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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칼은 홍준표 아닌 홍순표에게 보낸 것"

[여운환, 홍준표를 쏘다 ③] 소위 '식칼 협박 사건'의 전말

등록|2017.12.16 17:12 수정|2017.12.16 17:12
지난 1991년 홍준표 당시 광주지검 강력부 검사에 의해 조직폭력단 '국제PJ파 두목'으로 기소됐던 여운환씨가 입을 열었다. 그는 <오마이뉴스>와 이틀간 총 7시간에 걸쳐 자신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사이에 있었던 '사나웠던 운명'을 숨가쁘게 털어놨다. <오마이뉴스>는 18회에 걸쳐 그 '사나웠던 운명의 증언'을 풀 스토리로 연재한다. 이 기사는 여는글에 이어 본격 인터뷰 연재 세번째다. <오마이뉴스>는 여 대표의 인터뷰 내용과 관련해 홍 대표의 해명과 반론을 듣고자 수차례 접촉을 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다만 홍 대표의 한 측근인사는 "그것은 검찰(검사)이 불의한 깡패세력을 소탕한 사건"이라고 반박했다. <오마이뉴스>는 이후라도 언제든지 홍 대표의 반론을 환영한다는 뜻을 밝힌다. [편집자말]

▲ 여운환 아름다운컨벤션 대표가 지난 10월 25일 광주의 한 호텔에서 <오마이뉴스>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소중한


- 왜 주방용품을 샀나?
"지금은 흔하게 (수입 주방용품을) 사는데 그때는 수입품이 특별해. 쌍둥이 레이저 칼이라고 해서 세트로 나온 게 있었어. 7만 원 정도 한 것하고 헹켈 칼 한 세트에 11만 원씩 주고 샀어. 그 두 가지를 은사님부터 시작해서 많은 지인들에게 선물로 보내줬어.

그때 총 2000만 원어치 사서 지인들에게 보냈어. 그렇게 정을 나눌 때니까. 그때는 자동차 기사가 아파트에서 세차도 하고 그랬어. 기사가 경비실 경비원들도 다 알고. 경비원들을 잘 아니까 사장이 나올 때까지 경비실에서 기다리기도 하고 담배도 피우고 그럴 때야. 그 선물을 홍준표가 살고 있는 통로에만 네 군덴가 다섯 군덴가 줬어."

- 현대아파트 5층에?
"5호, 6호 라인이야. 홍준표는 506호, 내 친형도 1506호. 그때 나는 1503호에 살았어. 거기가 제일 크고 좋은 아파트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선호했어. 아파트 단지에만 20군데 정도 선물했을 거야.

나중에 조선대 병원장도 두 번이나 했고 요즘에는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분이 있는데 그 분 이름이 '홍순표'야. 그 양반이 홍준표 라인에서 사는 분이여. 1305호인가 1105호인가 그랬어. 우리 기사가 거기 갔는데 마침 홍순표씨가 세미나 참석차 외국에 나가 있었어. 근데 우리 기사가 외국 세미나에 간지 어떻게 아나? 그래서 선물세트를 경비실에 준 거야. 그때만 해도 집앞에 두고 갈 수는 없을 때니까.

근데 경비가 홍준표가 들어오니까 홍준표한테 그것을 줘버린 거여. 선물세트에 '백제관광호텔 여운환'이라고 돼 있으니까 홍준표가 내심 기분을 조금 가라앉혔겠제. '드디어 여운환이 나한테 꼬리를 내리는구나.' 그것을 자기 마누라한테 주니까 마누리가 '이거 굉장히 좋은 선물이네' 그랬다는 거여. 월급 받는 사람이 그런 것을 사기 어려울 때니까. 그때는 11만 원이지만 지금으로 치면 상당한 값이 나가는 선물이잖아. 그래서 자기 마누라가 좋아하더라고 나중에 홍준표가 말해주더라고.

내가 홍준표란 사람이 광주에 오면서부터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고, 불행이 소리없이 왔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어. 그때는 경비가 하루 근무하고 하루 쉬고 그랬어. 그러니까 그 경비도 그 다음 날 쉬고 그 다음 날 출근했어. 우리 기사가 '선물 잘 전달됐죠?' 물으니까 됐다고 하면서 '홍준표 검사 맞제잉?' 그런 거여. 홍순표인디 선물이 잘못 가분 거야. 우리 기사가 '검사가 아니고 의산디?' 이렇게 얘기했지. 그러니까 경비가 (홍준표 집에) 가서 선물을 찾아와부렀어. 포장 찢어진 것을 붙여서.

고약한 홍준표한테는 무지무지 하게 기분이 나쁜 거여. 저자세구나 생각했는데 아닌 거여. 정말 선물이 잘못 전달돼 홍준표에게 갔다고 하자. 내가 그것을 찾아올 사람은 아니여. 그냥이라도 선물할 수 있고, 나한테 큰 돈도 아닌데. 근데 선물을 찾아온 거여. 나는 몰랐는데 그런 일이 있었어.

