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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수백만원 들여 찾는 곳, 그는 왜 떠나려고 할까

[터키 여행기] 카파도키아에서 여행과 일상의 간극을 떠올리다

등록|2018.01.05 10:39 수정|2018.01.05 10:39

▲ 기묘한 형상의 바위가 사람들을 매혹하는 터키 중부지역 카파도키아. ⓒ 류태규 제공


누구나 마찬가지다. 어떤 인간이라도 '지금 이곳'을 떠나 '새로운 다른 곳'을 열망하는 건. 익숙한 풍경과 매일 같이 만나는 사람들 곁에서 멀어져 새로운 하늘과 땅, 지금까지 접해본 바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과 어울려 살아보는 꿈.

여행은 바로 이 꿈을 실현해주는 현실적 방편이다. 하지만, 멀리 떠난다고 해서 인간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 서면 곤혹스럽다. 반복되는 일상을 버리고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겐 하루하루의 삶이 지겨움과 동어반복의 지옥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없지 않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Paul Valery·1871~1945)는 이런 말을 한다.

"가장 아름다운 행복은 일상이다".

이 말에 담긴 함의를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시인은 직설이 아닌 은유로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시인처럼 사고할 수는 없는 법. 보통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렴풋이 '세계와 인간의 진실'을 깨닫는 것이야 무엇이 어려울까.

단순한 곡조의 동요처럼 반복되는 '일상'과 그 일상에서의 떠남을 의미하는 '여행'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황량한 풍경이 인간 내부에 숨겨졌던 열망을 끄집어내게 만드는 터키의 중부도시 카파도키아(Cappadocia) 괴레메에서였다.

▲ 카파도키아 괴레메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거주하던 바위 동굴이 있다. ⓒ 류태규 제공


'기암괴석' 늘어선 도시와 만나다


몇 해 전 여름. 이슬람공화국 이란의 국경을 넘어 터키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자그마치 20시간이 넘는 긴 여정이었다. 보라색 소금호수가 출렁이는 이란 북서부를 힘겹게 통과한 차는 터키의 중심부를 향해 속도를 높였다. 이윽고 도착한 카파도키아.

지구가 아닌 화성이나 목성의 풍경처럼 낯선 모습이 나를 반겼다. 곳곳에 솟아오른 기암괴석과 거대한 바위의 속을 뚫어 도시를 만들어놓은 곳.

카파도키아는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에 위치해 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시대의 종교적 탄압을 피해 바위 동굴 속에 몸을 숨기고 자신들의 신앙을 이어갔다. 그 옛날 카파도키아는 로마의 동맹국이었으나 점차 속국으로 변해가며 자신의 독립성을 잃어갔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카파도키아 지역은 기원전 6세기에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불의 신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가 널리 퍼져있었다. 기원전 190년경에는 셀레우스 왕조의 세력권에 포함됐고, 이후엔 로마의 식민지로 급속히 전락했다고 한다.

실크로드의 중간거점이었던 카파도키아 지역엔 로마시대 그리스도교의 탄압을 피해 숨어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수천 개의 바위에 굴을 뚫어 만든 카파도키아 동굴수도원 등이 그 생생한 사례다.

▲ 터키 곳곳에 산재한 고대의 유적들. ⓒ 류태규 제공


▲ 색깔이 선명하고 당도가 높은 터키의 과일들. ⓒ 류태규 제공


수난은 사람들을 힘겹게 했지만...


오래 지속된 수난과 핍박 탓일까? 터키 카파도키아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의 속내를 다른 이들에게 잘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자신이 살아가는 곳이 '영원하다'고 믿지 않는다. 축적된 역사가 준 상처 탓이다.

카파도키아에서 한국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도시 괴레메. 그곳에서 만난 삼촌과 조카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도, 모종의 열망에 들떠있음을 숨기지 못했던 선량한 그들.

어떤 것은 '우주선'을, 또 다른 어떤 것은 '버섯'을 닮은 괴이한 형상의 바위들이 규칙과 순서 없이 제멋대로 솟아오른 풍경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조그만 마을 괴레메.

특별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점심을 먹고 나면 동네 산책하듯 야트막한 언덕을 이곳저곳 찾아다녔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특별한 풍경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터키 맥주 에페스(Efes) 몇 병과 간단한 안주를 사 들고 다니던 소풍.

그러던 어느 날 오후. 괴레메에서 2km쯤 떨어진 야트막한 언덕 나무 그늘에서 안주 없이 맥주를 마시던 터키의 중년 사내 한 명과 청년 하나를 만났다.

나이가 많은 사내는 괴레메 인근 마을에서 목수로 일한다고 했고, 22살 청년은 카이세리(Kayseri)라는 도시에서 대학을 다닌다고 했다. 아시아 문화를 공부한다고 했던가…. 둘은 숙부와 조카 사이였다.

수인사를 나누고 서로가 가져온 맥주로 목을 축였다. 나는 터키어를 하지 못하고, 둘은 영어가 서툴렀다. 간단한 단어 정도만으로 의사를 나누며 그저 마주 보고 웃었을 뿐. 그러던 시간이 잠시 흐른 뒤 터키 청년이 앞뒤를 자르며 대뜸 물었다.

"우리 마을이 좋으세요?"

예의상 아래와 같이 답할 수밖에 없었다.

"네, 경치가 멋지고 사람들도 착해서 마음에 드는데요."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서글펐다.

"그럼, 여기서 사세요. 대신 아저씨 여권은 나를 주세요. 내가 한국 가서 살게요."

"그럴까요?"라고 웃으며 대답해놓고 보니 괜스레 미안해졌다.

▲ 터키 사람들은 노소를 불문하고 선량한 미소와 친절로 외국인 여행자를 반긴다. ⓒ 류태규 제공


그들의 일상이 보다 아름다워지길


앞서 말했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사랑하며 살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의 파괴와 파격을 원한다. 지루함을 즐기는 인간은 세상에 없고, 모든 일상은 지루함과 맞닿아 있다는 게 문제다.

한국인들은 외계의 혹성을 닮은 카파도키아 괴레메의 기묘한 풍경이 보고 싶어 몇백만 원의 돈을 들여 10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고 터키로 여행을 떠난다. 한국에서의 일상이 지겨워서다. 반면, 어떤 터키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이 지긋지긋해 한국에서의 삶을 열망하며 현재의 일상을 견디고 있다.

'일상'과 '여행' 중 어떤 것이 우리를 보다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어낼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세상이 있을까? 그랬기에 나의 바람은 소박했다. 한없이 착하게 웃는 그 숙부와 조카의 일상이 보다 행복지기를, 그들의 미소가 오래 지속되기를, 그저 그걸 빌었을 뿐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경북매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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