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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보다 내가 먼저, 이런 엄마는 비정상인가요?

[주간애미] '요즘엄마' 장수연 MBC 라디오 PD가 말하는 '엄마가 된다는 것'

등록|2017.12.13 09:37 수정|2018.04.16 15:58
엄마의 존재는 늘 아이로 대체됩니다. 아이를 품은 '엄마'가 아닌, '미래'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라는 대중교통 임산부석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결혼과 출산을 거치면서 자신의 이름은 사라진 채 누구누구의 엄마로 살아가는 엄마들. [주간애미]는 '애 말고 엄마'에 집중합니다. '맘충', '니 애미'... 어느새 사회적 혐오의 대상이 돼버린 세상 모든 '애미'들을 위한 콘텐츠를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저자 장수연 MBC 라디오 PD ⓒ 이희훈


장수연 MBC 라디오 PD가 최근 펴낸 에세이집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어크로스)는 카페 화장실에 버려진 임신 테스트기 이야기로 시작한다.

"집이 아닌 카페 화장실에서, 그것도 시내 한복판에 있는 사람 많은 커피숍에서 임신 테스트를 해보는 여자의 심정, 아마 모르긴 몰라도 아이를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은 아니었을 겁니다. 불안하고 초조해서 급하게 테스트해봤을 가능성이 크지요. 저도 비슷했으니까요." p.22

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아이를 지우려고 병원까지 찾아간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배 속에 들어앉은 무언가('누군가'도 아니고 '무언가'라고 당시엔 생각했었다) 때문에 내가 세워둔 계획이 어긋나는 것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단호했다. 돌이켜보면 그땐 누구에게인지 모르게 화가 나 있었던 것 같다." p.24

고민 끝에 결국 수술을 감행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어영부영, 얼렁뚱땅" 엄마가 된 그는 사회가 규정하는 '엄마다움'과는 다소 거리가 먼 엄마다.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일본어 학원에 등록하는가 하면, 모유수유를 하면서도 맥주가 너무 마시고 싶어 기분 좋게 술을 마신 뒤 모유를 짜서 버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면서 그는 엄마들에게 백일주를 제안한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며.

뿐인가. 엄마의 음악 취향을 아이의 동요에 양보할 수 없다면서 '동요 듣기에 지쳤는데 아이와 타협이 안 될 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추천하기도 한다. 이처럼 그의 글에는 아이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도 중요한 '욕망하는 엄마'가 있다.

서른다섯. 어느덧 6살, 3살 두 딸의 엄마가 된 그는 책 소개 글에서 말한다. "아이가 보고 싶어 뛰듯이 퇴근하는 마음도 나이고,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곁길로 새는 마음도 나"라고. 이 책은 어느 날은 애가 먼저였다가, 어느 날은 내가 먼저였다가 분투하는 엄마의 "내면전쟁사"다. 그 이야기를 참 솔직하게 풀어낸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소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박사는 그를 "요즘 엄마"라며 "엄마는 이래야 한다는 말에는 고개를 돌리고 강요된 모성애는 거부하지만 여전히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라고 소개한다.

11월의 마지막 날, 그가 연출하는 <미쓰라의 야간개장> 녹음 부스에서 장수연 PD를 만났다. 72일간의 MBC 총파업을 마치고 복귀한 그는 분주해보였다.

"조리원 나오자마자 학원 등록... 왜 그렇게 나를 못살게 굴었을까"

▲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저자 장수연 MBC 라디오 PD가 일하는 녹음실 ⓒ 이희훈


- 2015년 7월 '브런치'에 처음 글을 올렸더라(이 책은 2년간 브런치에 올린 글을 엮은 것이다).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

"글을 써야겠다, 생각하고 글을 쓴 적은 별로 없다. 막 차오르는 느낌이 있다. 말하고 싶다, 말하고 싶다, 정말 차올라서 뱉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느낌일 때 글이 나온다. 못 참겠는 그런 순간들. 밤에 애가 깰 거 같으니까 팔베개를 한 상태에서 핸드폰 메모장으로 쓰기도 하고. 애 재우고 나서 잠 안 와서 맥주 마시고 쓴 글도 있고. 저한테는 그런 시간이 정말 필요했다. 아이 키우면서 너무 바쁘게 하루하루 제 내면을 정리하지 못하고 허덕허덕 살았다. 이게 어느 순간 참을 수 없어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가 책에서 글쓰기를 '똥싸기'에 비유했는데 농담이 아니라 숙변처럼 쌓여있던 것들을 글로 푼 것이다."

- 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자기계발을 위해 일본어 학원에 등록한 걸 보면서 아이를 낳았지만 '나'를 놓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 느껴졌다.
"제가 열등감이 좀 있고 잘하고 싶은 마음도 크고 다른 사람 시선도 의식하고, 그런 종류의 인간이다. 아이를 가지고 낳고 조리하고 육아휴직하고 그러면서 계속 조급함이 있었던 것 같다."

