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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힘들어요" 기타쌤 울리는 '등골브레이커'

[명랑한 중년] 그의 환한 얼굴, 언제 볼 수 있을까

등록|2018.01.07 11:20 수정|2018.04.16 15:57
세월에 비례해 현명함이 저절로 생긴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 5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늘 갈등하고 잘못하고 후회하고 배우며 살아갑니다. 오늘 실수하고 내일은 그만큼 지혜가 쌓이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중년의 좌충우돌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그동안 맘만 먹고 있었던 기타를 배워보려고 실용음악 학원을 갔다. 상담을 하는 동안 그 곳 원장은 기타가 배우기 어렵고 손이 아픈 악기임을 강조한다. '이게 뭐지?' 한 사람이라도 더 유치해야 좋을 판에.

이유는 금세 드러났다. 원장이 색소폰 강사이기 때문이다. 색소폰이 얼마나 매력적인 악기인지 구구절절 설명을 하며 동호회 사진을 보여준다. 놀랐다. 내가 설사 그 악기를 배우러 갔다 해도 맘을 다시 먹게 생긴 사진들이다. 나보다 최소 20살은 더 되신 남자 어르신만 가득한 사진. 사진에서도 시큼한 막걸리가 쏟아질 것 같다. 원장은 왜 이런 작전을.

수업 첫날 떨리는 마음으로 학원을 갔다. 강의실 문이 열리면서 기타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순간 당황했다. 그는 푸에르토리코 사람 같다. 재빨리 머리를 굴려 원장이 '기타 선생님이 외국인'이라고 했었는지를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동시에 내 머리에서 '캔 유 스피크 코리언?'을 준비했다. 그 나라 언어가 영어인지 아닌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채 말이다.

그런데 그는 유창한 한국어로 "오늘 처음 오신 문하연님 맞죠?"한다. "네, 맞아요. 한국말을 잘 하시네요." 나는 안도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어느 나라 사람 같아요?"
"푸에르토리코요."

가본 적도, 그 나라 사람을 본 적도 없는데 왜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곱슬머리에 진한 콧수염, 쌍꺼풀이 큰 눈 때문인가? 남미 쪽 사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라이브로 연주할 테니 700원 줘요"

▲ 나와 같은 시간에 레슨을 받는 사람은 세 명이다. 건축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50대 사장님, 파트타임으로 손주를 돌보는 60대 젊은 할머니 그리고 40대 주부인 나다. ⓒ unsplash


나와 같은 시간에 레슨을 받는 사람은 세 명이다. 건축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50대 사장님, 파트타임으로 손주를 돌보는 60대 젊은 할머니 그리고 40대 주부인 나다. 우리는 일주일에 세 번 20분씩 개별 레슨을 받고 한 시간 반은 모여서 연습을 한다.

자연스레 대화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나이와 성별을 초월해서 즐겁게 연습했다. 기타 선생님이 자리를 비웠을 때 건축사 사장은 비밀을 털어놓듯이 그가 토종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자기도 그 말을 듣고 놀랐다며. 사장은 그가 코스타리카 사람인줄 알았단다. 선생님께 사과를 해야 할까? 걱정이다.

6개월쯤 지날 무렵 싱어송라이터인 기타 선생님의 앨범이 나왔다. 우리 셋은 턱을 괴고 선생님의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곡을 들었다. 장르를 단정 지을 수 없는 실험적인 곡 같았다.

곡이 끝나자 선생님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우리를 훑어보았다. 안타깝게도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박수 칠 타이밍도 이미 놓쳤다. 나는 최대한 영혼을 끌어 모아 "와, 엄청난 곡이네요"라고 말하며 두 분께 구원의 눈빛을 보냈건만 두 분은 요새 노래는 잘 모르겠다는 시크한 말을 뒤로 하고 각자 기타를 잡았다. 나는 얼른 화장실을 갔다.

