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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지고 빛바랜 종이에 연필과 색연필로만 작품을?

[전시 리뷰] 알부스 갤러리 <한 겨울의 그림 정원 요안나 콘세이요 일러스트레이션전>

등록|2017.12.26 10:25 수정|2017.12.26 10:25
'어느 날 빨간 모자라고 불리는 소녀가 엄마의 심부름으로 할머니 댁에 심부름 가다가 늑대를 만난다. 겨우내 굶어 배가 무척 고픈 늑대였다. 늑대는 꾀를 내 빨간 모자가 가지고 있던 음식은 물론 할머니와 소녀까지 잡아먹어 버린다. 그러나 마침 나타난 사냥꾼에 의해 구출된 할머니와 빨간 모자는 사냥꾼과 함께 늑대를 물리치는데….'

책, 영화, 애니메이션 등 여러 매체들을 통해 다양하게 각색된, 그래서 워낙 유명한 동화 <빨간 모자> 줄거리다. 다양하게 각색된 만큼 판권도 여럿. 그중 가장 대표적인 판권은 늑대에게 된통 혼이 난 빨간 모자가 할머니와 함께 늑대를 해치운다는 '그림 형제(독일)'와, 모두 잡아먹히는 것으로 끝나는 '샤롤 페로(프랑스)' 판권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읽힌 동화인데,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는다. 여러 동화들을 모아 묶은 책에도 짧게 실리는가 하면 단행본으로도 출간되는 등, 국내에도 다양한 줄거리 전개와 그림으로 출간되었다. 갓 말을 알아듣기 시작한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초등학생들에게까지 사랑받는 대표적인 동화라고 할 수 있겠다.

<한 겨울의 그림 정원 요안나 콘세이요 일러스트레이션전>
(알부스 갤러리. 2017.11.22~2018.2.25)

▲ <한 겨울의 그림 정원 요안나 콘세이요 일러스트레이션전> 포스터. ⓒ 알부스 갤러리


▲ 국내 출간된 요안나 콘세이요 동화책 4권, <빨간 모자>, <백조 왕자>는 몇년 전에, 이번에 <아무개씨의 수상한 저녁>,<천사의 구두>가 출간됐다. 앞으로도 몇권 출간 예정이라고. ⓒ 김현자


"요안나 콘세이요는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진 일러스트입니다.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는 폴란드 작가로 여러 나라에서 요안나 콘세이요가 그린 동화들이 출간되고 있거든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이 <빨간 모자>(비룡소 펴냄)와 <백조 왕자>(논장 펴냄)로 특히 유명한 작가입니다. 매우 독특한 그림이라는 평입니다. 특히 이 <빨간 모자>는 그림 형제의 작품을 김미혜 작가가 우리 정서에 맞게 재해석했음이 돋보인다는 작품인데요. 요안나 콘세이요가 빨간색과 초록색만을 색연필로 표현, 나머지는 연필로만 표현해 내 더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갤러리 측 짧은 설명)

지난 21일, '요안나 콘세이요'의 동화 속 그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알부스 갤러리를 찾았다. 그 며칠 전 TV를 보다가 우연히 접한 전시회(12월 서울시 추천 전시)였고, "동화책 그림들을 주로 그린다"는 설명에 이끌려 찾은 전시였다.

아이 둘 다 20대라 객관적으로 동화책과는 거리가 좀 있을 수 있겠다. 동화책 읽는데 나이는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가끔 순전히 내 몫으로 구입해 때때로 펼쳐보곤 하는 동화책들이 있다. 대개 그림이 좋거나 특별한 경우다. 그래서 기대하고 간 전시였다.

현재 국내에서 출판된 요안나 콘세이요가 그림을 그린 동화는 앞에서 언급한 <빨간 모자>와 <백조 왕자>, 그리고 올 12월에 출간된 <아무개씨의 수상한 저녁>(단추 펴냄)과 <천사의 구두>(단추 펴냄)이다.

▲ 마법으로 백조가 된 오빠 11명에게 씌인 마법을 풀고자 힘든 여정을 꿋꿋하게 견디는 앨리자 공주 이야기인 <백조 왕자> 원화들. ⓒ 김현자


▲ 2층 한 전시 공간. ⓒ 김현자


▲ 작가의 그림이 들어간 도자기(프랑스)와 작품 세계 동영상을 볼 수 있는 3층 전시관 일부. ⓒ 김현자


▲ 작가의 스케치가 들어간 액자들과 외국에서 출판된 작품 등을 전시하는 동시에 책을 읽을 수 있게한 지하 전시 공간. ⓒ 김현자


이들 책들의 원화, 책과 상관없이 그렸다는 그림 몇 점과 스케치, 그리고 도자기와 우리나라에는 아직 출간되지 않은 <한 번에 한걸음씩>이란 작품 등이 전시된다. 전시 공간은 모두 4층이다. 1층과 2층에선 이들 책들의 원화 등을, 3층에선 요안나 콘세이요가 그림을 그린 도자기 등이 전시된다.

