간을 꾸밀 생각에 연구소 회원들은 들떠 있었다. 가구매장에서 공간에 들어갈 물품을 고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우리가 오픈할 매장은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고) 매장이니, 허브공간에 들어갈 가구도 기증을 받으면 어떨까"라고 했다. 기증 물품을 받기로 결정하고 이곳저곳에 부탁드리고 나니, 마치 지금을 위해 준비된 마냥 물품 기증을 하시겠다는 분들께서 받으러 오시라는 게 아닌가. 모두 감사한 마음을 한가득 품고, 물품을 운반할 수 있는 차량과 운전자, 시간이 가능한 분들의 협조를 구하기로 했다.
이날은 각 팀별로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을 정리하고, 향후 계획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별히 농사준비 팀은 다음 날 대야미 마을협동조합이 주최하는 마을 장터인 '대야미 소박한 장터'와 경기도 도시농업시민협의회가 주관하는 '도시농업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하다'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을 비롯해 토종씨앗 전시 및 나눔, 전통탈곡체험, 토종앉은뱅이밀로 화분 만들기 등 다양한 전시체험부스를 통해 도시민들에게 도시농업을 알려주는 '광명 도시농업 아카데미'에 참석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농사, 소박함으로 걷다', '도시농업, 생명 잇는 한 알의 밀알되기를')
모든 분과의 발표를 들은 후, 최봉실 대표는 소망을 담아 말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할지 오늘 얘기 들으면서 선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과 선택이 실제로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아무리 벽이 높아 보이고, 현실이 강고해 보여도 진심이 모이면 얼마든지 뚫어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렇게 같이 마음 모아 가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마을 허브 공간 '울' 개장식은 11월 11일 토요일 오후 4시에 안양시 동안구 평촌대로 401번길 44에서 진행된다. 본격적인 공간 운영은 13일 월요일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2017교육문화연구학교는 8주가 더 남았다.
아이들을 낳고, 생명의 존귀함을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깊어져가는 만남을 꿈꾸게 되었다. 그 만남을 이곳 비산동에서 시작한다. 치열하게 매순간 마음 다해 만나고, 사랑하고, 나누는 삶이 어렵다는 걸 알지만, 쉬운 것은 그만큼 쉬이 사라지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살아가고 싶다. 나는 가슴 부푼 세 아이의 엄마다. 그리고 기자다.
2017교육문화연구학교는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안양 동안구 비산3동 마을을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고민과 소망을 담아 진행됩니다. 기간은 10월 13일부터 12월 29일까지이고, 비산동 마을 관련 6가지 주제(△마을개선, △마을허브공간, △언론출판, △농사준비, △재개발연구, △문화사업)를 나눠 총화와 팀별 세미나 및 마을 대상 다양한 실천 활동 등을 병행해 나갑니다. - 기자 말
▲ 언론출판팀 모임에서 기사 작성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 사진 왼쪽이 김일경 시민기자.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난 세 아이의 엄마다. 올해 새들생명울배움터경당 2년차 아홉 살 큰딸, 얼른 누나와 경당에 다니고 싶어 몸살이 난 여섯 살 둘째 아들, 그리고 태어난 지 5개월 된 막내딸까지. 배움터경당의 교육문화연구학교가 시작된 이래로 세미나에 참석할 때마다 나는 아이들의 엄마이므로 소극적인 자세로 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늘 아이들을 주시하며 있는 곳에서 세미나에 있었고, 띄엄띄엄 내용을 들을 수밖에 없구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난 6월 셋째가 태어나고, 몸이 가벼워지듯 마음이 함께 가벼워지는 게 아닌가.