- 일본어능력시험 치다가 중간에 뛰어나와서 모유수유한 이야기도 나온다.
"시험을 네 시간 정도 치는데 중간에 쉬는 시간이 20분이었다. 그때 남편이 아이와 함께 기다리고 있는 차에 가서 수유를 했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 빼면 수유할 시간이 10분밖에 없었다. 그러데 수유가 10분 안에 안 끝나니까 애는 더 먹고 싶어 하는데 빼고 다시 시험 치러 간 거다(웃음). 왜 그렇게 독하게 살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저한테는 부끄러운 기억이다. 왜 그렇게 나를 못 살게 굴었을까. 약 오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왜 아이 때문에 나만 이렇게... 남편은 경력단절 이런 거 없다. 회사에 있는 다른 남자 PD들도 마찬가지다. 남편한테 약 오르는 게 아니라 상황에 대한 약 오름이 있었다."

- 그런 마음이 둘째를 낳으면서 달라졌나.
"첫째를 낳고 네 달 반 만에 복직을 했다. 복직하자마자 입봉을 했다. 처음 입봉했으니까 얼마나 잘하고 싶었겠나. 정말 열심히 했다. 아침 프로 1년 반 하고 바로 밤 프로를 했다. 밤 8시 프로는 빨라야 12시 퇴근이다. 회의 하면 새벽 1~2시. 아침에는 애가 어린이집에 가니까 저랑 마주칠 수가 없고. 애가 크는 거에 대해서 기억이 안 나는 거다. 그게 너무 슬펐다. 둘째 키울 때는 얘가 크는 거를 좀 더 보고 싶었다. 얼마나 빨리 변하고 빨리 크는지를 아니까. 그래서 동동거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뼛속 깊이 효율적인 인간"이었던 워커홀릭 엄마는 둘째를 낳고 일을 잠시 접기로 한다. 8개월간의 육아휴직 기간 동안 '쓸 데 있는 일'이 아닌 '쓸데없는 일'을 하며, 아이의 속도에 맞춰 아이 옆에서 천천히 걸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글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까'에서 시작했던 글은 아이를 이 사회에서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뻗어나간다.

"아이의 유아기는 어른의 두 번째 사춘기"

▲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저자 장수연 MBC 라디오 PD ⓒ 이희훈


이 책의 띠지가 눈에 띈다. "세상이 요구하는 모성애는 제게 없습니다." 모성은 사회적 산물이라는 말처럼, 모성은 아이가 생겼다고 해서 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던 사람은 없습니다. 저처럼 철없는 여자도 '아이가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엄마가 됩니다.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감격, 키우는 기쁨, 끓어오르는 사랑 등 이른바 '모성애'의 감정들은 모두 천천히 스며들 듯 찾아왔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p.12

"이제까지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 '아이 낳는 일'"은 그를 변하게 했다. 20대 때 열렬히 좋아했던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다시 보면서,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를 읽으면서 심지어 <뉴스타파>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성매매 의혹 보도를 보면서도 그는 아이들을 떠올린다.

- 모든 이야기가 기승전육아로 흘러간다.
"어느 순간부터 저한테 아이의 존재가 너무 크고, 아이에 대한 사랑이 애가 클수록 더 커진다. 그만큼 정이 드니까. 뭘 봤을 때 그게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그래서 기승전육아가 되는 것 같다. <이터널 선샤인>을 다시 보는데 조엘이 클레멘타인과 사랑했던 기억을 지운 뒤에도 다시 만나 사랑하는 장면을 보면서 어머, 정말 나 같다. 다 알면서도 둘째를 낳고(웃음)."

두 아이를 키우는 순간순간, 그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고. 그렇게 엄마는 아이와 함께 자란다.

"내 못나고 한심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과연 하율이에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싶다. 내 삶은 하율이보다 훨씬 엉망이지만 하율이는 여섯 살이고 나는 서른 다섯 살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나는 하율이에게 "너도 네가 네 마음대로 안 되지? 엄마도 그래"라고 말하는 게 옳다. 너는 왜 그러느냐고 답답하다는 듯이 말할 게 아니라." p.144-145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여러 가지 뜻이 있을 테지만 양육의 과정에서 이렇게 스스로를 알아간다는 의미도 있을 듯하다. 사춘기가 지나면 성인이 되는 것처럼 이 시기를 지나며 다시 어른이 된다는 의미는 아닐까.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겪는 이런저런 일들을 이야기할 때 그 까맣고 깨끗한 눈빛으로 '너는 어떤 사람인가' 묻는 경우가 많다." p.163

- "아이의 유아기는 어른의 두 번째 사춘기"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 아이를 키우면서 선택해야 할 게 많을 거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질문을 받게 된다. 영어유치원 보낼 거냐, 학원 몇 개까지 보낼 거냐, 국제중 보낼 거냐. 그 끝에 있는 질문. 성공을 뭐라고 보느냐. 얘를 어떻게 키우고 싶냐, 얘가 어떤 어른이 됐으면 좋겠냐, 결국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느냐와 똑같은 질문이다. 이번에 파업을 하면서도 생각하게 됐다. 과연 성공의 기준이란 무엇인가. 그런 질문을 어느 부모나 예외 없이 받을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대해 고민을 하느냐 마느냐가 차이인 것 같다.

