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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 영화'가 이런 풍자까지? 김경식도 쫄게한 멘트들

[장수 기획 ⑨-2] <출발! 비디오 여행> 산증인 되기까지 그가 겪은 시행착오들

등록|2017.12.10 16:15 수정|2017.12.10 20:00

▲ 서인 아나운서, 개그맨 김경식, 양승은 아나운서가 11월 3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한 녹음실에서 MBC 장수 프로그램 <출발 비디오여행>의 목소리 녹음을 하고 있다. ⓒ 이희훈


▲ <출발! 비디오 여행> 측은 15년 이상 헌신한 방송인 김경식과 성우 이철용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기념사진과 조촐한 축하행사 당시 모습. ⓒ 제작진 제공


같은 영화를 다루고 있다고 해도 전부 똑같은 영화 소개 프로는 아니다. 어떤 곳은 평론가 출연진을 또 다른 곳은 개그맨 출연자를 두는 등 시청자들에게 저마다 색다르게 영화 정보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지상파 영화 소개 프로 중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출발! 비디오 여행>(아래 '출비')의 특징은? 단연 방송인 김경식, 김생민, 성우 이철용, 김구 등 '터줏대감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끼린 장난삼아 노후 보장 프로라고 하는데 (웃음) 기본적으로 이 네 분이 자리 잡고 계시니 섣불리 다른 코너를 할 수가 없다. 한다 해도 이 분들 이상의 효과를 낸다는 보장도 없고. 평론가 분들에게 조언을 받긴 하지만 우린 우리의 목소리를 통해 영화를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것이기에 이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오행운 책임 프로듀서)  

별점 매기기의 한계

▲ MBC <출발 비디오여행> 오행운 책임프로듀서와 '영화 대 영화' 코너 진행자 김경식씨가 녹화전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희훈


앞서 언급한 이들이 바로 <출비>를 떠받치는 네 개의 기둥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지난 30일 녹음에 참여하러 상암동 MBC를 찾은 김경식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이철용 성우와 함께 만 15년을 채우며 해당 장수 프로 내에서도 가장 오랜 기간 프로그램을 채우는 이 중 한 사람이다.

스튜디오를 찾아 여기저기서 그에게 축하한다는 말이 건네졌다. 파업 여파로 조용히 치러지긴 했지만 제44회 한국방송대상 개인상 성우 부문에서 김경식이 수상의 영예를 안은 것. "조용하게 받아왔다"며 그가 겸손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맡고 있는 '영화 대 영화'는 그 자체로 <출비>의 상징이다. 과거 전창걸이 맡다가 그에게 넘어오면서 고정 팬들이 생길 정도가 됐다. 장르 불문, 재미 여부를 떠나서 그의 입을 거친 영화는 어떻게든 숨은 매력을 드러냈다. 이걸 믿고 영화를 본 일부 관객들은 "또 속았다"며 그에게 영화 소개의 '사기꾼'이라는 애정 어린 별명을 붙이기도.

"워낙 처음엔 전창걸씨가 자기 스타일로 코너를 잘 구축해놨더라. '야, 이걸 어떻게 뛰어 넘나' 처음엔 고민하면서 내 색깔대로 하다가 조금씩 자리를 찾아 온 것이다. 초반엔 NG를 너무 많이 내서 녹음만 1시간 넘게 한 적도 있다. 다른 프로그램도 자연스럽게 모니터링을 하게 됐다. 이 코너를 맡은 초기에 가장 놀랐던 게 대부분의 영화 소개 프로들이 <출비>의 호흡과 형식을 쫓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생각한 것 이상의 큰 시스템이 있다는 걸 알았지."

코너 자체를 준비하는 시간은 짧다. 스튜디오 녹화에 걸리는 시간은 단 15분, 여기에 따로 서인, 양승운 아나운서와 더빙을 맞추는 시간도 30분 내외다. 김경식은 "제게 대본이 넘어오기까지 제작진들이 일주일 동안 준비하는 과정이 길다"며 "저야 대본에 나온대로 잘 소화하면 된다"고 말했다.

