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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처럼 되고 싶다'는 딸, 마음이 덜컥해요"

[결혼제도를 묻다 ②] 기혼여성집담회

등록|2017.12.01 13:52 수정|2017.12.01 14:34
2015년 통계청이 발표한 혼인·이혼 통계를 보면, 지난해 혼인은 30만 2800여 건으로 2003년 이후 가장 낮았다. 그에 비례하여 1인가구 수는 급증했다. 불과 20년 전 5%에 불과하던 1인가구는 2015년 전체 가구의 27%로, 4인가구를 제치고 한국 사회의 가장 대표적 가구 형태가 되었다.

2016년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은 '1인가구 여성'을 키워드로 활동하면서, 1인가구여성 150명에게 이러한 현상의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절반 가까운 여성들이 '결혼관과 가족관의 변화'라고 답했다. 구체적인 답변들을 살펴보면 결혼과 가족제도 내에서의 불평등, 여성에게 특히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가정 내 권리와 의무의 불균형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낮은 혼인률과 1인가구 급등 현상은 가족 내 '성 불평등'을 여성들이 빠르게 인지한 결과로 보여 진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여성의 위치에서 문제 제기되거나 사회적 대안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은 2013년~2016년간 보육-주거-노년-1인가구 등의 키워드로 활동을 지속하면서 가구 단위가 아닌 개인단위의 법·제도담론 구성의 필요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2015년 민우회가 워크샵을 통해 만난 대부분의 중년 여성들이 스스로의 노년에 대해, 배우자, 자녀와 같은 혼인과 혈연을 바탕에 둔 기존의 가족보다는 친밀한 감정 관계로 구성된 공동체를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현행법상 가족을 인정받을 수 있는 통로는 혈족과 친족개념에 기초를 둔 혼인, 출산, 입양밖에 없다.

민우회는 결혼제도를 경험했거나 배제 혹은 제도 바깥을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인 결혼에 대해 질문하고, 다양한 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넘어, 가족의 의미를 재정립하고자 한다. 현재 결혼제도를 경험한 여성/남성, 비혼여성들과 각각 1회식 총 3차 집담회를 진행하였다.

[지난 기사 링크] 결혼하고 든 생각 "난 이등시민이구나"

"내가 발휘하고 싶었던 능력은 이게 아닌데..."

김지은(이하 김) :  각자 월급 쓸 때는 괜찮았는데, 애를 낳고 전업으로 육아를 하면서, 경제력이 없어지니까 내가 약간 무능력하다고 느꼈을 때는 돌파구가 없더라고요. 남편은 아무 말도 안 해요. 애기 키우니까 집에 있는 거고 고마워해요. 근데 스스로 주눅이 들고 힘들더라고요. '내가 발휘하고 싶었던 능력이 이건 아니야' 그런 걸 느끼는 거 같아요.

박진희(이하 박) : 저는 5녀 2남의 맏이였어요. 아들이 나중에 태어나서 가짜장손 노릇을 해야 했어요. 저희 집 제사가 열일곱 개가 넘어요. 집안의 상을 당하면 장손이 없으니까 저한테 가짜 옷을 입히는 거죠. 요만한 애기를 툇마루에 앉혀놨는데 상복 알죠? 남자들 입는 거. 딸이 많은 집의 장녀는 무언의 죄책감이 있어요. 그게 저는 20대 때 드러나더라고요. 남자를 만났는데 제사를 몰라, 제사가 없대요. 작은 아버지가 목사라느니 이러면서. 그리고 두번째는 남매예요. 형제가 많지 않고. 결혼할 조건이 충분히 갖춰진 거죠.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결혼을 했죠. 근데 제사 열 일곱 개 가진 형제 많은 원가족 집이나 아주 단촐하고 남매밖에 없는 집이나, 내가 사는 형태는 별로 다르지 않았어요. 가사노동이나 내 위치가 별로 달라진 거 없고. 사실상 수평 이동한 건데, 내가 왜 여기서 안 벗어나지? 딸 둘 낳고 키우는 엄마, 아내, 며느리라는 타이틀을 사회가 나한테 준 거잖아요 그것을 벗어던질 만큼 내가 다른 대안이 없는 거죠. 20년 살면서 내가 경제적으로 남편한테 완전히 종속된 거예요.

"며느리 자리는 누가 와도 대체될 수 있는 역할이에요"

유정은(이하 유) : 저는 이혼 생각을 했던 건 시부모님과 연관될 때. 왜냐면 남편하고는 뭐 싸우고 이래도 다 괜찮은 거 같아요. 둘이서 말이 통하고 그러니까 결혼을 했고. 근데 시부모님이 끼면 남편도 말이 안 통하는 지점이 생기고. 저는 결혼하고서 2년 정도 됐을 때, 어느 날 장을 보는데요, 갑자기 너무 우울한 거예요. 갑자기 그날 확 왔어요.