홍준표를 세 번이나 기분 나쁘게 해부렀잖아. 그 중에서도 이것이 결정적으로 기분 나쁘게 한 거여. 홍준표가 굉장히 기분 나빠 있었어. 홍준표가 보기에, 이 놈이 광주에서 무지하게 잘 나가는 것 같고, 옛날 건달 생활도 했고, 건달들이랑도 연결돼 있어서 털면 바로 먼지가 나올 것 같은데 안나오니 속으로 부글부글했겠지. 자기 부장은 '여운환 사장 만나봤냐?'고 물어보고.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났어. 근데 홍준표랑 골프장에서 골프쳤던 백○○이 몇 차례 전화했어. '어이 친구, 홍 검사 한번 만나불소. 홍 검사가 친구한테 호감을 가진 것 같네. 만나자고 하니까 오늘 한번 만나불소.' 홍준표가 명색이 검사고, 그 친구한테 내가 너무 뻐긴 놈이 될 것 같아서 만나자고 했어. 그래서 만나자고 했더니 사무실(검사실)에서 만나자고 해. '아주 독특한 사람일세' 생각했지."

악연

▲ "지금은 흔하게 (수입 주방용품을) 사는데 그때는 수입품이 특별해. 쌍둥이 레이저 칼이라고 해서 세트로 나온 게 있었어."(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 픽사베이


"그래서 내가 홍준표 사무실로 저녁에 간 거야. 그때가 1991년 9월 말경이야. 내가 가니까 홍준표가 반갑게 하더라고. 그래서 홍준표하고 나하고 지 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어. 근데 말투가 막 자기를 과시하는 투여. 자기 뽐을 내고. 그러면서 서울남부지검에 있었을 때 이야기를 하더라고. '노태우 대통령 선거자금을 정덕진이가 댔는데 이것을 자기가 파헤쳐서 구속할라고 자료를 이렇게 모아놨다'고 하면서 캐비닛을 열어 자료를 보여줘. 그 자료가 다 정덕진이 자료라고 하면서. 그래서 서울 가면 정덕진을 수사해서 잡어넣을 거라고 폼을 잡더라고.

나는 속으로 '니가 정덕진이 잡아넣을려다가 니가 먼저 옷 벗겄다'고 속으로 비아냥댔지. 내가 당시 정덕진을 모르지만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제. 호텔 하고 슬롯머신 한다고. 홍준표가 계속 지 무용담을 해서 듣기도 싫더라고. 그런데 홍준표가 나한테 '자기가 골프를 시작했는데 골프나 한번씩 치자'고 그래. 그때만 해도 검사가 골프장을 맘대로 다닐 때가 아니여. 심지어 검사나 공무원들은 자기 상관보다 좋은 차를 못탔어. 좁은 광주 지역사회에서는 자동차 남바(번호판)만 봐도 누군지 알 때였으니.

근데 홍준표가 '광주는 좀 그렇고 이리로 가서 치자'고 글더만. 그래서 내가 '검사님, 제가 내일 모레 프랑스를 가니까 갔다와서 운동 한번 하시죠' 그랬어. 글고 속으로 '골프를 시작했다고 하니까 프랑스 갔다 올 때 골프채나 좋은 것으로 하나 사다줘야겠다'고 생각했어. 맨날 씨잘데 없는 이야기만 하고 그래서 내가 '검사님, ○○이한테 급히 연락받아서 여기 왔는데 저도 서울에서 손님이 와서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먼저 가야겠습니다, 프랑스에 갔다와서 뵙지요' 그랬어.

그랬더니 홍준표가 '여 사장, 나하고 좀 놀다가 아파트도 같으니까 같이 들어갑시다, 나는 12시에 들어가도 마누라가 언제든 밥 차려줍니다' 그래. 내가 '저는 오늘 급히 와서 그렇습니다, 이해해주십시오' 그러고 나왔어.

글고 이틀 있다가 내가 프랑스를 갔어. 그때만 해도 휴대폰이 있나 뭐가 있나? 호텔에 들어오면 교환대 콜렉트 콜로 집에 전화할 때여. 그날도 이틀 만에 전화했어. 근데 아내가 '보람이 아빠가 전화해주라고 했다'고 그래. 보람이 아빠가 남충현 부장이여. 그래서 내가 남 부장에게 전화했제. 남 부장이 뭐라고 하냐 하면, '야 운환아, 홍준표가 사고를 쳤다. 곤란하게 됐으니 수습될 때까지 당분간 들어오지 말고 일이 끝나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려라, 곧 수습될 거다'고 해.

근디 내가 프랑스에 며칠 있다가 바로 들어와 부렀어. 바로 들어와서 홍준표한테 전화했어. 그랬더니 홍준표가 깜짝 놀라더라고. 그러면서 나한테 어디냐고 그래. 그래서 내가 '서울입니다' 그랬어. '검사님 어떻게 된 겁니까, 세상에 이럴 수 있냐?'고 푸념했지. 그러니까 홍준표가 '여 사장, 지금 내려오면 안됩니다' 그러더라고. 내가 어처구니가 없었지. 그렇게 전화가 끊어졌어. 그 다음날 사전구속영장을 받았어 지금은 영장실질심사가 있는디 그때는 없을 때여. 그러니까 내가 검거되면 바로 교도소로 가는 거여.

