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음조차 거부당하던 한국와인에 올인한 남자
[대한민국 와인기행] 충북 영동 '컨츄리 와인'에 가다 ③
▲ 김덕현 대표 ⓒ 유혜준
[대한민국 와인기행] 충북 영동 컨츄리 와인에 가다 ②에서 이어집니다.
김덕현 대표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아버지와 겪은 갈등이었다.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의기투합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도 마찬가지다. 그 과정에서 겪는 갈등은 일종의 통과의례와 같다. 그것은 막 2세 경영을 시작하는 다른 와이너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와인 양조 철학이 아버지와 아들이 달랐다. 오랫동안 와인양조를 하면서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아버지 입장에서 걸음마 단계인 아들이 믿음직스럽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훌륭한 양조가가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기에 더욱 그랬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컨츄리 와인을 찾는 고객들은 대부분 40대에서 50대이거나 아버지 연배이신 분들이 많아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제가 경험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실제로도 그랬다. 그것을 잘 아는 김덕현 대표는 와인아카데미와 김준철 와인학교 등에서 와인양조를 배우면서 착실하게 지식과 경험을 쌓아갔다. 한편으로는 와인 판매를 전담했다. 전국에서 열리는 술 축제나 와인품평회, 와인행사 등에 참여하면서 컨츄리 와인 홍보를 꾸준히 이어나갔다. 잘 해서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도 한몫 단단히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한민국에서 가장 젊은 양조가라는 자부심도 생겼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온다. 2012년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번갈아 병원에 입원하면서 와인양조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와인 양조가 오롯이 그의 몫이 됐다.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다. 와인을 잘 만들 수 있을까? 와인을 망치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잘 해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렇게 고민하면서 만든 와인이 상을 받았다.
"2013년에 열린 코리안 와인 어워즈에 출품한 컨츄리 와인 두 종이 금상을 받은 거예요. 상을 받은 뒤에 아버지께서 '그러면 이제는 네가 만들어봐라' 하시면서 믿어주게 된 거죠. 그 이후부터 제가 와인 발효부터 마지막 공정까지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 컨츄리와인 시음장 ⓒ 유혜준
김 대표는 부모님의 신뢰를 얻은 게 가장 기뻤다고 한다. 김 대표의 주도로 7평에서 시작된 컨츄리 와인의 와이너리 규모가 발효실, 저온숙성실, 지하저장고, 시음장으로 규모가 확장된 것도 그런 믿음이 바탕이 됐다. 김 대표가 부모님을 설득해서 착실하게 규모를 넓혀 나갔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와이너리의 가장 중요한 '통장 관리'를 자신이 한다면서 자랑한다. 김 대표가 와이너리 운영 중심이 되었다는 의미이리라.
김 대표의 젊은 감각이 빛난 것은 올해 7월부터 허용된 주류 온라인 판매였다. 온라인 판매가 시작되기 전부터 김 대표는 온라인 시장을 겨냥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왔다. 그래서 7월에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자마자 네이버 쇼핑몰과 다음 카카오에서 컨츄리 와인 판매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의 이런 전략은 맞아 떨어졌다. 처음에는 온라인 판매에 별다른 기대를 걸지 않았는데 꾸준히 와인이 팔리면서 판매가 늘고 있다.
"처음에는 주문이 한두 병밖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앞으로 온라인 판매가 대세가 될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한 병이라도 정성들여 포장하고, 보낼 때는 명함과 팸플릿을 꼭 넣었어요. 판매후기나 댓글도 계속 체크를 하면서 소비자 반응을 확인했죠."
김 대표는 온라인 고객 90% 이상이 한국와인을 처음 마신다는 사실도 이런 관찰 덕분에 알게 됐다. 배송과정에서 와인이 분실되거나 파손되는 일이 일어나면 택배사나 소비자와 시비를 가리기보다 소비자의 만족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발 빠르게 대응해 소비자와 신뢰 쌓기에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일까, 온라인 판매는 이제 4개월을 넘기고 있지만 판매가 순조롭게 늘어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내년에는 전체 판매량의 30%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지금은 다른 와이너리들도 속속 온라인 판매에 뛰어들고 있다. 그만큼 경쟁이 심해지는 추세지만, 김 대표는 한국와인 판매시장이 확산되고 있다는 청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온라인 판매시장이 커지고 판매량이 늘어나면 일반 소매판매보다는 온라인 판매에 주력하려고 합니다. 소매 판매를 하면서 사기도 많이 당해 와인대금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거든요."
