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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폭력 피해자"... 용기냈던 여배우들, 지금은

[2017 영화이슈 결산] '영화계 내 성폭력'과 '블랙리스트', 여성들의 분투

등록|2017.12.30 13:48 수정|2022.09.23 14:54

베를린영화제 폐막식 참석하는 김민희배우 김민희는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지난 2월 제 67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 연합뉴스


[기사수정 : 2022년 9월 23일 오후 3시]

한국 여성 배우 최초로 베를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김민희, 76세로 데뷔 57년 만에 청룡영화상 등에서 최고령 여우주연상을 받은 나문희, 각종 신인상을 휩쓴 최희서 등 2017년은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이 주목받은 한 해였다. 심지어 70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세 명의 여성 감독 중 두 명이나 본상을 받는 쾌거도 있었다.

이런 빛과 함께 어둠도 공존했다. 여전히 남성 영화인에 비해 여성 영화인의 쓰임이 아쉽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제기된 '영화계 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사건 당사자들이 각지에서 분투한 한 해이기도 했다. 빛에 대한 환호와 갈채가 충분했다면 어둠에 대한 관심은 일부 누리꾼들의 사실 왜곡과 함께 당사자들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다. 2017년 세밑, <오마이스타>는 이 어둠에 주목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영화계 여성 관련 사건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교훈들을 정리해봤다.

① 남배우A 사건, 연예 매체가 본질 가렸다

2015년 4월 영화 촬영 중 남배우 A가 여배우 B에게 합의되지 않은 연기를 강압적으로 하며 불거진 '남배우A' 사건. 법원은 1심에서 강제추행치상 혐의 등에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이를 뒤집고 강제추행에 대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유죄 판결이다. 판결 직후 양측은 기자회견을 자처했고, 이 과정에서 남배우는 '조덕제'라는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며 언론과 여론전에 적극 임했다.

<오마이스타>는 여배우B를 단독으로 만나 사건의 경위와 그의 심경을 보도한 바 있다(관련 기사: "진흙탕 싸움 싫어 침묵했지만"'남배우A사건' 피해자 여배우B의 고백). B씨는 자신의 사례가 영화계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성폭행·성추행 사례임을 강조했고 최대한 여론전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일부언론은 재판과정에서 판단이 끝난 자료를 일부만 혹은 편집해 공개하며 양측의 공방전 구도를 만들었고(관련 기사: "강제추행 부정 아닌데..." <디스패치> 취재 응한 전문가 반박),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게 하는 정보를 그대로 노출함으로써 2차 피해 위험까지 느끼게 했다.
 

▲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배우 조덕제는 수차례 기자회견을 자청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 연합뉴스

피해 사실에 대한 가해자의 사과, 영화계 내에 만연한 일방적 폭력과 강압을 없애야 한다는 본래 목적보단 진실 공방전으로 사안이 흐른 셈이다. 다수 연예 매체는 특별한 취재가 없는 받아쓰기와 특정 주장을 검증 없이 싣는 나열식 기사를 쏟아냈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만든 성폭력 범죄 보도의 권고 기준이 이미 있었지만 이를 준수하는 매체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성폭력·성추행 사건에 있어서 여전히 언론 보도와 대중의 태도가 원초적임을 재확인했다는 건 여러모로 암울한 지점이다.

해당 사건의 최종 판단은 대법원이 할 예정이다. 여배우B씨는 용기를 냈고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그는 여러 차례 "명예와 이미지 타격을 입겠지만 저로 인해 영화계에 이런 일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사안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보다 나아질지 지켜볼 일이다.

② 김기덕 감독 사건... 영화계 구조적 문제의 상징

남배우A 사건과 비교해 볼 때 권력 관계가 더욱 명확히 드러난 경우가 김기덕 감독의 폭행 논란이다. 김 감독은 영화 촬영 중 연기 지도를 명목으로 여배우A씨의 뺨 등을 때리고 합의한 바 없는 장면을 강요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4년 만에 피해 당사자가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합당한 처벌과 재발 방지를 촉구했지만 지난 12월 7일 검찰은 주요 혐의를 기각했다. 김기덕 감독은 폭행 혐의로 500만원의 벌금형에 약식 기소됐다.
 