홍준표는 내가 들어온 뒤에야 출국금지를 시켰어. 그러니까 얼마나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이여? 그런 혐의로 나를 조사할 거면 나를 못나가게 해야지. 한국에 들어왔다고 하니까 그때서야 출금시킨 거야. 그때 자기가 나한테 몇 가지를 제의했다고 자기 책에다 썼는데 뭘 제의해? 소설도 아니고.

바로 다음날 <조선일보> <한국일보> 1면 특종으로 기사가 나가부렀어. 그때부터 말도 안되는 도망자 신세가 된 거여. 틈틈이 홍준표에게 전화해서 '검사님, 어떻게 된 겁니까? 사업하는 사람을 이렇게 하면 어쩝니까?' 그랬더니 홍준표가 '좀 기다리라'고 하더라고. 근데 전화 위치를 추적했어. 그래서 검거됐지."

국제PJ파 두목의 갑작스런 탄원서 "난 두목이 아닙니다"

- 어디서 검거됐나?
"서울 방배동. 홍준표, 정말 무서운 사람이여. 나하고 악수하고 프랑스 잘 갔다 오라고 했는디... 국제PJ파 두목이 김길용이여. 지금까지도 김길용이여. 김길용이 그때도 두목이고 지금도 두목이여. 이것은 경찰이 관리해온 대장에 나와. 거기에는 두목이 단 한 번도 바꿔지지 않았어. 김길용이 1991년 범죄와의 전쟁을 하면서 경찰에 의해 국제PJ파 두목으로 구속돼 검찰로 송치됐어. 그래서 검찰에서도 김길용을 국제PJ파 두목으로 다 인정해서 조사했어. 홍준표가 있었던 광주지검 강력부에서 다 수사해서 기소했어. 경찰에서도 그렇게 올렸고, 검찰에서도 김길용을 두목으로 기소해서 법원(1심)이 김길용에게 두목으로 인정하고 징역 5년을 줬어.

그런데 김길용이 고등법원 선고만기일 10일을 남겨놓고 재판장에게 탄원서를 썼어. '재판장님, 저는 두목이 아니고 부두목입니다.' 다 코치받아서 썼겄제. '두목이 되려면 저는 여건이 부족합니다. 제 위로 두목이 네 사람이 있습니다. 그 네 사람이 전○○, 여운환, 현○○, 유○○입니다. 저는 부두목입니다.' 그러니까 홍준표가 바로 애를 불렀지. 홍준표가 탄원서대로 진술하라고 했어. 안 글면 탄원서가 거짓이라고 재판부에 말한다고. 김길용은 가만히 앉아서 형을 2년 깎아부렀어. 광주고등법원에서 부두목으로 인정받은 거지."

- 국제PJ파의 진짜 두목인 김길용이 1심에선 두목, 2심에선 부두목으로 인정받았다?
"탄원서 하나로 그리 됐어. 거기에 홍준표의 장난이 있었다고 생각해. 내가 홍준표한테 조사받으면서 그랬어. '검사님, 무슨 폭력배 두목, 부두목을 검사가 임명하나요? 20년 가까이 조사 한 번 받은 적도 없고, 깡패 행세도 안한 사람인데. 내가 깡패로 행세했으면 구속은 안 됐어도 입건은 됐을 것 아닙니까? 그런 상황인디 나를 두목이라고 당신이 정하면 끝나는 거요?' 심지어 내가 판사 앞에서 홍준표는 정신감정을 받아야 한다고까지 얘기했어.

내가 프랑스 있을 때 그렇게 만든 거여. 암튼 내가 구속돼 재판 받았잖아. 그때 홍준표가 이것저것 증거를 대. 그때 국제PJ파 행동대장인 박○○가 등장해. 이 친구가 교도소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이 친구를 잡아다가 '협조하면 너를 봐주고, 안 하면 거시기한다'고 무지하게 공갈을 쳐서 진술을 받았어. 그 진술조서를 갖고 홍준표가 공판기일 전 증거보전신청을 법원에 했어. 공갈쳐서 받은 진술을 증거라고 신청한 거야.

그런데 재판이 다 끝난 뒤에 이런 증거는 절대 써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위헌판결이 났어. 누가 위헌신청을 했냐? 홍준표에게 구속됐던 정치인 박철언이야. 홍준표가 박철언을 구속하는 데 결정적으로 활용한 게 내연관계에 있었다는 홍성애야. 그 홍성애라는 여자를 이런 식으로 만들었어. 그러고 나서 홍성애를 미국으로 쫓아버려. 그러니 홍성애가 어떻게 미국으로 도망가지 않을 수가 있었겠어? 이런 절차와 관련해 박철언이 위헌신청을 했어. 이것은 검사만을 위한 증거보전 절차여서 공평하지 않다고. 그러자 헌재가 이것을 위헌으로 판결했어."
덧붙이는 글 인터뷰 4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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