볼로냐 일터스트 부문 수상 작가이기도 한 요안나 콘세이요가 그림을 그렸다는 책은 18권. 지하에서는 요안나 콘세이요의 노트, 스케치북을 이용해 그린 그림들, 작가가 그림을 그린 세계 여러 나라의 동화책들을 비롯한 여러 출판물들을 만날 수 있다. 아울러 국내에서 출간된 동화책들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놨다. 

사실 요안나 콘세이요에 대해 전혀 아는 것 없이 갔다. 누군가 쓴 전시 리뷰를 읽긴 했다. 동화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유명한 작가라는 것도, 국내에도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도 읽었다. 그런데 솔직히 이번 전시를 몰랐다면 전혀 몰랐을 작가였다. 그래서인지 갤러리에 들어서자마자 갤러리 측의 설명을 들었음에도 그림들은 쉽게 와 닿지 않았다.

"글쎄? 난 와 닿지 않는다. 우리 정서와 좀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이해가 쉽지 않다."
"아이들 동화책 그림으로는 좀 어려운 것 같지 않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며 더러 만나곤 하는 고향 친구들과 갔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동화책 그림을 전시한다는 내 말만 믿고 간 친구들이었다. 그러니 친구들 역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지 이처럼 말하며 낯설어했다.

"연필로 이렇게까지 표현해 내다니. 대단하지 않니? 연필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 좋다."
"나는 이 그림이 제일 와 닿는다. 옛날에 읽었던 동화책들 생각도 나고. 참 좋은데."
"줄거리 때문에 그림은 잘 안 보게 되잖아. 그림 자체를 볼 수 있어 좋은 것 같지?"

그런데 그리 오래지 않아 친구들은 저마다 이처럼 말하거나 하며 그림에 공감하고, 좋아했다. 그리고 동화책들을 읽을 수 있는 지하에서 국내에서 출판된 네 권의 책까지 돌려보며 나름의 감상까지 나눌 정도로 좋아한 전시, 좋은 시간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동화책에 이렇게 푹 빠져보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그렇지? 그림 보고 (동화책) 읽으니 훨씬 와 닿네!"
"그런데 이 <천사의 구두>는 애들에겐 좀 어려울 것 같지 않니?"

▲ 구겨지고 빛바랜 종이에 그림을 그린 작가로도 유명한 요안나 콘세이요의 스케치 등 작품 세계를 볼 수 있는 영상은 다시 한번 보고 싶다. ⓒ 김현자


▲ 어린 시절에 재미있게 읽은 <백조 왕자> 한 부분.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은 그림이다. ⓒ 김현자


▲ 요안나 콘세이요 작품이 들어간 그림 동화 4권을 읽을 수 있는 지하 전시 공간에서 동화책에 푹 빠진 고향 친구들. ⓒ 김현자


전시를 다녀온 후 알게 되었는데, 알부스 갤러리는 올 5월에 개관한 국내 최초 일러스트레이션 전문 전시공간이라고 한다. 요안나 콘세이요 전은 갤러리의 두 번째 전시, 앞서 <돈키호테> 그림을 여러 차례 그린 요제프 빌콘의 작품을 전시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일부 페이지가 닳을 정도로 되풀이 해 읽을 정도로 좋아했던 <돈키호테> 그림을 그린 작가의 전시라는 것만으로 좋은 전시를 놓쳤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덧붙이면, 요안나 콘세이요는 볼로냐 국제 그림책 원화전에서 2004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었다. 부산 비엔날레 참여작가이기도 하다. 이 작가는 평소 구겨지거나 빛바랜 종이에 연필과 색연필로만 그림을 그리는데, 색칠을 최대한 절제함으로써 연필의 질감이 돋보인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전시가 좋은 이유는 원화인 만큼 그림에 스토리가 전혀 들어가지 않아 그림 자체만으로 그림이 말하고 있는 어떤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크기도 한정되고 인쇄로 만나기 때문에 동화책만으로는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그림을 훨씬 생생하게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연필의 다양한 질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어서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향친구들과 함께 간 전시라 좋았다. 그동안 친구들과는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 이처럼 전시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요안나 콘세이요도, 친구들과 함께 보며 이야기 나눈 그림들과, 함께 나눈 좀 더 많은 것들과 함께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가도 좋을 전시다. 그런데 나처럼 친구들과 가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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