저도 화목한 가정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었고 아빠한테 너무 벗어나고 싶었고 내가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여리여리한 남자를 골랐어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그런 신랑을 만났지만, 시댁 어른을 만나보니까 제가 그 안에 편입할 수 없는 거예요. 저는 그냥 며느리인 거고 그 며느리 자리는 내가 아닌 다른 여자, 누가 와도 잘 할 수 있는 거고. 사람들이 다 이렇게 살려고 결혼하는 건가? 높은 산의 정상을 멀리서 봤을 때는 아 그냥 저기 올라가면 행복하겠지 했는데 결혼이란 걸 하고나서 봤더니, 내가 이런 자리를 선택한다고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니겠구나. 해서 우울감이 왔었고. 신랑한테 거기까진 말은 안했지만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이혼이 주는 만족감이 있어요"

서경주(이하 서) : 저는 매일매일 갈등이었어요.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어떻게 저 인간을 바꿔서 내가 살아 낼 것인가 하는 연구를 하던 시기인데. 이걸 내려놓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걸 느끼게 된 거예요. 이혼하고 경제적으로는 당연히 궁핍해졌죠. 근데 이혼이 주는 만족감이 있어요. 저는 대학교 3학년인 딸이 있는데 딸이 친구들한테, '혼자 살고 이혼하는 게 더 행복한 거 같기도 해' 이런 얘기를 거침없이 해요. 저는 이혼이 답이라는 게 아니라 이혼한 사람도 있고 결혼한 사람도 있고 결혼했는데 따로 사는 사람도 있고 그냥 연애만 주구장창 하는 사람도 있으면 우리가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김 : 동의해요 저희 엄마는 소위 경상도 시댁 등쌀에 우리 가족을 못 챙기고 아빠 장남 노릇을 20년을 하다가 지쳐서, 제가 이혼하라고 해서 이혼한 케이스예요. 근데 저희 엄마 자립해서 너무 잘 살거든요. 잘 먹고 잘 살더라고요. 근데 죽은 남편을 대신하는 아들에 기대 사는 저희 시어머니를 보면, 제 눈치를 보는 게 느껴져요. 같은 60대 여자의 삶이 달라지는 순간을 봐요.

"결혼 했는데 왜 같이 살지 않아?"

정은경(이하 정) : 저는 남편과 현재 따로 살고 있는데요, 사실, 주변에 친구들이나 아니면 뭐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남편한테 안 내려가냐, 이런 말 되게 많이 하거든요. '남편이 보고싶어 하지 않냐' 이런 얘기 되게 많이 하고. '시댁에서 뭐라 하지 않냐' 이런 얘기 되게 많이 하는데 '남편도 동의해서 이런 생활 하는 거다' 얘길 해도 만나면 또 그 얘길 물어봐요. 심지어는 자주 다니는 미용실에 있는데 두 달 세 달에 한번 씩 가잖아요? 그러면 그 분은 매번 저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뭐 그런 식으로 계속 주변에서 압박을 주는 게 있더라고요 이런 생활을 유지하는 거에 대해서.

서 : 이삼십 년을 따로 살아온 사람이 갈등이 없다는 건 불가능한 거 같고, 서로 간격이 유지될 수 있어야 좋은 관계로 오래 갈 수 있는 거 같아요. 저는 따로 사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따로 살면서 가사노동이나 육아로부터 자유롭고 연애하듯이 노력하고 존중하면서 이어나가는 게 아니면 딱히 재혼 생각은 없어요. 제가 마흔 살 쯤 이혼을 했고 50세쯤 다시 결혼하겠다는 결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절대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10년 가까이 결혼하지 않고 살아보니까, 만족감이 너무 큰 거예요.

"작은 균열들이 있어야 사회가 변화할 수 있어요."

박 : 딸이 남자친구가 생기니까 엄마 결혼 어때?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그 쪽의 부모가 아들이 결혼하면 완전히 남처럼 독립해서 살 수 있는 집이어야 한다.'는 말을 했어요. 부모가 아들, 아들이 부모를 완전히 떼어놓을 수 있을까? 저는 그럴 수 있을 거 같아요. '네가 결혼하는 순간 가까이 안 살고 싶고, 엄마 반찬 어쩌고 하는데 어 너네 반찬 사서 먹어, 근데 살 데가 없으면 나한테 와서 사. 그럼 내가 비싸게 팔 거야.' 이러면서 계속 세뇌를 시키거든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런 현실적 한계 속에서도 작은 균열들이 자꾸 생겨야만 문화가 바뀔 수 있고 우리가 숨 쉴 수 있다는 거예요. 내가 약간 손해 보면서 믿어보는 변화나 균열이 사회를 바꿀 거예요.