▲ 영화감독김기덕사건공대위 주최로 지난 8월 열린 ‘#STOP 영화계 내 성폭력 - 그것은 연출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기자회견 당시 현장. ⓒ 권우성

피해 당사자와 공동대책위원회는 검찰의 수사가 안일하다며 항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 나온 A씨의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4년 만에 나타나 고소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고소 한 번 하는 데 4년이나 걸린 것"이라며 "(주변에선) 세계적인 감독을 상대로 고소하는 것이 승산 있겠나, 그냥 잊으라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A씨는 사건 이후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와 민우회 등에 지속적으로 피해 사실을 알리는 등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영화계 내에서도 분위기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유명 감독과의 권력관계에 의해 소극적이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정해진 일정이 밀릴 때 혹은 김기덕 감독처럼 명망 높은 이들이 현장을 지휘할 때 종종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된다고 한다. 표준계약서가 일반화되긴 했지만 의무가 아닌 권고 사안이고 현장 상황에 따라 감독과 제작사의 구두 지시기 더 강한 힘을 발휘할 때가 많다. 노출신의 경우도 디테일하게 표시되기보단 두루뭉수리하게 담긴다. 현장에서 감독의 과한 요구로 배우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하는 경우도 많다.

영화 <전망 좋은 집>에 출연한 배우 곽현화 건도 이에 해당한다. 특정 노출 장면에 대해 이견이 있었지만 "극장 개봉에선 해당 장면을 편집하겠다"는 감독의 구두 약속을 믿고 출연했다가 이후 IPTV용에 노출신이 다시 담겨 분쟁이 발생한 사례다. 곽현화는 이수성 감독을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형사 고소했지만 1심과 2심 모두 해당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이수성 감독은 이후 기자회견을 열어 곽씨와의 계약서를 공개했다. '촬영 분량에 관한 모든 지적 재산권이 감독에게 있다'는 문구가 법원 판결에 크게 작용한 것으로 감독 측은 분석하고 있었다. 곽현화의 요구를 들어준 구두계약에 대해 이수성 감독은 "하도 사정해서 들어준 것"이라 답했다.
 

▲ 방송인 곽현화. ⓒ 연합뉴스


이후 곽현화 역시 기자회견을 통해 감독이 자신에게 사과한 내용, 부탁한 내용 등을 공개했다. 노출장면을 더 완강히 부인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그가 답한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영화 촬영이었고, 그 영화의 감독이었으니 강하게 부정하면 배우로서 안 좋게 비칠 것 같은 두려움이 컸다"고 그는 답했다. 이어 곽현화는 "범죄가 아니었다고 법원이 판결했다고 해서 그 행위가 과연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옳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저는 여전히 의문"이라 덧붙였다.

이 사건 역시 대법원의 판단이 남아있고 민사 소송 또한 따로 걸려 있다. 여전히 배우와 스태프는 구두 계약과 실제 계약 사이에서 신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사례들이다.

③ 블랙리스트, '국가로부터의 폭력' 겪은 배우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김규리. ⓒ SBS

가장 치명적이고 거대한 폭력이 영화계에 있었으니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 당시 청와대와 국정원의 지시로 이뤄진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해당 리스트에 오른 수많은 영화인들은 알게 모르게 생업에서 배제당하고 이유 없는 공격과 차별을 받아야 했다. 대표 사례 중 하나가 배우 문성근과 김여진의 나체 합성사진이다. 이것 역시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을 공격하기 위해 국정원이 직접 조작한 것임이 최근 밝혀졌다.

광우병 파동 때 배우 김규리가 소신 발언한 것을 두고 끊임없이 달린 악성댓글 역시 블랙리스트에 포함됐기 때문이었다. 국정원 댓글부대의 실체가 드러난 이후 김규리는 관련 사안에 대해 처음으로 방송에 출연해 발언했고 한참을 울었다. 무려 10년, 여배우로선 꽃다운 시간이 그렇게 상처와 공격으로 얼룩졌다. 문성근은 이런 김규리를 두고 "(블랙리스트의) 최대 피해자"라 표현했다.

국가적 폭력이 개인의 명예실추뿐만 아니라 일할 기회마저 뺏는 수준으로 흘렀다. 발본색원이 시급하지만 국정원의 나체사진 유포 사건은 책임자가 아닌 그 아래 담당 직원에 대한 솜방망이 판결(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 선고)만 내려졌을 뿐이다.

문성근은 이와 관련해 블랙리스트 피해자들과 함께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을 검찰에 소환하기 위한 민·형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아울러 지난 9월 검찰에 출석해 진술한 뒤 "조사 범위가 한정돼 있었다. 블랙리스트가 바닥으로 내려가 피해를 발생시킨 건데 그 과정에 대한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전 방위적인 수사를 촉구했다.

2018년 국정원 개혁과 함께 블랙리스트 조사 과정은 영화계에서 가장 크게 주목할 사건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동시에 검찰 개혁 과제 중 하나로 언급된 고 장자연 사건 역시 재수사가 이뤄질지 관심을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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