겸손하게 답했지만 분명 김경식만의 특장점이 이 코너에 담겨 있다. 같은 대본이라도 그에게 넘어 가면 특유의 목소리 톤과 연기 등이 덧붙여 또 다른 재미로 다가 온다. 그의 대본 소화 방식을 두고 오행운 피디는 "김경식씨는 마치 21세기 변사 같다"고 표현했다. 김경식 역시 "맞다! 특정한 정보만 전달하기 보단 감정을 넣어서 전달하니 그게 또 차별점일 것"이라 동의했다.

"영화 자체를 소개하는 게 아니라 저 자체로 분석한다. 대중의 입을 빌린 평을 내리거나 감상평을 전달할 때도 조금씩 비튼다. 제 2의 창작이라고 보셔도 된다. 짧게 영화를 추려서 재구성하는 거지. 신작이나 구작에 구애받지 않는다. 성공한 영화를 할 때도 있지만 잘 안 된 영화를 전하면서도 또 다른 재미를 부여하려 한다. 

개인적으론 영화에 평점을 매기는 것엔 회의적이다. 다분히 영화는 개인 취향이고 다양함이 존재해야 하지 않나. 개인이 느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별점 5개를 받은 영화라도 실제로 제가 보고 만족한 경우가 그리 많진 않았다. 영화를 다양하게 소개하고 싶다. 공포 영화를 소개할 때도 일종의 희화화를 넣어서 새롭게 전달할 수도 있고."

시행착오들

▲ 개그맨 김경식이 11월 3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한 녹음실에서 MBC 장수 프로그램 <출발 비디오여행>의 목소리 녹음을 하고 있다. ⓒ 이희훈


▲ MBC 양승은 아나운서가 11월 3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한 녹음실에서 MBC 장수 프로그램 <출발 비디오여행>의 목소리 녹음을 하고 있다. ⓒ 이희훈


물론 여러 시행착오는 있었다. "종종 의견을 냈는데 반영이 안 되다보니까…"라며 재치 있게 김경식이 운을 뗐는데 정리하면 지금의 시스템은 곧 제작진과 성우진이 서로 존중하면서 마련된 결과물이라는 사실.

"개그맨들 용어로 '깔깔이 요소'라고들 하는데 웃기는 내용들을 많이 준비해봤다. 근데 그걸 넣는다고 해서 (방송 시간) 7, 8분 내내 계속 웃을 수만은 없거든. 구성 자체가 촘촘하기도 하고. 영화들이 다양하기에 그걸 중심으로 잡고 조금씩 비틀고 색다르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전하는 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미 본 영화라도 '영화 대 영화'에서 보면 또 다르도록 말이다. 마치 영화의 챕터2 같은 느낌을 주는 거지."

인터뷰를 듣고 있던 오행운 피디가 말을 받았다. "우린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주의"라며 오 피디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분야 안에서 재밌게 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색다른 비틀기 말고 '영화 대 영화'의 중요한 차이점은 바로 풍자 요소다. 예를 들어 < 007스펙터> 소개를 마무리 할 즈음 그는 '정보조직을 통폐합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요? 테러를 막겠다고 국민들을 감시하는 걸까요'라는 말로 당시 정부가 주도하려 했단 '테러 방지법'을 은근하게 지적했다. "이 부분 역시 작가진과 피디님들이 고민한 결과"라며 그가 말을 이었다.

"제작진들이 제일 고심하지(웃음). 직원이니까 자칫 회사에 찍힐 수도 있고 마치 살얼음 걷는 기분일 텐데. 오히려 제가 '진짜 쳐도 되냐'며 되물을 때도 있다. 여러 풍자가 있었지. '녹차라떼'라고 4대강 문제를 비유한 적도 있고. 근데 여기에도 노하우가 있다. 이걸 힘줘서 전달하면 안 된다. 약간 흘리듯이 코미디처럼 녹여서 해야지. 정면 승부 보다는 옆에서 툭 치고 빠지는 그런 식으로 가야 한다.

또 영화에 대해 종종 쓴 소리도 할 때가 있다. 이것 역시 말로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비언어적인 부분을 살린다. '자, 이번엔 어떤 영화였습니다!' 이러고 말미에 한 숨을 푹 쉬는 거지. 이런 건 좀 살려달라고 피디님에게 부탁하곤 한다."

