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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탓에 몰래 만든 <1987>, 배우들 출연 요청 쏟아져"

[inter:view] <지구를 지켜라> <화이>에 이어 < 1987 >로 돌아온 감독 장준환

등록|2017.12.29 12:05 수정|2017.12.29 12:05
영화 < 1987 >의 장준환 감독도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포함돼 있었다. 장준환 감독은 "그 당시에는 몰랐다. 활동도 별로 안 했는데 독심술이 있으신가? 왜 나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가 됐지만 < 1987 >을 영화로 제작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는 아니었다. 처음 장준환 감독이 1987년 6월 항쟁을 다룬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건 재작년 겨울이었다. 박근혜 정권이 한창 세를 이어가 촛불집회 이후 때이른 정권교체를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무렵이었다. 장 감독은 "서슬퍼런 시절이었기 때문에 섣불리 1980년대 이야기를 영화화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 지난 22일 인터뷰 당일, 영화 < 1987 > 장준환 감독은 '1987'이라고 크게 새겨진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 모자에 대해 묻자 장 감독은 웃으며 "스태프들하고 나눠 쓰려고 만들었다"고 모자의 제작 후기를 전했다. ⓒ CJ엔터테인먼트


"사회 전반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굉장한 불이익을 받는다는 걸 다들 알고 있던 시대였다. 고민하다가 '1987년이 이렇게 중요하고 한국 현대사에 있어 큰 족적을 남긴 해인데 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나?'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 났다. 또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니 '우리가 후대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줘야 할까?' 싶었고. 해야 하는 이야기 같았고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 때문에 앞으로 영화를 못 만들게 될까 봐 그게 제일 두려웠다. 또 이 영화를 과연 만들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비밀리에 작업을 진행했다."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는 가장 최소한의 인원만 두고 서로 입조심을 해가며 자료 조사와 캐릭터 분석을 해냈다. 보통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대체로 그렇듯 실존 인물들에게 자문하는 과정이 있어야 했으나 그마저도 생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는 이렇게 큰 상업 영화가 될 거로 생각하지 못했고 저예산 영화로 가야겠다는 마음마저 먹었단다.

영화가 점차 규모를 늘려간 건 이른바 '스타급' 배우들이 합류하면서부터였다. 특히 장준환 감독은 강동원과 김윤석 그리고 하정우 배우에게 감사를 표했다. 장 감독은 강동원 배우를 두고 "< 1987 >을 처음 시작하게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강동원 배우와는 단편 작업을 하면서 친분이 있었다. 무슨 작업을 하는지 서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다. 강동원 배우가 내게 뭐하냐고 물어봤을 때 조심스럽지만 '1987년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라고 말했고 '시나리오 완성되면 한 번 보여주세요'라고 답하더라. 그런데 사실 강동원 배우가 할 만한 역할이 처음에는 없었다. 당시에는 '이걸 저예산으로 해야 하나' 고민까지 했던 시절이니까. 그러다가 '잘생긴 남학생'(이한열)이라는 배역밖에 없다면서 보여줬는데 '폐가 되지 않는다면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뭐랄까 그게 우리가 영화를 만들 가능성을 좀 더 높여준 계기가 돼줬다. 그런 면에서 강동원 배우가 최초로 우리 영화를 시작하게 만들어줬다고도 볼 수 있다.

거기에 김윤석 선배도 동참해주셨고 하정우 배우도. 시국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참여해주신 세 배우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여진구 배우는 영화 <화이>를 하면서 알게 돼 부탁했고. 처음에는 '감독님께서 영화를 하시면 (분량이) 짧아도 해야죠'라고 하더니 나중에 이게 어떤 사건이고 자기가 박종철 열사 역할을 맡는다는 걸 알게 된 다음에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더라. '이런 분을 내가 연기해도 될까요?'라면서. 그랬는데 또 잘 하더라. (웃음)

또 시나리오가 알려지면서 작은 역이라도 좋으니까 이 영화에 참여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혀주신 배우분들도 정말 감사하다.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달수 선배님이나 김의성 배우 역시 선뜻 '기다리고 있었다'며 '나한테 올 줄 알았어! 뭐라도 하나 해야지' (웃음) 하셨다. 사실 참여하고 싶다고 의사를 표현한 배우분들이 더 많았는데 '너무 죄송하지만 이제 자리(배역)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자리를 빌려 꼭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

▲ 영화 < 1987 > 장준환 감독 ⓒ CJ엔터테인먼트


대공수사처장 김윤석의 차가운 얼굴에서 시작해, 모두가 모인 1987년 6월 뜨거운 광장에서 끝을 맺는 < 1987 >. 자연스럽게 2017년의 광장이 연상됐다. 실제로 기자회견에서 몇몇 배우들은 2017년 촛불집회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관련 기사: 영화 <1987> 연기한 배우들은 왜 촛불 집회에 나갔나) 2017년의 열기를 지켜보던 장준환 감독은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준비한 건 아닌데 이렇게 일이 벌어진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안타까웠다"라며 "왜 또 국민들이 엄동설한에 나와서 이래야 하는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1987> 언론시사회에서 장준환 감독이 소감을 말하던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장준환 감독은 인터뷰에서 "완전히 '울보 감독'으로 등극했다"며 웃었다. ⓒ 유성호


"사실 1987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대충 알고 있었지만, 내부에서 어떤 일들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많은 양심의 소리가 있었다는 것도 잘 알지 못했다. 흔히들 혁명은 배고플 때 일어난다지만 당시 경제성장률도 좋았고 막 개발도상국으로 올라서던 시기에 미완의 혁명이지만 온 국민이 거리로 나와 독재 타도를 외치는 혁명 같은 일이 벌어졌다.

