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소리를 잃었고, 가족은 소통을 잃었다
소리가 사라진 아빠의 세상... 느린 걸음처럼 더디게 가는 시간
▲ 소리를 잃은 아빠와의 일상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 pexels
기온이 갑자기 떨어진 이른 아침. 친정에 가는 길이었다. 집 근처에 거의 도착하니 저쪽에서 지팡이에 의지한 채 느릿느릿 걸어오는 아빠가 보인다. 내가 운전하는 차는 점점 아빠 쪽을 향해가고, 아빠는 점점 내 쪽으로 절룩이며 걸어오신다. 차와 아빠 사이에 거리가 좁아지고, 나는 아빠를 부르지만, 아무리 불러도 아빠는 내 쪽을 보지 않는다. 몇 번 부르는 사이, 나와 아빠는 어긋나 버리고, 돌아보지 않을 걸 알면서도 아빠를 부르고 또 부른다. 소리를 잃은 아빠와의 일상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6년 전 그날, 첫 아이를 낳은 지 채 한 달이 안 된 때였고, 나는 갓난아기를 돌보며 몸조리를 하고 있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엄마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 한 통이 유난히 마음에 걸렸던 것 말고는.
휴대전화에 찍힌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다시 걸어보니 연결이 되지 않는다. 엄마가 전화를 안 받는 것이 특이한 일도 아닌데, 그날은 어쩐지 느낌이 달랐다. 소식은 엄마가 아닌 남편에게 들었다. 물리치료를 받던 아빠가 응급실에 실려 가셨고, 조금 전 수술실에 들어가셨다고.
두 번째 뇌출혈. 뇌출혈은 재발이 흔한 병이다.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있던 불안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왔다. 엄마는 일단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2시간 마다 깨 엄마젖을 찾을 아이를 맡기고 한밤중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천천히 좋아지는 아빠, 하지만 뭔가 달랐다
▲ 아빠를 '무사히' 만날 수는 있었다. 하지만. ⓒ pexels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무사히'라고 함은 아빠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빠의 뇌출혈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회복 과정을 머리로 그려볼 수 있었다.
의식도 미동도 없이 누워 계시던 아빠는 몸의 운동을 처음 익히는 어린 아이처럼 새롭게 몸을 움직이며, 앉고, 서고, 걷게 될 것이다. 더듬더듬 말을 시작하실 것이고, 식사를 하고, 대소변을 가릴 것이다.
예상대로 아빠는 천천히 좋아지셨다. 그런데 뭔가 달랐다. 아빠의 반응이 예전 같지 않았다. 아무리 큰소리로 부르고, 말을 걸어도 아빠는 먼 산만 바라보셨다. 예상 궤도에서 벗어난 아빠의 모습에 불안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상을 눈치 채고 병원 측에 알리자 그제야 뇌출혈로 인한 청신경 손상인 것 같다는 답이 왔다. 청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니 일단 지켜보자는 말, 좋아질지도 모른다는 확신 없는 말들이 병실 안을 떠 다녔다. 알아듣기 어려운 설명은 흩어지고 아빠가 소리를 잃었다는 분명한 사실만 남았다.
듣지 못하게 된 아빠는 소리만 잃은 것이 아니다. 아빠는 한 걸음 내딛는 것도 불안해 지팡이를 의지해야 했고, 아빠의 병수발을 혼자 감당하는 엄마에게 신경질을 내기 일쑤였다. 아이들이 조금만 과한 몸짓으로 놀아도 아빠는 손사래를 치며 아이들을 말렸다.