악어와 악어새

▲ 개그맨 김경식이 11월 3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한 녹음실에서 MBC 장수 프로그램 <출발 비디오여행>의 목소리 녹음을 하고 있다. ⓒ 이희훈


15년 간 한 자리를 끌어 왔다지만 김경식은 매번 새로움을 고민한다. 여러 유튜버들 채널 모니터링과 함께 그는 "영화 두 개를 비교하는 건 이미 있던 방식이지만 그걸 제작진이 꾸준히 발전시켜 온 게 지금의 결과"라며 "원조의 노하우에 여러 가지를 더하고 빼는 식인데 이게 쉽게 무너질 수는 없을 것"이라 내다봤다.

"예전엔 김경식 하면 딱따구리, 틴틴파이브 등의 수식어가 붙었는데 이젠 '영화 대 영화'가 가장 먼저 나온다. 짧은 녹화일지라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한다. 애정이 크다. 오행운 피디께도 감사드리는 게, 15년 됐다고 감사패도 주셨다. 이철용 성우님도 감사패를 받았다. 아 내부에서 이렇게 인정해 주시는구나 싶었지. 

영화와 우린 악어와 악어새 관계다. 관객 분들은 한국 영화를 사랑해주시라. (제작자 분들은) 천만 관객만 외치지 말고 다양하게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다. 정말 좋은 저예산 영화가 많거든. 어쨌든 지금 획일화 돼 있는 면이 있지 않나. 다양한 영화가 나오고 사랑받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도 할 일이 많아진다. 악어새인 우린 더 다양하게 소개하겠지." 

한번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몇 편씩 몰아본다는 김경식은 좋아하는 영화로 로베르트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와 <빅 픽쳐>, 최근에 본 <아이 캔 스피크>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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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은 약사에게' 진행은 서인·양승은 아나운서에게?
김경식 인터뷰 중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를 찾은 서인 아나운서와 양승은 아나운서의 이야기도 잠시 들을 수 있었다. 서인 아나운서는 지난 2016년 1월 김대호 아나운서의 뒤를 이어 <출비>에 합류했고, 양승은 아나운서는 2010년 3월부터 현재까지 진행을 맡고 있다. 

"장수 프로는 저마다 장수의 비결이 있는 것 같다. (최근에 합류했기에)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워낙 훌륭한 선배들 많이 있으니 그 분들과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실제로도 영화를 많이 좋아해야 이 프로를 잘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개봉하는 영화는 거의 다 본다. 티켓 값이 그래서 많이 들어가지(웃음). 회사 일이 많아서 시사회를 못가니까 심야 영화를 이용한다. <출비>의 장점 중 하나는 인기가 없는 영화라도 잘 소개해서 소생시킨다는 것? 여기서 소개한 영화를 나도 찾아서 볼 때가 많다. '아, 이런 느낌이었나?' 생각하곤 한다. '우리가 재밌게 전했구나' 혹은 '또 잘 속였구나' 내심 뿌듯하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는 사극, 그리고 액션이다. 안 좋아하는 장르가 있는데 로맨틱 코미디물? 제가 노총각이라...(웃음)" (서인 아나운서)

"모든 스태프들의 호흡이 좋기에 장수 프로가 될 수 있었던 거 같다. 김경식, 김생민님 등 처음부터 함께 한 분들이 계시거든. 김경식 오빠와 '영화 대 영화'를 함께 하는데 이젠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만큼 호흡이 살아있다. 앞으로도 장수해야 할 프로기에 우리의 역할을 잘 해야지.

서인 아나운서는 라디오 녹음이 있어서 언론 시사회 등에 못 가는데 전 미리 보는 걸 좋아해서 종종 간다. 둘이 오랜 시간 호흡을 맞췄는데도 지금까지 같이 시사회에 간 건 한 번 정도다(웃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 스릴러와 공포를 좋아한다. 무서워하진 않은데 잘 놀라는 편이라 주위에선 제 목소리에 놀라는 분도 계시다(웃음)." (양승은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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