큰아이는 경당에서 4시 반에 하교한다. 작은 아이는 아빠와 어린이집을 다니고, 나는 막내와 늘 함께 한다. 우리 집 막내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싼다. 이 세 가지를 잘하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칭얼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생활이 이렇듯 순조로운데, 내가 아이들 핑계를 대며 못하겠다고 망설이면 진짜 핑계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용기를 내어 세미나에 참여 신청을 했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언론출판팀에 들어갔다. 그리고 더 큰 용기를 내어 기사 작성에 도전했다. 물론 용기를 낸 이후로 후회가 급속도로 밀려오긴 했지만, 나를 뛰어넘고자 하는 용기였으니, 끝까지 책임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미래를 위해 나는 '지금'을 바꾸고 싶었다
큰아이가 일곱 살이 되기 바로 직전 이맘 때 즈음, 3년 전, 우리는 서울에서 이곳 비산동으로 이사를 왔다. 우리 아이들이 대안학교인 배움터경당에 다니는 것도 이사의 한 이유였다. 배움터경당에 다니는 언니 오빠들이 학교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선생님들이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잘 만나가기 위해 진심으로 애쓰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아이를 잘 설득하고자 했다. 일곱 살이 되어 어느 날, 큰아이는 엄마아빠가 왜 자신을 배움터경당으로 보내고자 하는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게 좋겠다고 대답을 해 주었다. 굳이 일반 학교를 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이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우리가 무엇 때문에 비산동으로 왔는지 돌아보았다. 비단 아이의 교육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와 함께 우리도 자유롭게 성장하고 싶었고, 꿈을 꾸고 꿈을 따라 살고 싶었다. 사람을 사람답게 진심으로 만날 수 있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서로를 보며 행복해 할 수 있는 삶, 나 홀로 분투하지 않고,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그런 만남을 이곳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이들은
사랑이라는 걸 만들어 가겠죠
이별이란 한 마디는
상상할 수 없는 채로
누군가는 사랑을 하고
누군가는 헤어진다는
알 수 없는 날이 다가오고 있는 걸
서로 모르는 시간에서
내일을 알 수는 없겠죠
어쩌면이라고 예상할 뿐이죠
늘 생각했던 게 늘 바래 왔던 게
이뤄져 가는 거죠 이뤄져 온 거 겠죠
언젠간이라는 아름다운 얘기
그 누군가의 기도로 이뤄져
예상할 수 없는 그 어느 날에 always
내일을 알 수는 없겠죠
어쩌면이라고 예상할 뿐이죠
늘 생각했던 게 바래 왔던 게
이뤄져 가는 거죠 이뤄져 온 거겠죠
누구나 상상을 하겠죠
언젠간이라는 아름다운 얘길
견딜 수 없도록 힘겨운 날들이
지금의 너와 나를 만들어 왔던 거죠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는 시작할 때 늘 노래 한 곡을 선정해 다 같이 부르는 시간을 갖는다. 11월 3일 네 번째 시간은 부활의 '누구나 사랑을 한다'를 불렀다. 처음 불러보는 노래였지만, '늘 생각했던 게 바래 왔던 게 이뤄져 가는 거죠 이뤄져 온 거겠죠'라는 가사가 마음 깊이 다가와 열심히 불렀다.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 안에 사랑이 있지 않으면, 일이 완성되었다고 해도 온전하게 느껴지지 않듯이 말이다. 노래를 함께 부른 뒤, 새들생명울배움터 최봉실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심오하고 감동적인 노래에요. 우리들이 소원하는 많은 바를 포기하지 않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노래인 듯합니다. 통일이 될 즈음에 부르면 좋을 노래예요. 그때를 대비해 지금부터 목록을 만들어 둬야겠어요. 이 노래는 꼭 넣으면 좋겠는데, 우리 같이 기억해요."
▲ '늘 생각했던 게 늘 바래 왔던 게 이뤄져 가는 거죠' 함께 노래를 부르며 더욱 힘을 얻는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겸손히 배우고 가르치는
새들생명울배움터의 교육 가치관을 나타내 주는 문구는 '더불어, 더 나은, 온전한'이다.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고 누리며,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해, '온전한' 삶을 살고 배우고 가르치며 사는 것을 뜻한다. 큰아이가 경당에 입학하고 배우는 내용들을 들여다보며, 정말 부럽다 생각했던 적이 있고, 지금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글자나 피상적인 뜻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함께 묻고 나누는 시간이 교과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친구들, 언니오빠들, 선생님들이 온 마음을 다해 배려해 주고 도와준다. '온전한' 배움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낸다. 이 모든 것이 한 번에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항상 서로에게 겸손한 자세로 배우고 가르칠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나는 우리 아이들이 삶을 진지하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하다.