< 1987 >은 그런 6월 항쟁의 매우 아름다운 부분을 들여다보고 있는 영화다. 만일 끝부분 자막에 한 줄만 덧대도 이 영화는 아예 다른 영화가 된다. '그해 12월 군사 정권을 승계한 노태우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는. 6월 항쟁은 굉장히 짧았던 한여름 밖에 되지 않고 이후 야당의 분열로 군사 정권에게 권력을 다시 내준 부분이 있었던 거고. 그 광장에 모여 외쳤던 사람들을 소위 386이라고 하는데 그 이후 386세대들이 어떻게 살았나. 아파트값을 이렇게 올려놓고. 나는 이 영화가 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대체 그 순수함은 어디로 갔느냐는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는 영화이기를 바란다."

▲ 장준환 감독 "< 1987 >은 마치 디즈니 필터를 끼운 것처럼 아름다운 부분을 그리고 있는 영화다. 그게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부분이고 그런 부분을 잊지 말고 되돌아보자는 거다." ⓒ CJ엔터테인먼트


한 사람에서 여러 사람으로 확장돼 '결국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영화의 기획은 감독으로서 도전해볼 만한 참신하고 독특한 기획이었지만 동시에 걱정스러운 부분이기 되기도 했다. 장 감독은 "전통적인 드라마 작법으로는 감정 이입할 주인공을 한두 명 주고 그 사람들을 따라가다가 카타르시스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며 "그래서 인물 하나하나를 밀도 있고 쉽게 우리가 그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를 느끼면서 동시에 이야기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구성해봐야겠다"고 밝혔다.

배우 김태리가 연기한 연희 정도를 제외하고 그렇게 차근차근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해석된 캐릭터들은 각자 화면 속에서 나타나고 빠지며 자신의 역할을 다해낸다.

장준환 감독은 < 1987 > 속 인물들에 특별한 감정을 표했다. 그는 "이건 물론 <지구를 지켜라>나 <화이>처럼 내가 만든 영화지만 그냥 영화가 아닌 것 같다"며 "불과 30년 전 이야기를 하고 있고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그 슬픔이나 아픔들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얼마 전 이한열 열사 어머님도 현장에 와주시고 박종철 열사님 가족들도 찾아뵙고 묘지에 가서 참배도 드렸다. 스무 살, 스물한 살 그 꽃다운 나이에 뭘 얼마나 알고 뭘 얼마나 잘못했다고. 물론 성인이니까 충분히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나이인데 그런 부분이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도 안타깝다. 나도 아이가 있다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들더라.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이후로 30년을 보낸 그분들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계시더라. 당연히 그렇지 않겠나. 그 생때같은 자식들을 보내고 어땠을지."

"<지구를 지켜라> 같은 작품 또 하고파"

▲ 영화 < 1987 > 장준환 감독 ⓒ CJ엔터테인먼트


장준환 감독은 < 1987 >로 복귀를 했지만 원래 <지구를 지켜라>처럼 독특한 결의 영화를 데뷔작으로 만들어 주목을 받았던 감독이었다. 장 감독은 '이렇게 큰 상업영화 말고 <지구를 지켜라> 같은 작품도 앞으로 하실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웃음을 터트리며 "<지구를 지켜라>는 그 당시에 엄청 망한 작품이긴 하지만 작은 작품은 아니었다. SF 물이라 영화를 만드는 평균 예산보다 훨씬 많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 1987 >은 장준환에게 기대했던 영화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나는 아직도 <지구를 지켜라> 같은 그런 B급 감성이나, '병맛' 같은 것들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다. 본성은 그대로다"라고 했다.

"방귀 뀌는 히어로 '파트맨'이라고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작업도 있고 (웃음) 인어들을 중심으로 한 가짜 다큐멘터리 같은 것도 하나 있다. 아마 돈이 많이 들 것이다. 그런데 또 그런 마이너한 장르로 하려다 보면 (한숨) 내가 해야지. < 1987 >의 최 검사 말처럼 내가 돈 벌어서 내가 해야지."

장준환 감독은 최근 영화계에 아주 큰 영화 아니면 저예산의 독립영화밖에 없다며 중간 규모의 영화들이 점차 사라져 가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는 파노라마처럼 영화가 다양했으면 좋겠다면서 "영화적으로 좀 더 다양한 시도와 부딪힘이 있고 서로를 자극하고 뭔가 더 새로운 것들을 관객과 나누는 지점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런 부분이 나도 많이 안타깝고 어떻게 하면 한국 영화계가 좀 더 건강해질 수 있을까 같이 고민하려고 한다. < 1987 >이 잘 되고 나면 좀 더 기회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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