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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감독관들이 2교시를 유독 피하고 싶은 이유

[아이들은 나의 스승 125] 2018 수능 감독기

등록|2017.11.26 11:39 수정|2017.11.28 13:37
수험생들만 긴장한 건 아니다. 간밤에 잠을 설쳤는데도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뜨였다. 캄캄한 새벽 6시. 7시 20분까지 시험장에 도착하자면 이른 시간도 아니다. 잠이 덜 깬 탓에 입맛도 없는데, 아침을 챙겨 먹으려니 이마저 고통스럽다. 6시 30분, 신분증과 도장을 챙겨 부리나케 길을 나섰다.

주변은 아직 한밤중인데 시험장만은 대낮이다. 교문은 경찰차의 경광등과 선배들을 응원하는 고등학생들의 피켓들이 뒤섞여 어수선하지만, 교문에 들어서는 수험생의 낯빛은 하나같이 비장하다. 부쩍 추워진 날씨 탓일 테지만, 유난히 두툼한 외투 차림에 어깨가 잔뜩 움츠려 있다. 하긴 긴장을 하면 더 추운 법이다.

▲ 수능이 일주일 미뤄져 치러진 가운데 포항 지진으로 포항고등학교에서 포철중학교로 시험장이 바뀐 학생들이 23일 오전 포철중 시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조정훈


감독관 회의실은 일찍부터 북적였다. 그들 중에는 6시에 도착했다는 분도 있었다. 하나같이 긴장이 돼서 잠을 설쳤다고 했다. 감독관들이 수험생들보다 한 시간 가량 일찍 출근해야 하는 이유는 전날 익힌 감독관 유의사항을 다시 복습해야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포항 지역 지진으로 지진 대응 매뉴얼을 별도로 숙지해야했기에 여느 해와는 마음가짐부터가 달랐다.

감독관으로 차출된 이들 중 중학교 교사들은 수능 감독에 대한 부담이 무척 크다. 고등학교 교사들이야 학기마다 한두 차례씩 정기 모의고사를 치러서 익숙하지만, 그들은 영역별 시험시간은커녕 과목명조차 낯설어한다. 감독관 회의 중 매뉴얼을 밑줄 긋고 별표 치며 열심히 공부하는 이들은 십중팔구 중학교 교사들이다.

그러다보니 제1감독관으로 배정되는 게 두렵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매 교시마다 두세 명씩 들어가는데, 제2감독관에 비해 제1감독관이 수행해야 하는 일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실은 일이 많거나 힘들다기보다 시험 방식이 낯설어 어렵게 느끼는 것이다. 중학교 교사들 중에는 매뉴얼을 아무리 읽어봐도 이해가 안 간다며 하소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결시생 처리, 반입금지물품 수거 및 목록 작성, 본인 확인 등 시험 시작 전 해야 할 일이 많은 1교시와, 개인별 선택과목이 달라 문제지를 시험 도중 넣었다 빼야하는 4교시 탐구영역 시간을 가장 힘들어 한다. 이때 중학교 교사가 제1감독관으로 배정되면 그야말로 '멘붕'이 온다고 한다. 순간순간마다 수험생이 지켜야할 행동을 지시하는 이가 바로 제1감독관이다.

8시 10분 교실 입실, 낯선 도시락 가방

▲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23일 오전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이동고등학교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 연합뉴스


8시 10분, 교실에 입실했다. 1교시 국어영역 시험이 시작되는 시간은 8시 40분이지만, 앞서 말한 것들을 일일이 챙기자면 30분이 그리 넉넉한 시간은 아니다. 교실을 대강 둘러보니 28명 중 세 자리가 비어있다. 결시생 자리다. 본령이 울리기 전에 입실한다면 응시가 가능하지만, 경험으로 미루어 그 자리는 오늘 내내 비워져 있을 것이다.

아이들마다 긴장한 빛이 역력하다. 시작도 전에 초콜릿을 입에 넣는 아이, 티슈로 연신 손바닥을 닦는 아이, 기도하는 듯 눈을 감은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마치 1학년 입학 직후 낯선 친구들 사이에 데면데면하게 앉아있는 모습 같기도 하고, 무슨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듯한 긴장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내 본령이 울렸다.

재차 본인 확인을 할 겸 응시원서철을 들고 다시 아이들을 살펴보았다. 예년에 비해 검정고시 출신 응시생이 많이 늘었고, 재수생은 줄어든 듯했다. 결시생을 뺀 25명 중 세 명이 개인별 접수를 한 검정고시 출신이었고, 재수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 예년 같으면 한 시험실에 서너 명이 재수생이었고, 검정고시 출신은 만나기조차 힘들었다.

