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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낙방' 외국인 선수, 해외 리그 '펄펄 나는' 이유

외국인 선발 실패 '감독 책임'... 안목 넓히고, 시스템 개선 필요

등록|2017.12.08 18:10 수정|2017.12.08 18:10

▲ '잘나가는 낙방생'... 지난 5월 V리그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이리나(192cm)와 헤일리(202cm) ⓒ 한국배구연맹


한 번 잘못 선택하면, 1년 농사를 망치게 된다.

프로배구 외국인 선수 이야기다. 모든 종목의 프로 리그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말이지만, V리그가 특히 그렇다. 팀 플레이와 성적이 외국인 선수 한 명의 기량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감독의 부담도 매우 크다. 외국인 선수 선발부터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도록 만들기까지 책임이 전적으로 감독에게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15~2016시즌부터 외국인 선수 선발을 자유계약제에서 트라이아웃(공개 선발 드래프트)으로 변경하면서 감독의 책임이 더욱 커졌다.

자유계약제 하에서는 소속 구단이 세계 정상급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수 있도록 얼마나 돈을 많이 푸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트라이아웃 하에서는 모든 구단이 동일한 조건에서 감독의 안목과 판단 하나로 결정한다.

지난 시즌 성적에 따라 지명 순서가 후 순위인 구단이 불리할 수 있지만, 이 또한 변수가 아니란 것도 증명됐다. 그동안 외국인 선수의 활약상을 보면, 오히려 후 순위로 뽑힌 선수가 훨씬 좋은 활약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외국인 선수 실패는 감독의 안목 부족과 준비 소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성공 또한 실력이든 운이 좋았든 감독의 몫이다.

심슨-브람 교체... 잘못된 선택과 교체 사유

문제는 많은 감독들이 외국인 선수 선발 단계부터 오판과 실책을 한다는 점이다.

매년 외국인 선수를 교체하는 구단이 나온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또한, V리그 트라이아웃 현장에서 감독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후 순위 선수나 아예 선택을 받지 못한 낙방생들이 상위 순번으로 선발된 선수들보다 더 잘하는 경우도 많다.

올 시즌도 어김없이 시즌 도중에 외국인 선수를 교체하고, 대체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느라 골머리를 싸맨 구단이 발생했다.

흥국생명과 OK저축은행은 지난 1일 새로운 외국인 선수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두 구단의 외국인 선수 교체는 선발 과정와 사유에서 큰 아쉬움을 남겼다.

흥국생명은 자승자박 측면이 있다. 테일러 심슨(25세·190cm·레프트)은 지난 2015~2016시즌에도 비슷한 사유(부상)와 방식으로 시즌 도중 팀을 떠난 적이 있다. 그 여파로 챔피언결정전 진출도 실패했다. 심슨은 부상 때문만이 아니라 팀에 대한 열정도 문제가 있어 구단의 애를 태웠다. 그런 전례가 있는 선수를 다시 선택했다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OK저축은행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외국인 선수를 교체했다. 브람(29세·206cm·라이트)이 나름 잘하고 있고 시간이 갈수록 나아질 여지가 있음에도, 국내 선수들의 부진에 대해 경각심을 주기 위해 교체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팀 성적 부진과 국내 선수의 잘못을 외국인 선수 한 명이 희생양으로 떠안은 모습이다.

OK저축은행도 1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 부분을 스스로 시인했다. 구단은 "사실 브람 선수가 못해서 교체를 한 것은 아니다"며 "다만 현재 팀 성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교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 선수들의 책임감 있는 모습도 동시에 기대해 본다"고 덧붙였다.

외국인 선수 성공, '지명 순'이 아니다

트라이아웃 후 순위 선수나 낙방생들이 훨씬 잘나가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남자부의 파다르(우리카드)와 타이스(삼성화재), 여자부의 메디(IBK기업은행)와 알레나(KGC인삼공사)다. 이들은 지난 시즌에 이어 올 시즌도 남녀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트라이아웃 지명 순번은 모두 하위권이거나 낙방생이었다. 파다르(22세·197cm)는 지난해 5월 열린 남자부 트라이아웃에서 우리카드에 5순위로 지명됐다. 타이스(27세·205cm)도 지난해 트라이아웃에서 4순위로 지명됐다.

여자부의 메디(25세·184cm)도 트라이아웃에서 맨 마지막(6순위)에 뽑힌 선수다. IBK기업은행이 지명을 하지 않았다면, V리그에서 볼 수 없는 선수였다.

그러나 메디는 지난 시즌 강력한 공격 파워와 체력, 준수한 수비력까지 겸비한 완성형 레프트로 맹활약하며 IBK기업은행을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MVP까지 수상했다.

V리그가 끝나자 메디는 실력을 인정받아 올해 주요 국제대회에서 미국 성인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겹경사를 맞이했다. 메디는 월드그랑프리 1그룹에서 미국 팀의 주전 레프트로 맹활약했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대결에서도 자신의 진가를 증명해 보인 것이다.