함께 마주 앉아서
비산동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면서 주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간 경당 아이들의 소리가 시끄러울 법도 한데, 한마디의 불평도 없으셨다. 비봉산 자락 텃밭을 일구는 회원들에게 도움의 손길로 온정을 베풀어 주셨다. 그 도움과 이해, 넘치는 감사를 담아 지난 9월 30일에는 비산3동 마을 분들을 위한 '마을감사장터'를 열어 신명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관련 글 : '도시에서도 장터, 잔치 가능하다')
마을감사장터에서의 만남의 감격을 이어받아 아나바다 복합문화예술공간을 마련하기로 했고, 11월 13일 개장을 앞두고 있다. 이 공간의 이름은 '울'이다. '울'은 '울타리, 우리'의 준말이며, '울림'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함께 비산3동 마을 안에서 신명나는 울림을 울려 가자는 뜻이다. '울' 안에 담긴 모두의 마음이 마을 곳곳에 잘 스며들기를 바라며, 우리 아이들이 그 뜻을 잘 이어갈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다.
아직 공간 구성과 관련한 많은 결정이 남아 있지만, 이날은 '울'의 외부 데크에, 누구든지 쉬어가라는 의미로 장소를 마련했는데, 이름을 '체리암'으로 정했다.
'체리암(滯離巖)'은 故 최명희 작가의 <혼불>에 나오는 장소로, 먼 길 다녀온 이들을 마중하고, 기약없이 떠나보내는 것이 못내 아쉬워 잡은 손을 차마 놓지 못하는, 하지만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떠나는 그곳을 부르는 이름이다.
"혼불을 읽으면서 인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책을 읽으시면 공감하실 텐데요, 인생에 너무 슬픔들이 많으니까, 그 슬픔을 알게 된 사람이 내가 태양이 되어서 햇살을 비추는 존재가 되겠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시에서 '너'는 '인생'을 뜻하는데,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인생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흐릿한 안개 자욱 속을 거닐었다
햇살이 날아올 수 없는 강력한 막에 갇혀
걸음을 멈추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알았다.
인생이 그러하다는 것을
너를 알아 사랑이 낳다
가고 머물 인생
가야 할 때 가고
머무를 때 머문다
뜨거운 사랑을 끌어안고.
그리하여 내가 태양이 되었다
너를 비추는 태양
스스로 살아 생동하는 햇살이 되었다
잠시 앉았다 떠난 바위에
따뜻한 온기가 남았다
–최봉실, 체리암에서-
허브공간에 대한 의미를 더 잘 숙지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개장식 때 하려던 시 발표를 지금 한다는 최 대표는 "우리가 허브공간에서 아나바다, 또는 쉼, 모임 등 많은 걸 할 텐데,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가 계속해서 일어나는 장소가 되면 좋겠다"라고 했다.
▲ "인생에서 슬픔을 알게 된 사람이 내가 태양이 되어서 햇살을 비추는 존재가 되겠다는 의미를 담았어요"라고 배움터경당의 최봉실 대표가 말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아이들이 대신 나섰다!
