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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YES' 11년은 'NO', 고양시의 황당 정규직 전환

[取중眞담] "쓰고 버려진 일회용품이 된 기분" 노동자 말, 뼈아프게 새겨야

등록|2017.11.26 19:12 수정|2017.11.26 19:12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기자회견 ⓒ 고양도서관비정규직노동자 모임


'4개월 근무한 사람은 운이 좋아 정규직 전환 대상자이고 11년간 일한 사람은 운이 나빠 정규직 못 될 처지!'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고양시 도서관에서 근무하던 비정규직 30여 명이 이런 처지에 놓였다. 3년에서 11년 간 일한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됐다. 반면 단 4개월 근무하고도 운이 좋아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된 이도 있다.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빠진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다, 억울하다'고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이 외침은 고양시청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고양시가, '7월 20일 기준, 현재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라며, 이를 지키겠다 고집하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11년 일했는데도...", 정부 정규직 전환 방침의 허점

이 방침 때문에 고양시 도서관에서 일해 온 비정규직 중에는 심지어 11년간 일을 하고도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된 노동자가 있다.

그가 지난 7월 20일에 도서관 직원이 아니었던 이유는 '1년에 10개월, 3년에 23개월 이상 근무할 수 없다'는 고양시 도서관의 이상한 직원 채용 방침 때문이다.

좀 더 많은 시민에게 일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는 게 고양시 관계자 설명이지만, 나타난 결과는 엄청난 노동 착취였다.

이 때문에 그는 지난 11년간 약 10개월씩 근로 계약을 체결하며 뜨문뜨문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일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부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발표일인 7월 20일에 재직을 하지 않아서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탈락했다.

그는 근무를 못 하는 기간에는 하루 4시간씩 자원봉사를 했다. 그렇게 해서 그가 월급을 받고 근무한 기간은 11년 중 48개월 정도다. 나머지 58개월은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자원봉사는, 재취업을 할 때 가산점으로 작용해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양시 도서관 직원 채용 구조가 노동착취인 이유?

▲ 기자회견 ⓒ 고양도서관비정규직노동자 모임


충격적인 것은 자원봉사 기간에 받은 '실비'라는 이름의 터무니없는 인건비다. 하루 4시간 일하고 차비와 밥값으로 1만 1000원(2013년 이전에는 8000원)을 받았다. 이것이, 고양시 도서관의 직원 채용 방침이 '노동착취'인 가장 큰 이유다.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된 이들 대부분이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어쩔 수 없이 자원봉사를 했다. 그들은 기자와 나눈 서면 인터뷰에서 하나 같이 억울함을 호소했다.

A씨 : "고3 수험생과 대학생을 둔 엄마다. 교육비 부담을 무시할 수 없어 일하고 있다. 자원봉사를 해야 가산점을 받아 재취업에 유리하기에 해야만 했다. 너무 억울하다."

B씨 : "쓰고 버려진 일회용품이 된 기분이다. 근무평점도, 경력도, 자격증도 아무 소용이 없이 '운'에 의한 정규직 채용은 말이 안 된다. 저희를 뽑아 달라는 게 아니다. 다만 '기회'를 '공정'하게 달라는 것이다. 최소한 시험(면접)을 볼 기회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C씨 : "기간제 20개월, 기간제를 못 하는 기간에는 자원봉사를 하루 4시간씩 45개월째 하고 있다.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 될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근데 나는 4월 말에 기간이 만료돼 제외됐다. 경력 등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도서관의 특수한 고용 형태 모른 채 정규직 전환 대상 결정

▲ 고양 시장실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도서관 비정규직 노동자들. ⓒ 신지혜


노동자들은 '공정한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고양시가 정규직 전환 방침을 바꾸지 않겠다고 이미 공언을 한 상황이라,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2일 오후 시의원과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된 노동자 등이 참여한 간담회에서 고양시 관계자는 "정부 방침을 따르자는 전환심사위원들 의견이 많아, 두 차례에 걸친 투표 끝에 결정한 사항이라 번복될 수 없다"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정부 방침'이라는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 지난 22일 고양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현직만을 채용하라고 한 적이 없다"며 "공정하게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라"고 외쳤다.

실제로, 7월 20일 정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확인해 보니 '현직만을 채용하라'고 못을 박지 않았다. 정부 가이드라인은 이런 사태를 염두에 두었는지, 형평성 등을 고려,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해 공정하게 하라'는 당부까지 했다.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관 단위에서 자율적으로 추진하면서 이해 관계자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한다. 고용 승계와 공정 채용 원칙 간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기관별로 이해 관계자의 협의 등을 통해 결정한다. 다만, 현재 근로 중인 근로자 전환이 원칙이고, 청년 선호 일자리 또는 인원이 주기적으로 변경되는 경우 등은 형평성 등을 감안, 제한 공개, 가점 부여 등 적합한 방식을 채택할 수 있다."

고양시는 정부 방침을 우격다짐 식으로 적용했다.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정규직 전환 대상을 결정한 심의 위원들이 도서관의 특수한 고용 형태를 알지 못한 채 방망이를 두드린 것이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의 분노는 더 커지고 있다.

고양시 관계자는 22일 간담회에서 "도서관의 특수한 고용 형태를 몰랐고, 따라서 심의 위원들한테 알려주지를 못했다"라고 밝혔다.

이번 일을 통해 알려진 고양시 도서관의 인력 운용 시스템은 충격적이었다. 비정규직을 끊임없이 양산하고, 지속해서 노동을 착취하는 구조였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일한 만큼 보상 받기를 원한다는, 그래서 필요한 인력은 합당한 임금을 주고 고용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그동안에 있었던 이러한 행위를 반성하는 의미에서라도 고양시는 짧게는 2년 길게는 11년 동안 기간제 노동과 자원봉사를 반복한 노동자를 외침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쓰고 버려진 일회용품 된 기분"이라는 도서관 노동자의 말을 뼈아프게 새겨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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