올 시즌도 메디는 최고의 외국인 선수임을 입증하고 있다. 지난 5일 현대건설과 경기에서는 혼자 57득점을 퍼부으며 팀 승리를 주도했다. 57득점은 V리그 사상 한 경기 최다 득점 타이 기록이다. 공격뿐만 아니라 서브 리시브까지 담당하는 레프트 선수가 엄청난 괴력을 발휘한 것이다.

여자부 알레나(28세·190cm)는 더욱 드라마틱하다. 알레나는 지난해 4월 여자부 트라이아웃에서 국내 프로 구단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2015~2016시즌에 이어 2번째 낙방이었다.

그러나 알레나는 현재 메디와 함께 V리그 최고 외국인 선수로 인정받고 있다. 만년 최하위 팀인 인삼공사가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PO)에 진출한 것도 알레나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올 시즌도 득점 부문에서 메디와 1~2위를 다투며 맹활약하고 있다. 팀을 위해 헌신하는 인성까지 만점이라는 호평이 많다.

V리그 낙방생들, 해외 리그서 맹활약

V리그 트라이아웃에서 낙방한 외국인 선수 중에 세계 정상급 리그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남자부 트라이아웃에서 지난해에 이어 2번이나 낙방한 닐스 클랍비크(33세·200cm)는 현재 터키 리그 라이트 공격수 부문 7위를 달리고 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 출신인 그는 지난 시즌에도 터키 리그 라이트 부문 2위를 기록한 바 있다.

여자부의 이리나 스미르노바(28세·192cm)는 현재 러시아 1부 리그 디나모 크라스노다르 팀에서 주전 라이트로 활약하고 있다. 러시아 리그 득점 부문 전체 8위에 올라 있다.

이리나는 지난 5월 트라이아웃에서 감독들이 매기는 사전 평가에서 3순위에 이름을 올렸지만, 최종 드래프트 현장에서 어느 감독도 지명하지 않았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적극성 부족 등 인성에서 낮은 점수를 주었기 때문이다.

어느 구단도 주목하지 않았던 엘레나 리토브쉔코(32세·187cm)도 현재 러시아 1부 리그 사할린 팀에서 주 공격수(라이트)로 활약 중이다. 러시아 리그 득점 부문에서 이리나 다음인 9위를 달리고 있다.

제렌 케스티렌고즈(25세·193cm)도 세계 최고 리그인 터키 1부 리그 베이리크뒤쥐 팀에서 주전 라이트로 맹활약 중이다. 현재 터키 리그 라이트 공격수 부문 7위에 올라 있다. 지난 시즌에도 터키 1부 리그 라이트 공격수 부문 4위를 기록한 바 있다.

▲ 지난 2016년 2월 16일, KGC인삼공사 소속이었던 당시 헤일리의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국내 배구팬들에게 인기가 많은 헤일리(27세·202cm)도 프랑스 1부 리그 뮐루즈 팀에서 주전 라이트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뮐루즈는 지난 시즌 프랑스 리그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통합 우승 팀이다. 올 시즌 현재 3위를 달리고 있다. 헤일리는 2015~2016시즌 V리그에서 KGC인삼공사 외국인 선수로 뛰면서 득점 부문 전체 1위를 기록했다.

해외 리그, 꾸준한 정보 축적과 공부 필요

외국인 선수를 선택해야 하는 감독도 어려움이 적지 않다. 트라이아웃이 실시되는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선수를 일일히 챙겨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감독뿐만 아니라 코칭 스태프도 평소 해외 리그를 관심있게 챙겨보거나 정보를 꿰고 있는 사람이 드문 것도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감독들이 매기는 트라이아웃 참가 선수에 대한 사전 선호도 순위를 살펴 보면, 이해가 안 가는 대목도 적지 않다.

해외 리그의 활약상으로 볼 때 그 정도의 선수가 아닌데도 상위 순번에 올라 있거나, 왜 저런 선수가 한참 하위 순번으로 밀려났는지 의아스러운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트라이아웃 시기는 대체로 5~6월이다. 이 기간은 대부분의 선수가 해외 리그에서 시즌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는 기간이다. 제아무리 직전 시즌에 펄펄 날던 선수도 정상적인 기량을 보여줄 수는 몸 상태가 아니다.

팀에 대한 헌신성이나 인성 부분도 마찬가지다. 드래프트를 앞두고 단 3일 만에 그 선수의 인성을 파악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결국 현 제도 하에서 좋은 외국인 선수를 고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해당 선수의 최근 시즌 전체 기록과 경기 영상, 국가대표에서 활약상 등을 종합적이고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에이전트가 제출한 정보나 동영상에 의존해서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외국인 선수에 의존하는 플레이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선수의 전반적인 기량 향상에 더욱 힘을 쏟고, '몰빵 배구'가 힘을 쓰기 어려운 풍토를 만들어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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