저는 결혼 제도를 흔들어 놓는 언어나 대체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오히려 결혼을 무력화하기 위한 방안을 생각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지금 생각나는 실천적 방법 중의 하나가, 혼자서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제도. 이걸 만들어내는 방법이 오히려 빠른 길이 아닐까요? 지금 1인가구가 늘어나고 있고 제도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잖아요. 보통 1인가구 얘기할 때 주거에 집중되어 있는데, 저는 좀 더 넓혀서 생활 주체로서 설 수 있는 총합적인 제도가 필요한 거 같아요.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아이도 키울 수 있고, 나를 중심으로 삶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이런 방식의 균열이 다른 방식의 결혼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해요.

박 : 누가 경제권을 갖고 있느냐가 핵심이기도 해요. 저는 결혼이 왜 이렇게 기울어져있을까. 안에서부터 밖으로까지 이거는 온전히 우리 사회의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거라고 봐요. 그래서 문화를 바꾸자고 하기 이전에 여성이 어떻게 경제권을 가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먼저 질문해봐야 해요. 내가 결혼을 안 하고 가족에 쏟아 부은 정성만큼 사회에서 나 혼자 먹고 살았으면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생각 하거든요.

유 : 오늘 청년저축 통장 신청을 했는데, 저는 배우자가 있어서 배우자와 부모 모두 서명을 받아야 되더라고요. 사실 결혼하고 아빠랑 연락 잘 안하고 지냈는데 서명 받으러 가야 되는 거예요. 엄마는 아빠와도 이혼한 상탠데 어머니 서명도 받아야하고요. 엄마가 지금 연락이 안 돼요. 저희랑 연락을 하고 싶어 하지 않으셔서. 상황을 설명했더니 그럼 사유를 쓰라고 해서, 그걸 쓰고 있는데 너무 비참한 기분이 들었어요. 내가 어쨌든 성인이고, 집에서 독립 한 여성인데 나의 가난을 증명하기 위해서 배우자, 엄마, 아빠 서명이 다 필요하고 이런 게 너무 괴롭더라고요. 결혼했다고 끝이 아니구나. 너무 답답했어요. 저는 이런 시스템이 변했으면 좋겠어요. 

"딸에게도 모델이 필요하다는 걸 요즘 느껴요"

김지은(이하 김) : 애 키우는 데 개입이 많이 들어오잖아요. 내가 예쁜, 착한 며느리니까 애도 재롱떠는 애, 착한 애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받는 거예요. 두 살 밖에 안됐는데. '애가 왜 이렇게 안 웃어?' 했을 때 제가 할 말이 없더라고요.  평소에 너무 착한 며느리고, '아들 낳아야지' 이러면 '맞아요 어머니 아들 낳아야죠', 이런 말을 하고 살았으니까. 이제 2차전이구나. 딸이 위해서, 애한테도 모델이 필요하다는 걸 요즘 좀 느끼거든요. 내 딸이 나를 보고 배운다고 생각하니까. 딸한테 '아우 아가씨가 웃어야지' 이런 얘길 한다든지 그럴 때, '어머니 내가 그런 원하는 지향은 그게 아니에요. 우리 딸을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아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그런 대응력이요. 

강지영(이하 강) : 저희 애가 다섯 살인데 이제 말과 사회생활을 터득하고 있어요. 언젠가 애가 그러는 거예요, "엄마가 할머니가 되면 나도 엄마가 되고 싶어요." 라고. 그 말을 듣고, 저부터도 축복해주기보다, '엄마가 되겠다고? 결혼을 하겠다는 얘기야? 누군가의 며느리가 되겠다는 얘기야?' 이런 마음이 들고, 저도 모르게 마음이 덜컥하고. 걱정을 하는 거예요.

애가 생기고 나서 계속 시간 축을 상상해 보게 되거든요. 나의 과거의 시간과 현재 내가 아이한테 어떻게 비칠 것인가. 결혼'식'이 아니라 결혼의 이미지가 '생활'로서 있었으면 좋겠고, 꼭 결혼해야 행복한 게 아니라 '혼자서도 행복한데 같이 살아봤더니 그것도 괜찮더라.' 라는 식으로 얘기했으면 좋겠고. 나중에 따로 살아도 좋고. 그런 거에 대해서 얘기했으면 좋겠는데, 아이를 키우는 단계에서 곳곳이 지뢰밭인거예요. 왕자님 만나는 얘기 안 읽어 주고 싶은데 유치원에서 이미 듣고 와서 읽어달라고 하고. 다 연결되어 있어요.

지난 기사에서는 결혼과 함께 여성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주였다면, 이번 기사에서는 이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 다르게 살기, 경제력 문제, '딸'을 키우는 부모인 동시에 여성으로서 딸에게 어떤 롤모델이 될 것인가와 같은 현실적 고민을 함께 나눴다. 남성의 경우 아버지로서의 역할과 남성으로서의 자신이 갈등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들은 여성으로서의 자신과 '엄마', '아내', '며느리' 사이의 충돌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집담회에 참석한 이의 말처럼 사회의 변화는 작은 균열들로 시작한다. 그 균열은 결국 조금 다르지만 현실의 삶에 기반한 '목소리'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최원진씨는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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