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세대교체냐, 토사구팽이냐'... LG의 '냉정한' 이별공식

[주장] 선수에겐 구단이 '갑', 헤어질 때도 최소한의 매너 필요해

등록|2017.11.23 10:51 수정|2017.11.23 10:51
프로야구 LG 트윈스가 충격적인 선수단 구조조정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LG는 지난 22일 베테랑 내야수 정성훈을 방출한 데 이어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는 이병규(롯데)-손주인(삼성)-유원상(NC) 등이 잇달아 타 구단의 지명을 받아 팀을 떠나게 됐다. 모두 LG에서 고참급으로 분류되던 주전 자원들이다.

대신 LG는 이진석, 장시윤, 신민재 등 1990년대생 이후의 젊은 선수들을 영입하며 빈 자리를 보강했다. 최근 몇 년간 이어오던 리빌딩과 세대교체에 대한 기조를 분명히 드러낸 셈이다.

야구팬들의 반응은 당황스러움 그 자체다. 세대교체에 대한 의지는 2015년 이후로 지속된 구단의 노선이 분명했기에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많은 베테랑급 선수들을 하루아침에 내보낸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더구나 이번에 방출되거나 40인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된 선수들의 대부분은 아직 충분히 팀에 기여할 수 있는 '즉시전력감'으로 평가받고 있다.

젊은 선수 영입하며 리빌딩, 일각에서는 '투사구팽' 지적도

일각에서는 세대교체를 빙자한 '토사구팽'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2차 드래프트를 앞둔 시점에서 정성훈에게 갑자기 일방적으로 방출을 통보한 것은 팀에 오랫동안 헌신해온 선수에게 기본적인 매너도 지키지 않은 결례라는 비난 여론이 거세다.

▲ 방출이 결정된 LG 정성훈(자료사진) ⓒ 연합뉴스


정성훈은 2009년 FA를 통하여 처음 LG 유니폼을 입은 이래 9시즌간 화려하지는 않지만 견실한 활약을 펼쳐 모범 FA의 대명사로 통하기도 했다. 유독 '먹튀' 논란이 많았던 LG의 FA 잔혹사를 끊어낸 몇 안되는 선수이며, KBO리그 우타자 최초의 2100안타, 5번째 1000득점 기록 등 LG를 넘어 KBO의 레전드라고 하기에도 손색없는 업적을 세웠다.

2015년 음주운전 논란 등 흑역사도 없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야구적인 면에서는 꾸준한 기량을 유지해왔다. 심지어 정성훈은 2017시즌에도 타율 .312 6홈런 30타점, OPS .828로 선전했다. 특히 전반기에는 출장기회를 거의 잡지 못하다가 순위싸움이 다급해진 후반기에 출전이 급격히 늘어나며 세운 기록이기에 더 의미가 있다. 비록 규정타석은 채우지 못했지만 세대교체 바람이 불던 LG에서 제한된 출전 시간 속에서도 주어진 기회마다 여전히 제몫은 해내는 선수임을 증명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9년간의 헌신에 대한 LG의 마지막 선물은 차가운 해고 통지서였다.

LG와 정상훈의 이상기류는 이미 지난 시즌부터 예고된 바 있다. LG는 세 번째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은 정성훈에게 1년 계약만을 제시하며 기싸움을 벌인 바 있다. 리빌딩을 추진하는 구단 사정상, 노장과의 장기계약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기 위한 조치였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번에는 다시 원점에서 새로운 계약을 협상하는 데도 무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당장 정성훈을 대체할 만한 주전급 내야수나 대타요원이 넉넉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LG의 사정상, 아직도 기량이 녹슬지 않은 검증된 베테랑 선수를 쫓아내는 게 그렇게 다급했나 하는 아쉬움은 떨칠 수 없다.

베테랑 선수를 대하는 LG의 매끄럽지 못한 이별공식은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야생마' 이상훈이나 '적토마' 이병규 등도 훗날 LG에 다시 지도자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현역 시절 팀과의 마무리 과정은 원만하지 못했다. 이상훈은 SK로 쫓겨나듯 트레이드를 당하고 그해 쓸쓸하게 은퇴했고, 이병규는 2016시즌 철저하게 전력 외로 분류되었다가 은퇴 의사를 밝힌 후에야 1군에서 고별무대를 가질 수 있었다.

프랜차이즈 스타는 아니지만 정성훈과 더불어 FA 모범생으로 활약하며 LG에서 주장까지 역임했던 이진영 역시 기량이 하락할 조짐을 보이자 2015시즌 2차 드래프트로 KT의 지명을 받아 이적해야 했다. 이밖에 김재현, 서용빈, 유지현 등도 30대 초중반의 나이에 이런저런 이유로 원치 않게 팀을 떠나야 했던 LG의 간판 선수들이다.

선수에겐 구단이 '갑', 헤어질 때도 최소한의 매너 필요해

야구는 컴퓨터 게임이 아니다. 공과 방망이만 든다고 전부가 아니라 감정과 생각을 가진 인간을 다루는 스포츠다. 우리가 야구라는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도 단순한 숫자나 기록의 나열이 아니라 그속에 담겨있는 사람들의 스토리다. LG는 그 스토리의 주체이자 그 중에서도 좀 더 특별한 비중을 차지했던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어 있다.

헤어지는 부부나 연인에게도 이별에 대한 최소한의 매너는 필요하다. 구단 입장에서는 물론 이 선수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데 밝힐 수 없는 나름의 속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구단이 '갑'이고 선수가 '을'인 상황에서 최소한의 배려와 예우는 어디까지나 강자의 몫이다. 굳이 구단 이미지에도 좋지 않은 선례를 계속 쌓아가면서 다급하게 쫓아내야했을 만큼, 이 선수들이 LG에 큰 걸림돌이었는지는 의문이다.

LG 팬들은 최근 몇 년간 계속된 '리빌딩'이라는 명분에 점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양상문 현 단장의 감독 시절부터 추진되어온 리빌딩은 물론 지난해 가을야구 진출같은 나름의 성과도 있었지만 올해는 오히려 젊은 선수들의 기량이 정체되는 모습을 보이며 제 자리 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아나 두산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좋은 성적을 올리는 강팀들은 젊은 선수들만이 아니라 적절한 신구조화가 오히려 균형을 이룬 케이스다.

2000년대 초반 팀에 헌신해온 베테랑 선수들을 쫓아내고 인위적인 세대교체를 단행했을 때의 명분 역시 리빌딩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LG는 오랫동안 가을야구에 나가지 못하는 암흑기를 겪었다. 리빌딩이라는 핑계가 막연한 '페이퍼워크'만으로 재단할수 있는 전가의 보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한 리빌딩과 세대교체를 핑계로 팀에 헌신한 노장 선수들이 하루아침에 버림받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젊은 선수들은 어떤 교훈을 배울까. "이 팀을 위하여 목숨바쳐 충성해야지"라는 생각이 들까, 아니면 "어차피 나도 나이들면 언제든지 저렇게 버림받을 건데, 여기서 적당히 돈이나 벌다가 기회가 되면 미련없이 떠나야지" 같은 생각이 드는게 오히려 흔해지지 않을까.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