와인 납품을 의뢰해서 믿고 와인을 보냈더니 유령주소이거나 전화번호가 바뀐 경우가 많았다는 건데, 이런 경험은 대부분의 와이너리들이 한두 번 이상 한다. 그럴 때마다 의욕이 푹푹 꺾인다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 김덕현 대표 ⓒ 김덕현
한국와인은 생산보다 판매가 더 어렵다. 지금은 2015년에 광명동굴에서 한국와인 판매를 시작한 뒤, 홍보가 많이 돼 한국와인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지만, 그가 처음 와인사업에 발을 들여놓을 때만 해도 한국와인은 어딜 가나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수입와인과 끊임없이 비교 당했다.
한국와인은 시음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다. 시음용 와인 잔을 손으로 막으면서 시음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치욕스럽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무안을 당한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김 대표는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 품질의 와인을 만들겠다는 마음을 다지고 또 다졌단다. 그게 그가 와인 양조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됐다.
김 대표는 와인 양조를 하면서 활동분야가 넓어졌단다. 전국에서 와인 양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벤치마킹을 하러 한 번은 컨츄리 와인을 방문한다. 작은 규모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농가형 와이너리이기 때문이다.
"와서 보시고 이 정도 규모라면 해볼만하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이 우리 와이너리와 똑같은 와인 발효설비와 저장탱크 등을 만들어달라고 요청을 하셔요. 제가 귀금속 디자인을 전공해서 쇠를 다루는 금형설계도 같이 했거든요. 그래서 우리 와이너리에 있는 설비들을 제가 직접 설계하거나 만들었어요. 발효탱크, 냉각수조 등등."
컨츄리 와인의 와인 제조설비는 그가 직접 와인을 만들면서 시행착오를 겪은 경험이 녹아 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주장이다. 와인 저온살균기도 김 대표가 직접 설계해서 만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자랑삼아 말했더니 와인설비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더란다. 그렇게 해서 와인설비사업도 더불어 하게 되었다.
▲ 컨츄리 와인 ⓒ 유혜준
컨츄리 와인에서 생산하는 와인은 전부 4가지다. 캠벨 얼리로 만든 캠벨 스위트와인과 드라이와인, 산머루로 만든 산머루 스위트와 드라이와인. 그가 레드와인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부모님은 다품목으로 가야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와인의 질과 맛을 높이면서 생산량을 늘려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부분에서 부모님과 갈등을 겪고 있지만, 좋은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좋은 와인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면 다른 와인들도 잘 만들 수 있어요. 당분간은 레드와인 4가지 품목에만 전념할 계획입니다."
컨츄리 와인에서는 이 4가지 와인 외에도 매년 한정판 이벤트 와인을 만든다. 김 대표의 설명을 빌자면 '스토리가 담긴 와인'인데, 올해는 블루베리 와인을 천 병 남짓 출시했다. 영동에도 귀농을 한 사람들이 있는데 귀농인 가운데 한 사람이 무농약 블루베리를 재배했다. 그런데 블루베리 가격이 폭락하면서 판매가 쉽지 않다는 사정을 듣고 전량 구매해 와인을 만들었다.
재작년에는 침수된 포도밭에서 버려질 수밖에 없는 포도를 김 대표가 직접 수확해 로제와인을 만들었다. 물을 많이 먹은 포도라 레드와인으로는 약할 것 같아 로제와인으로 만들어 오크통 숙성을 거쳤다. 생산량은 600병 남짓.
이런 스토리를 지닌 이벤트 와인은 온라인 판매를 하지 않고 컨츄리 와인을 방문하는 고객들에게만 한정판으로 판매하고 있다.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아 매년 계속할 계획이란다. 올해의 이벤트 와인이 무엇인지 문의하는 전화도 가끔 온다나.
▲ 김덕현 대표 ⓒ 유혜준
귀향하면서 김 대표가 가장 고민한 문제는 따로 있다. 와인은 열심히 정성을 다해 만들면 성공할 자신이 있었는데, 사람의 힘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결혼이란다. 귀향하면서 그는 자신이 '농촌 노총각'이 될 거라는 예상을 했다나.
"가끔 결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농촌 총각들이 결혼을 못하거나 국제결혼을 많이 하는 것을 보면서 결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다행히 자신을 잘 이해해주는 주관이 뚜렷하면서 현명한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다면서 김 대표는 활짝 웃었다. 작년 3월에 결혼했다.
"아내가 와인양조가인 제가 자랑스럽다는 얘기를 해줍니다. 그래서 많이 고맙죠. 저는 이 직업을 너무 잘 택했다는 생각을 해요. 다른 와이너리들도 마찬가지지만 제 목표는 우리 와인을 수출하는 겁니다. 외국 사람들이 와이너리 투어를 하고 싶어 하는 와이너리가 되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아직 젊으니까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한국와인을 더 사랑하는 것도 필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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