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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연기,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고 느꼈을까?

수능 앞둔 고3 제자들에게

등록|2017.11.21 09:09 수정|2017.11.21 13:47
2018학년도 수능이 포항 지진으로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연기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온갖 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3학년 담임을 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 그 말들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그리고 이 일주일을 어떻게 보내어야 할까?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페이스북을 보던 중 지난날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의 글에 눈길이 멈춥니다.

"1999년생들의 아홉수 수난사를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있는 1997년생 세월호 희생자 아이들이 99년생 동생들의 안전을 지켜주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이 글을 보면서 다시 한번 더 배움의 길을 생각했습니다. 공부라는 것은 결국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만의 즐거움이 아니라 함께 하는 즐거움이 되도록,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와 닿도록 우리 교육은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부자가 존경받는 사회를 꿈꿉니다. 나보다 더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었고, 그렇게 모은 돈을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위해 쓰니 어찌 존경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등교한 날 세월호 언니·오빠들의 보살핌과 아픈 이웃들과 함께해야 함을 말하고, 고3 담임으로 사족도 붙였습니다. 들뜨지 말고 차분하게 자기를 다스리며 평소대로 공부해 나가자고. 아이들은 예전처럼 시간을 아끼고 친구들을 배려하며 조금의 불평도 없이 공부하였습니다. 몇몇은 주말에도 학교 나와 평소 하던 대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습니다.

자신도 힘든 수험생 생활을 하면서도 친구를 격려하는 현지의 넉넉함을, 툭툭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매력 덩어리인 민정이의 재치를, 지적 능력 못지않게 노래 속으로 사람을 끌고 가는 민지의 가창력을, 현실과 쉽게 타협하지 않는 보연이의 꿈을, 사람을 유쾌하게 하는 소예의 밝은 성품을, 명랑함 속에 묻어 있는 시윤이의 내공을, 청소 시간에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재민이의 지적 발랄함을, 학문에 대한 도전과 열정으로 날이 갈수록 깊이를 더해 가는 세린이의 지적 수준을, 자신이 지닌 능력을 친구들에게 베푸는 서연의 성품을,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서현이의 탐구력을,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세현이의 지적 호기심을, 도전하고 성취하는 소현이의 끈기를, 꼼꼼함으로 지적 성취를 이루고 친구들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변하는 영선이의 배려를, 겸허 속에서도 열정이 새어 나오는 (엄)지현이의 매력을,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다현이의 웃음을, 일본을 접수하고자 하는 소정이의 꿈을, 흐트러짐이 없는 희영이의 성실함을, 재치와 웃음으로 분위기를 주도하는 가민이의 순발력을, 경청 품성과 자신의 꿈을 위해 시간을 유용하게 관리하는 시은이의 지덕체를, 말을 풀어내는 능력을 지닌 (이)지현의 말솜씨를, 다정다감하며 친구들의 장난을 받아주는 윤선이의 순수를, 꼼수를 모르며 성실함과 진지함으로 사학자의 꿈에 다가서고 있는 현경의 올바름을, 친구들을 따뜻하게 품어 주는 리더십으로 급우들의 믿음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혜인의 너그러움을, 흔들리면서 줄기를 바로 세워가는 어진의 예쁜 모습을 나는 사랑하고 믿습니다. 이들이 나의 자랑이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더 길어진 수능으로 우리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많이 고달팠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힘든 친구들과 함께해야 함을 배웠을 것이고, 언니, 오빠들의 따뜻함도 느꼈을 것입니다. 시험을 탈 없이 치르고 10대를 웃으며 배웅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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