어제 첫째 아이가 병설 유치원에 합격했다(일동 박수). 축제 분위기였다. 유치원을 어떻게 보낼 건지 고민을 하다 보면 왜 이걸 부모가 힘들게 알아보고 안 붙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종종거려야 하는 건지 궁금해진다. 그게 기회다. 우리나라 시스템에 대해서 공부하고 고민하게 되는.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좀 더 깊어지고 사회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는 기회를 반복해서 얻게 된다. 그럴 때 적극적으로 뇌나 마음의 촉수를 예민하게 세우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결혼도 비혼도 선택... 편견 하나 더 얹고싶지 않다"

▲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저자 장수연 MBC 라디오 PD ⓒ 이희훈


"우리 딸들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슬픈 일'을 다소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누구나 예외 없이 직면하게 될 것이다. 교복을 입을 즈음부터는 지하철과 버스에서 성추행과 성희롱의 타깃이 될 것이고 사회에 나와선 유리천장에 부딪히며 성역할의 편견에 맞서야 할 것이다...중략...바로 여기에 아빠들이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내 딸이 살아가기에 이 세상은 왜 이렇게 험난한 건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다." p.223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는 그는 "아빠들이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책 출간 전 브런치에 올린 이 글은 많은 공감을 얻었다.

- 부모가 되고 나서 페미니즘을 더 절실하게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겪었던 것들을 내 딸들이 똑같이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퍼진다. 딸을 갖고 있는 부모라면 바라는 것들, 이 아이가 어떻게 컸으면 좋겠고 뭘 누렸으면 좋겠고. 그게 페미니즘인 것 같다.

국장급 남자 선배가 페이스북에 그런 리뷰를 올렸더라. 그 분이 딸이 있는데 회사를 다니다가 여성으로서 부당한 일이 있었나 보다. 딸이 그런 경험을 하게 될 때, 와이프 일도 아니고 딸 일이 될 때 아빠들은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게 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노키즈존이나 유모차가 다닐 수 있는 길에 대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다가 아이를 낳으면서 약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모성애, 부성애 하는데 생각해 보면 제일 힘이 센 감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를 좀 더 진보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이 힘이지 않을까. 이 힘의 방향만 잘 나아간다면."

- 육아휴직을 쓰는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아빠는 육아에서 배제된 경우가 많다.
"아이 때문에 커리어가 단절되는 것 같은 초조함도 경험해 보고,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그러면서 애랑 나랑 같이 성장을 하는 건데 우리 사회는 그 고민을 엄마만 한다. 아빠들은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다. 안타깝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 노동 강도가 강한 부서가 있었는데 퇴근을 못하니까 신입사원들이 계속 그만두는 거다. 그래서 그 부서를 애 있는 기혼 남성들만 보낸단다. 그걸 보면서 든 생각이, 더 이상 우리 세대는 그렇게 사는 삶을 참지 않는다. 여자, 남자 마찬가지다. 그런데 기업은 그걸 그 세대의 방식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과도기인 것 같다."

- 육아에세이지만 이 책이 "'결혼과 출산이 정상적인 삶'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공고화하는 데 일조하기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저랑 친한 사람들 중에 저만 애가 있다. 친구들이나 동생 2명 둘 다 결혼 안 했고 결혼할 생각도 앞으로 없어 보인다. 그게 잘못된 삶이 아닌데 부모님들은 그렇게 생각을 한다. 부모님들의 그런 공고한 편견 때문에 자식들은 부모를 배려해서 비밀이 늘어간다. 왜 결혼 안 하냐, 왜 애 안 낳냐, 왜 둘째 안 낳냐... 결혼 한 사람도 안 한 사람도 애를 낳은 사람도 안 낳은 사람도 괴롭다.

거기에 '애 낳아서 이렇게 행복해요, 성숙해졌어요'라는 편견을 얹어준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들었다. 애를 낳는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게 아니다.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비혼, 비출산 선택. 이해가 간다. 아이를 낳고서 누리는 행복감, 성장하는 느낌. 감동적인 게 많은데 분투의 과정이 너무 힘든 거다."

- 앞으로 쓰고 싶은 다른 주제가 있나.
"두 딸이 크면서 계속 부딪치는 문제들, 아이 키우는 가정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 우리는 국가에서 제공하는 교육서비스의 사용자, 고객인데 고객의 목소리가 잘 없다. 일단 당사자들은 바쁘고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니까.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른다. 하지만 이게 왜 문제인지 쓰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유치원 이야기를 써야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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