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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 중국 농민공, TV 보며 도시바라기

[인문책 읽기] 중국 농민공이란? <탈향과 귀향 사이에서>

등록|2017.11.30 22:19 수정|2017.11.30 22:19
농촌의 젊은이들은 설사 고소득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진흙을 묻혀가며 농사를 짓고 싶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시로 나가 세상을 경험하면서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밝은 생산라인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31쪽)

매달 나흘을 쉬거나 혹은 매주 이틀을 쉴 수가 없다. 이는 국가가 법으로 정한 휴일임에도 그렇다. 공장이 농민공을 채용할 때, 그들은 농민공을 염가의 노동 기계로만 볼 뿐, 농민공 역시 사람이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48쪽)

▲ 겉그림 ⓒ 돌베개

저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기에 시골살이를 아이가 어떻게 느끼고 푸름이나 젊은이가 어떻게 받아들일 만한지를 몸으로 느끼지 않았습니다. <탈향과 귀향 사이에서>(돌베개 펴냄)라는 책에 나오는 중국 젊은 농민공들 마음을 제 살갗으로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저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기에 도시살이가 어떠한가는 살갗으로 느끼거나 알아요.

시골에서는 도시가 '한결 깨끗하거나 밝다'고 여길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정작 도시는 그리 깨끗하거나 밝다고 하기 어려워요. 깨끗하거나 밝아 보이도록 하려고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청소를 하고 기계를 돌리고 시설을 지키지요. '공장 생산라인'은 참말로 깨끗하거나 밝을까요? 공장에서 쓰는 화학약품이 참말로 깨끗하거나 밝을까요?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물(폐수)이나 바람(매연)이 참말로 깨끗하거나 밝을까요?

허세는 3층짜리 주택이나 결혼식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잉산의 농촌에서는 각종 경조사의 선물비용이 농민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 (63∼64쪽)

농민들이 외지로 나가 일하기 전에는 잉산 농민들의 소득에 큰 차이가 없었다. 마을 내 경제적 계층의 차이도 그다지 명확한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많은 농민들이 외지로 나가 일을 하면서부터 일부 농민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소득을 바탕으로 마을 내 상류층이나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들의 명성과 지위를 높여주었다. (65쪽)

인문책 <탈향과 귀향 사이에서>는 중국에서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수천만, 아니 몇 억에 이르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룹니다. 중국은 10억을 웃도는 사람이 사는 터라 한국하고 대면 숫자부터 다릅니다. 중국에서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숫자는 제대로 통계로 잡기 힘들다지만 몇 억이라지요. 그리고 금융 위기 바람이 한 번 불면 수천만에 이르는 실업자가 생긴다 하고요.

숫자만 보아도 깜짝 놀랄 만하지만, 숫자 하나로만 놀랄 만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중국 곡식이나 남새가 많이 들어오는데, 중국은 이렇게 시골사람이 도시에 공장 노동자로 잔뜩 떠나도 '중국 논밭을 일구거나 지킬 사람'이 제대로 남아날 수 있을까요?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한국에서 그토록 미움을 받는 '중국 곡식이나 남새'가 끊어질 날은 멀지 않을 듯해요. 이러면 한국은 자급자족이 거의 안 되는 나라인 탓에 무엇보다 식량 위기를 맞이하겠지요.

도시의 삶은 청춘의 낭만으로 가득하기에 그 누구도 선뜻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문제는 TV드라마가 보여주는 모습이 도시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혹 그런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77쪽)

중국 제조업이 이미 변곡점에 도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농민공이 그렇게 될 것이라 가정해서는 안 된다. 소득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온 가족이 도시로 이주한다 하더라도 편안한 삶을 살기는 쉽지 않다. 소득과 지출이 균형을 잃었을 때, 그 가족의 관계가 좋을 수 있을까? (84쪽)

중국에서는 돈을 벌려고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간다는데, 이렇게 버는 돈은 으레 시골에 으리으리한 새집을 짓거나 겉치레를 하는 데에 쓴다고 합니다. 삶을 알뜰히 가꾸거나 한결 아름답거나 느긋한 살림살이가 아닌, 남보다 잘나 보이도록 하는 데에 쓴다고 하는데, 이는 무엇보다 방송(텔레비전) 탓이 크다고 해요. 날이면 날마다 방송에서 '시골보다 훨씬 멋져 보인다는 첨단문명과 소비문화'가 흘러넘치기에 시골사람은 이 같은 도시 문명이나 문화를 시골에서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일쑤라고 합니다.

이를 한국에 대 보면, 한국은 지난 1970∼1980년대 새마을운동 바람으로 크게 몸살을 앓았어요. 시골사람을 도시로 끌어당겨서 공장을 돌렸고, 공장 노동자는 처음에는 '도시 빈민'이었다가 차츰 도시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러면서 이 나라 시골은 텅 비는 얼거리가 되었어요. 이동안 시골은 농약하고 비료하고 비닐하고 기계가 자리를 차지합니다. 도시는 도시대로 사람으로 넘치고, 시골은 시골대로 싸늘하면서 메마른 모습이 된다고 할까요.

▲ 중국 농민공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 새마을운동 모습을 겹쳐서 헤아립니다. ⓒ 최종규


젊은 농민공들은 외지에서 바깥세상을 경험했기 때문에 당연히 도시의 화려한 생활을 좋아한다. 그러나 대도시의 주택은 가격이 너무 높아서 구입할 수 없다. (235쪽)

젊은 사람들도 개발 지역에 살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외지로 나가 일하기 때문이다. 농가가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부모 세대의 장년층이 농업활동에 종사하고 자녀 세대의 청년층이 외지에서 돈을 벌기 때문이다. (239쪽)

중국도 한국도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돈을 더 많이 벌려면 집에서 오랫동안 나가서 일해야 합니다. 중국 농민공은 노동자라기보다 '값싼 부속품'으로 다뤄진다고 합니다. 젊을 적에는 공장에서 쉬는 날조차 없이 한창 부리다가, 나이를 먹으면 바로 버린다지요. 새로운 젊은 농민공이 넘친다고 하니까요.

어쩌면 경제개발이나 경제성장이란 이런 그늘을 드리우면서 생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밟히면서, 숱한 사람들이 집을 떠나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톱니바퀴 가운데 하나로 굴러야 하다가 마흔쯤 이르는 나이에 쓸모없어 버려지는 발판에서, 경제개발이나 경제성장을 이루는 셈이지 싶습니다.

수억 농민공이나 수천만 실업자라는 숫자에 가려진 수수한 시골 중국 이웃을 생각해 봅니다. 저마다 고향마을에서는 조용히 살림을 지으며 조촐히 삶을 누리던 이들이 농민공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도시바라기를 하는 동안 어느새 사람다운 권리와 자리를 빼앗깁니다.

경제성장으로 달리는 중국이 아닌, 넉넉하면서 아름다운 중국일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한국도 경제성장은 이제 그만두고, 너무 커진 도시를 줄이면서, 시골하고 서울이 사이좋게 어우러지는 조촐하면서 아름다운 나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빌어요. 아직 늦은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덧붙이는 글 <탈향과 귀향 사이에서, 농민공 문제와 중국 사회>(허쉐펑 글 / 김도경 옮김 / 돌베개 / 2017.9.29.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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