소리가 사라진 세상에서 아빠는 예민했고, 겁을 냈다. 삶의 다채로움은 단번에 무채색으로 바뀌었다. 다양한 소리가 어우러진 어린 손주들의 몸짓이, 여느 할아버지·할머니들에게는 보는 것만으로 즐거움이 되는 일상의 작은 행동이, 아빠에겐 음소거된 상태로 전달된다. 아이들이 '하부지' 하며 부르는 소리, 주크박스처럼 쉼 없이 노래 부르는 소리, 어설퍼서 재미있는 아이들의 처음 말, 그 어떤 것도 아빠에게 가 닿질 않는다. 모처럼 가족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멀찍이 떨어져 앉아 바라보는 아빠에게 눈길이 간다. 우리끼리 웃고 떠드는 게 미안해 어느새 나도 자동으로 음소거 기능을 켠다. 아빠는 소리를 잃었고, 우리 가족은 소통을 잃었다.
미소로 인사를 대신하는 아이들
▲ '군중 속의 고독', 그 이상의 의미. ⓒ pexels
들리는 소리가 사라지자 낼 수 있는 소리도 점차 줄었다. 아이들의 재롱을 보아도 아빠는 껄껄하고 큰소리로 웃는 대신 옅은 미소만 지을 뿐이다. 아빠의 긴 이야기를 들은 지도 오래다. 말은 점점 어눌해지고, 긴 말은 거의 하지 않으신다.
나는 엄마보다 아빠랑 더 잘 통하는 딸이었는데, 시답잖은 농담에도 같이 맞장구쳐주던 건 엄마가 아니라 아빠였는데, 이젠 기억마저 흐릿한 옛일이다. 산이며 바다며 햇살이며 바람이며 온갖 아름다운 것을 보면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것도 아빠와 닮은 모습인데 더는 그런 감탄을 나눌 수가 없다.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를 걸어 일과를 나누고, 함께 뉴스를 보며 나랏일 하는 사람을 욕하던 것, 대수롭지 않은 대화가 촘촘히 박힌 일상은 없다. 평범했던 일상이 조금씩 지워질 때마다 세상에 아빠와 나누고 싶은 소리가 이렇게 많았었나 하고 생각한다.
큰아이가 올해 일곱 살이니 아빠가 못 듣게 된지도 6년이 넘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만나면 '할아버지!' 하고 부르는 대신, 다가가 할아버지를 톡톡 치며 미소로 인사를 대신한다. 식사가 준비돼 할아버지를 부를 때도 멀리서 "할아버지, 식사하세요" 하는 대신 옆으로 다가가 먹는 시늉을 한다.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듣지 못하는 분이니 어색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다. 아이들과 달리 여전히 이 상황이 어색한 나는 아빠를 만나면 말인사 대신 그저 한 번 안아드리고, 딱 필요한 말만 경제적으로 써서 이야기 하거나, 입을 크게 벌려 짧고 굵게 말한다. 청신경이 손상된 아빠에겐 보청기도 소용없다 했고, 괜찮아질지도 모른다는 말에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지도 못했다. 늙고 아픈 아빠에게는 스마트폰 문자 기능도 복잡할 뿐이니 그저 이 정도가 최선이다.
아빠의 사고 이후부터였나. 나는 두 개의 세계를 산다. 자상한 남편과 순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는 단란한 이편의 세계와 생각하면 가슴 저릿한 아빠와 그런 아빠를 보살피는 작고 연약한 엄마가 있는 저편의 세계. 하나는 내가 이룬 울타리고, 또 하나는 내가 자라온 터전이다.
한쪽에는 내 생의 열매들이 있고, 또 한쪽에는 나의 뿌리가 있다. 친정에서 돌아오는 길엔 유난히 말수가 적어진다. 저편 세계에서 이편 세계로 넘어오느라 머뭇거리는 탓이다. 두 세계의 이질감은 쉽게 섞이지 않은 채 나를 어지럽힌다. 이쪽에 있다 저쪽에 가면 여전히 끌어안기 힘든 현실이 눈앞에 흩어져있고, 저쪽에 있다 이쪽에 오면 지금 누리는 모든 행복이 거품 같다.
상실이 일상이 되기까지, 절룩거리는 아빠의 느린 걸음처럼 시간은 참 더디게 간다.
▲ 친정에서 돌아오는 길엔 유난히 말수가 적어진다. 저편 세계에서 이편 세계로 넘어오느라 머뭇거리는 탓이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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