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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다른 하늘빛을 "그리는 대로" 즐겁습니다

[새해를 여는 그림책] 피터 레이놀즈 <그리는 대로>

등록|2018.01.12 15:26 수정|2018.01.12 15:26
우리 집 큰아이한테는 여러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 큰아이가 스스로 좋아하거나 즐기거나 사랑하거나 잘하는 놀이나 일이 있으면, 그 놀이나 일에 맞게 이름을 지어 줍니다. 이를테면 사진순이, 그림순이, 글순이, 이야기순이, 책순이, 달리기순이, 웃음순이, 노래순이 같은 이름이 있어요. 잘 놀기에 놀이순이도 되고, 심부름을 잘 하기에 심부름순이도 됩니다. 밥짓기를 즐거이 돕거나 밥을 잘 먹으면 밥순이입니다. 빨래순이, 비질순이, 모닥불순이, 나무순이, 꽃순이, 자전거순이도 됩니다.

우리 집 작은아이는 큰아이하고 나란히 사진돌이, 그림돌이, 글돌이, 이야기돌이, 책돌이 들이 됩니다. '순이·돌이'라는 이름이 곱다고 여겨 이러한 이름을 써요. 작은아이는 여섯 살로 접어들 무렵까지 "누나는 그림을 잘 그리고, 나는 그림을 못 그려!" 하며 살았지만, 일곱 살을 지나고부터는 그림 투정이 확 줄었어요. 어느새 작은아이 손끝에서도 그림결이 살아납니다. 그리고 또 그리고 자꾸 그리면서 스스로 거듭나요. 말 그대로 "그리는 대로" 그림을 잘 그릴 수 있구나 싶어요.

▲ 겉그림 ⓒ 나는별


마리솔은 자기 그림을 모두 전시장(냉장고나 집안 곳곳)에 걸어 두지 않았어요. 오히려 세상 사람들과 널리 나누고 싶어 했지요. 마리솔은 포스터도 그렸어요. 자기가 믿는 생각을 널리 알리려고요. (5쪽)


곁에서 아이들을 늘 지켜보기에 "그리는 대로"란 얼마나 대단한가를 새삼스레 배웁니다. 그림책 <그리는 대로>(나는별 펴냄)를 볼 적에도 '참 그렇지 그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반가워요.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그림그리기를 매우 좋아한대요. 온 집안을 전시장으로 삼는대요. 우리 집 두 아이도 이와 같습니다. 붓으로든 연필로든 온 집안에 그림을 척척 그려서 붙이다가, 아예 빈 벽이 있으면 빈 자리가 없도록 알뜰히 그림을 그려 넣습니다.

아이들한테 물어보았어요. "우리 이쁜 아이들아, 이 벽에까지 왜 그림을 그렸니? 그림종이가 따로 있지 않니?" "응, 이 벽이 더 이쁘라고 그렸어."

▲ 온 집안은 전시장 ⓒ 나는별


우리 집 구석구석 더 이쁘라고 그림을 그려 넣었다는 아이들 말에, 이 아이들을 그저 안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면서 한 마디를 붙이지요. "그래, 우리 집이 너희 그림을 참으로 좋아하겠구나. 멋진 생각이네."

마리솔은 물감 상자를 샅샅이 뒤졌어요. 그런데 파란색이 없지 뭐예요. "어떻게 하늘을 그리지? 파란색 물감이 없는데." (11∼12쪽)


그림책 <그리는 대로>에 나오는 아이는 학교에서도 그림놀이를 즐기는 아이가 어느 날 근심에 잠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학교에서는 도서관 벽에 아이들 그림을 넣기로 하는데, 하늘을 그리기로 한 아이한테 막상 파란 물감이 없대요. 아마 그동안 파란 물감을 신나게 쓰느라, 파란 물감이 다 떨어진 줄 잊었겠지요.

▲ 파란 물감이 없어! ⓒ 나는별


파란 물감이 다 떨어졌으면 파란 물감만 새로 장만할 수 있을 텐데, 그림책 아이는 '물감 새로 장만하기'가 아닌 '파란 물감이 없으니 어쩌지?' 하는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다른 동무는 신나게 그림을 그리는데 저 혼자만 그림을 못 그리면서, 붓을 못 들면서, 그리고픈 하늘을 못 그리면서, 그토록 좋아하는 붓질을 하나도 못 하면서, 내내 시무룩합니다.

해가 지평선 가까이로 지고 있었어요. (15쪽)
마리솔은 낮이 밤으로 바뀌는 것을 지켜보았어요. (17쪽)
그날 밤, 마리솔은 멋진 꿈을 꾸었어요. (19쪽)


시무룩하고 근심하는 아이는 말없이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문득 저녁놀을 봅니다. 저녁놀을 날마다 보고 또 보았을 텐데, 이날 따라 저녁놀은 좀 다르게 보입니다.

▲ 시무룩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 나는별


그래요. 저녁놀이 퍼질 때에는 하늘빛이 다르지요. 해가 하늘 높이 있을 적하고, 해가 막 뜰 적하고, 해가 막 질 적하고, 해가 진 뒤에 하늘빛이 달라요. 구름이 있을 적에도 하늘빛이 다르고, 구름이 어느 만큼 있느냐에 따라서도 하늘빛이 달라요. '하늘빛 = 파랑'이라고만 할 수 없어요.

이제 그림책 아이는 시무룩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요? 이튿날 그림책 아이는 학교에서 기운을 내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요?

그림책 <그리는 대로>는 이 책이름처럼 "그리는 대로"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밝힙니다. "보는 대로" 그릴 수 있으며 "그리는 대로" 생각이 거듭날 수 있다고 가만히 밝힙니다. "생각하는 대로" 무엇이든 달리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마음을 기울이고 더 사랑을 쏟으면서 무엇이든 새롭게 보고 느껴서 새롭게 그릴 수 있는 줄 조용히 밝혀요.

늘 똑같이 그리는 몸짓이 아닌, 늘 새롭게 그려 보는 웃음입니다. 언제나 틀에 맞춘 채 그리는 몸짓이 아닌, 언제나 기쁘게 거듭나면서 그려 보는 노래입니다. 그리는 대로 즐겁고, 그리는 대로 놀라우며, 그리는 대로 사랑이 됩니다.

▲ 시무룩하던 아이가 이튿날 그린 하늘 그림입니다. ⓒ 나는별


덧붙이는 글 <그리는 대로>(피터 레이놀즈 글·그림 / 엄혜숙 옮김 / 나는별 / 2017.10.27.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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