다른 시험실에서도 대체로 비슷했다. 섣부르지만, 재수생이 준 건 몰라도 검정고시 출신이 늘었다는 건 고등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이 시나브로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같으면 눈 질끈 감고 견디며 다녔을 테지만, 요즘 아이들의 선택은 빠르고도 분명하다. 일각에서는 늘어나는 자퇴생 문제가 공교육 개혁을 이끄는 동인이 될 수 있다는 씁쓸한 이야기도 나온다.

아침잠이 모자랐을 텐데 첫 시험이 주는 긴장 때문인지 하품하는 아이들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하긴 그들의 부모님은 오래간만에 자녀의 도시락을 챙기기 위해 이른 새벽녘부터 깨어 부산했을 것이다. 1년 365일 급식소에서 점심과 저녁을 해결해온 아이들에게나 그들의 부모님들에게 점심 도시락은 이미 어색한 물건이 됐고, 추억으로만 남았다.

그래선지 엊그제 장만한 것 같은 새 도시락 가방들이 교실 앞에 가득 놓여있다. 그다지 오래되지도 않은, 학교에 급식소가 없던 시절엔 책가방은 집에 놓고 가도 도시락 가방만은 꼭 챙겼더랬다. 매일 야간자율학습까지 해야 했으니 도시락은 늘 점심과 저녁 두 개씩이었고, 책가방보다 더 무거웠다.

오늘 같은 겨울철엔 보온 도시락의 '브랜드'가 집집마다 빈부의 격차를 드러내는 지표이기도 했다. 교실 앞에 줄지어 늘어선 도시락 가방을 보노라니, 며칠 전 생뚱맞게 수능 날 시험장 학교마다 급식소를 운영하지 않는 이유를 물어온 아이가 떠올랐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궁금하게 여겨본 적이 없어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부지불식간에 이렇게 눙쳤다.

"적어도 수능일 하루만이라도 '급식충'에서 해방될 수 있으니 기쁘지 않니?"

'마의 2교시' 수학영역, 아이들이 풀처럼 눕는다

10시 30분, '마의 2교시' 수학영역이 시작됐다. 1교시는 시험시간도 짧은데다 사전에 준비해야할 게 많아 그다지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다. 하지만 2교시는 시험지와 답안지를 배포하는 것 말고는 줄곧 100분간을 한곳에서 정자세로 서 있어야 한다. 다리라도 풀어줄 겸 앉았다 일어서거나, 시험실 앞뒤로 돌아다녔다가는 예민한 수험생들로부터 항의를 받기 십상이다.

더욱이 바닥이 나무로 돼 있다 보니 발을 디딜 때마다 삐걱 소리가 나서 옴짝달싹도 못할 지경이었다. 매뉴얼 상 감독관은 시험과 관련된 지시 외에는 말을 해서도 안 되고, 돌아다녀서도 안 되며, 교탁이나 결시생의 책상에 걸터앉아서도 안 된다. 고문이 따로 없다. 감독관들 사이에서는 2교시 피하는 것을 최고의 복으로 여긴다. 참고로 감독관은 4교시 중 한 번은 쉰다.

몇 해 전 시험장 관리자에게 부러 왜 의자에 앉아서 시험 감독을 하면 안 되는가를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유를 설명하기는커녕 그저 1년에 딱 한 번뿐인데 고생 좀 해달라는 식으로 동문서답을 했다. 집중해야 하는 시간에 의자에 앉게 되면 긴장이 풀려 시험 감독에 소홀할 수 있다는 게 그나마 지금까지 들었던 답변 중에 가장 그럴 듯한 것이었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라지만, 100분 동안 줄곧 부동자세로 서서 감독한다고 집중력이 유지된다는 발상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시야 확보가 어렵다면 키 높은 의자를 따로 준비하면 될 일이다. 매년 치러지는 수능이고, 그때마다 시험장으로 쓰일 테니 '1회용'도 아니다. 물론, 얼마든지 학교에서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채 3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수험생 셋 중 하나 꼴로 늦가을 바람에 억새풀 드러눕듯 책상 위로 쓰러졌다. 명색이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이라는 수능인데, 학교에서 치르는 모의고사 때의 교실 풍경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땐 셋 중 하나만 눈을 뜨고 있었고, 12시 10분, 종료령이 울릴 때까지의 '생존자'는 달랑 2명뿐이었다.

다른 교실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시작하자마자 답안지에 마킹을 끝내고 절반도 넘게 바로 엎드려버렸다며 시험 감독하기가 정말 수월했다고 말하는 분도 있었다.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넘쳐났던 이유는 모두가 수학 '나'형을 선택한 시험장이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많은 아이들이 수학이 싫어 문과를 선택하고, 문과 응시생 중 열에 일곱은 '수포자'라는 것이다.