내가 속한 언론출판팀에서 다음날 마을을 돌면서 주민 분들께 11월 11일 '울' 개장식 초대장을 전달하기로 했다. 엄마는 기사를 써야 하니 첫째와 둘째가 이모, 삼촌들과 마을 사람들을 만나겠다고 했다. 미세먼지 상황이 좋지 않아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고, 혹시나 이모·삼촌들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물으니, 그래도 자신들은 초대장을 잘 전달할 수 있다고 했다. 단번에 이모·삼촌들의 오케이 승낙을 받고, 늦가을 바람에 대비해 옷을 입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집 앞으로 데리러 오마 한 이모·삼촌들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아이들을 이모삼촌들과 보내고, 남편은 막내를 안고,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어떻게 기사를 풀어 가면 좋을까를 고민했다. '톡, 톡, 톡...' 단체 대화방에 초대장을 돌리고 있는 이모·삼촌들, 그리고 아이들의 모습이 사진으로 떴다. 초대장을 돌리며 즐거워 보이는 우리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들뜬 마음으로 마을 곳곳을 돌며 "11월 11일 아나바다, 복합문화예술공간 '울'에 초대합니다!"라고 이야기했을 아이들을 상상했다. 참고로 우리 아이들은 초대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 규모가 이리 커졌으니 초대하는 기분이 오죽 좋으랴. 엄마 대신 나선 게 아니라 정말 기꺼운 마음으로 그 길에 참여한 것이다. 나는 아직 마을 사람들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걸까, 순간 아이들의 활짝 열린 마음 앞에 나의 작은 마음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교육문화연구학교 첫 번째 시간에 각자가 최선을 다해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했을 때, 우리 모두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고, 함께 도약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고 이야기했던 최 대표의 말이 떠올랐다. 이는 배움터경당에서 겸손히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아이들과 선생님들께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매시간 요청되는 자세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게 된다. (관련기사 : '마을만들기', 왕도를 걷다)
▲ 아이들이 이모, 삼촌들과 초대장을 전달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나서 이모가 따뜻한 코코아를 사주셨다는 건 안 비밀!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함께 꾸는 꿈이 현실이 되는 미래
새로운 공간을 꾸밀 생각에 연구소 회원들은 들떠 있었다. 가구매장에서 공간에 들어갈 물품을 고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우리가 오픈할 매장은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고) 매장이니, 허브공간에 들어갈 가구도 기증을 받으면 어떨까"라고 했다. 기증 물품을 받기로 결정하고 이곳저곳에 부탁드리고 나니, 마치 지금을 위해 준비된 마냥 물품 기증을 하시겠다는 분들께서 받으러 오시라는 게 아닌가. 모두 감사한 마음을 한가득 품고, 물품을 운반할 수 있는 차량과 운전자, 시간이 가능한 분들의 협조를 구하기로 했다.
이날은 각 팀별로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을 정리하고, 향후 계획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별히 농사준비 팀은 다음 날 대야미 마을협동조합이 주최하는 마을 장터인 '대야미 소박한 장터'와 경기도 도시농업시민협의회가 주관하는 '도시농업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하다'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을 비롯해 토종씨앗 전시 및 나눔, 전통탈곡체험, 토종앉은뱅이밀로 화분 만들기 등 다양한 전시체험부스를 통해 도시민들에게 도시농업을 알려주는 '광명 도시농업 아카데미'에 참석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농사, 소박함으로 걷다', '도시농업, 생명 잇는 한 알의 밀알되기를')
▲ 농사준비팀의 박규준 씨는 "귀농을 상상할 때 중요한 것은 동료를 잘 만들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 마을개선팀은 마을 지도를 직접 그려서 포스트잇으로 개선할 곳들을 표시했다. 차후 실제 탐방을 다니며 사진을 찍어 지도에 붙일 예정이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모든 분과의 발표를 들은 후, 최봉실 대표는 소망을 담아 말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할지 오늘 얘기 들으면서 선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과 선택이 실제로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아무리 벽이 높아 보이고, 현실이 강고해 보여도 진심이 모이면 얼마든지 뚫어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렇게 같이 마음 모아 가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 배움터 경당의 아이들과 연구소 회원들은 이렇게 마음을 모았다. 아자!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마을 허브 공간 '울' 개장식은 11월 11일 토요일 오후 4시에 안양시 동안구 평촌대로 401번길 44에서 진행된다. 본격적인 공간 운영은 13일 월요일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2017교육문화연구학교는 8주가 더 남았다.
아이들을 낳고, 생명의 존귀함을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깊어져가는 만남을 꿈꾸게 되었다. 그 만남을 이곳 비산동에서 시작한다. 치열하게 매순간 마음 다해 만나고, 사랑하고, 나누는 삶이 어렵다는 걸 알지만, 쉬운 것은 그만큼 쉬이 사라지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살아가고 싶다. 나는 가슴 부푼 세 아이의 엄마다. 그리고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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