'수포자'는 더 이상 아이들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는 문제가 된 것 같다. 차라리 '찍는' 것이 '푸는' 것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 수학영역 시험은 그들에게 시간만 허비할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몇몇 아이들은 시험지의 넓은 여백에다 능숙한 솜씨로 게임 캐릭터를 그리거나, 말풍선이 있는 만화를 흉내 내기도 했다. 그렇게 100분이라는 긴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그들의 '소일거리'를 감상하면서, 국영수를 기본 교과로 설정해 놓고 모든 아이들에게 시험을 치르도록 하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인가를 생각해보게 됐다. 대학 공부를 위해 필요한 기본 소양이라는 걸 인정한다고 해도, 그렇듯 '찍고 자는' 아이들조차 모두 대학에 가는 현실이라면 재고해야하지 않을까. 오로지 입시를 위한 수학이 학문으로서 제 기능을 하고 있는가는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끝까지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는 2명을 위해 나머지 24명이 들러리를 서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2교시 결시생 두 명도 아마 수학영역 때문에 수능 자체를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애초 그 2명만 수학영역에 응시하도록 했다면, 적어도 24명의 아이들 각자에게 주어진 100분의 시간이 훨씬 값지게 쓰였을 것이다. 2400분이면 꼬박 이틀에 가까운 긴 시간이다.

시험 끝나자마자 '포항' 검색하는 아이들

2교시가 끝나고 50분간의 짧은 점심시간이 이어졌다. 아이들에게 점심시간은 점심만 챙겨먹는 시간이 아니다. 교정 여기저기서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지만, 막상 목격해도 학교에서처럼 불러다 벌주기가 여간해선 쉽지 않다. 심지어 화장실도 식사 후에 양치하는 아이들보다 담배 피는 아이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적어도 수능 날엔, 시험 도중 부정행위만 아니라면, 웬만한 일탈 행위쯤은 모두 용서된다.

오후 1시 10분. 국내 공항에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이 금지된 '절대 시간'인 영어듣기평가가 이어진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대학입시 때문에 모든 공공기관과 기업체의 출근시간이 늦춰지고, 숱한 항공기들이 듣기평가가 끝날 때까지 허공을 빙빙 맴돌아야 하는 나라가 세계에 또 있을까 싶다. 감독이 비어 부러 건물 밖에 나가보니, 정말이지 도로 위 오가던 자동차들도 모두 멈췄는지 바람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렸다.

오후 2시 50분, 4교시 사회탐구영역 시험이 시작됐다. 올해 절대평가가 처음으로 도입된 영어영역의 고비를 넘기고, 수능은 어느새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한국사와 사회탐구 두 과목의 시험이 한꺼번에 치러지다보니, 중학교 교사들에게는 낯설고도 무척 부담스러운 시간이다. 한 분은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사회탐구과목이 이렇게나 많은지 새삼 놀랐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제1감독관으로 배정됐다. 지난 2교시 수학영역시험 때도 제2감독관이었는데, 제1감독관 업무를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제1감독관으로 배정된 분이 올해 중학교로 첫 발령을 받은 초임교사였기 때문이다. 수능 감독관 업무도 당연히 처음이었을 테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싶다. 입장을 바꿔보면, 적어도 제1감독관은 고등학교 교사로 배정하는 것이 맞는 듯싶기도 하다.

기실 한국사는 수능과목 중에 가장 중요한 시험이다. 점수와 상관없이 응시하지 않으면 수능 자체가 무효가 되는 탓이다. 하지만 절대평가인데다 점수와 등급을 중시하는 대학이 많지 않아 시험 부담은 적은 편이다. 특성화고등학교 출신 수험생들 중에는 한국사영역만 응시하는 경우도 있어, 30분의 시험시간이 끝나면 가방을 챙겨 곧장 하교하게 된다.

한국사를 포함해 세 과목을 한 답안지에 마킹해야 하니 수험생뿐만 아니라 감독관도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특히 한 과목만 응시하는 아이와 두 과목을 다 선택한 아이가 한 시험실에 섞여있는 경우에는 답안지 작성에 개별적인 안내와 지도가 필요하다. 아직까진 드문 사례이지만, 대학입시의 전형이 다양해질수록 수능의 응시 형태 역시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드디어 수능이 끝났다. 고사본부에서 답안지와 시험지를 최종 점검하는 동안, 아이들은 돌려받은 스마트폰으로 연신 '포항'을 검색했다. 화장실에서 만난 한 아이는 뜬금없이 혹시 '포항' 소식을 아느냐며 묻기도 했다. 아직 '예상 등급 컷'이 발표되기 전인 탓이기도 할 테지만, 그들 역시 사상 초유 일주일 연기된 수능이 전국적으로 무사히 치러지기를 간절히 바랐나보다.

끝으로, 시험장 관리자들에게 건의할 내용이 하나 있다. 물론 이곳만의 일일 수도 있고, 기우라면 기우겠지만, 감독관들이 패용하는 명찰에 대해 지적해야겠다. 명찰에 굳이 소속 학교와 이름을 나란히 적시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젊은 여교사들이 적지 않은데, 자칫 그들의 개인정보가 생면부지 남자 수험생들에게 악용될 소지가 있을 것 같아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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