선생님은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자기 노래를 흥얼거렸다. 자꾸 들으니 익숙해서인지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게 된다. 그는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파블로프의 조건 반사처럼 그가 오면 그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친김에 최대한 해맑은 얼굴로 그의 노래를 다운 받아서 자주 듣겠다는 내 결심을 밝혔다. 그는 다운로드 받으면 700원인데 저작료로 50원이 본인에게 지급된다며 나를 극구 말린다. 대신 당장 라이브로 연주하고 노래 할 테니 현금으로 700원을 달란다. 진짜 놀랐다. 저작권이 왜 이렇지? 그 나머지 돈은 누구 주머니로 들어가는 거지?

우리 수강생 셋은 돈을 모아 피자와 커피를 사서 그를 극진히 대접했다. 뭐라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몰라서. 그는 답례로 10분 미니콘서트를 했고 우리 셋은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박수를 쳤다. 그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길 바라며. 근데 내밀기도 손이 부끄러운 700원을 드려야 할지 또 걱정이다.

집에 돌아온 후 포털에 저작권료가 어떻게 나눠지는지 검색을 해 보았다. 다운로드 받는 데 100원을 냈다면 유통사에서 45%, 유통사와 연결해주는 제작사에서 40%, 작사4 작곡4 편곡2 합쳐서 10%, 노래하는 사람과 반주자가 5%란다.

그럼 싱어송라이터는 15%를 가져가니 15원을 가져갈 거 같은데 여기서 협회비나 가입비 명목으로 나눠지는 뭔가가 또 있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충격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가져간다더니.

TV에서 유명 연예인이 1년에 저작권료를 억대로 받는다는 뉴스만 들은 터라 실상을 잘 알지 못했다. 대부분의 음악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지를. 내 아이들이 음악을 하고 싶어 한다면 유통사나 제작사를 추천해야 할 판이다. 아니 부귀영화는 아니더라도 사람이 밥은 먹고 살아야지.

최근 또 다른 싱어송라이터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도 작년 소득이 400만 원 이하라고 했다. 소속사도 있고 무려 2집 가수인데도 말이다. 유명 아웃도어 롱패딩만이 등골 브레이커는 아닌 것 같다. 음악 하는 사람이 음악으로는 먹고 살 수 없으니 투잡 쓰리잡을 해야 하는 이런 구조 속에서 명곡이 나올 수 있을까? 걱정도 팔자라더니 또 걱정이다.

낮에는 기타쌤, 밤에는 바텐더

▲ 레슨이 끝나고 짐정리를 하는데 선생님은 새로운 곡을 만들었다며 들려준다. 아직 미완인 곡을. ⓒ unsplash


연말이 되어 성인 기타 반 수강생들은 선생님의 초대를 받았다. 선생님의 생애 첫 쇼케이스란다. 학원에서는 늘 기운 없고 피곤해 보이던 선생님은 무대 위에서는 날라 다녔다. 그의 외모 때문인지 5인조 밴드는 마치 해외 유명밴드의 내한 공연 같다.

이미 노래를 숙지한 우리도 큰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분위기를 달궜다. 이런 느낌은 '용필 오빠' 이후로 실로 얼마 만인지. 같이 간 젊은 할머니는 노래가 끝날 때마다 연신 '사람이 달라 보이네' 하며 즐거워했다.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기분, 이래서 음악을 하나보다.

다음 기타 수업이 있던 날, 선생님은 또다시 피곤한 얼굴로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젊은 할머니가 무대에서는 펄펄 날더니 왜 또 이렇게 피곤한 얼굴이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한숨을 쉬더니 '먹고살기 힘들어서요' 한다. 이유인즉 학원 레슨비로만은 생활이 안 돼서 밤마다 바텐더로 일을 한단다.

연중무휴로 밤 1~2시까지. 그리곤 새벽에는 곡 작업하고 오전 서너 시간 자고 학원에 나오니 몰골이 말이 아닐 수밖에. 안타까운 마음에 우리는 저작권인지 뭔지를 욕하는 걸로 분위기를 마무리 지었다.

레슨이 끝나고 짐정리를 하는데 선생님은 새로운 곡을 만들었다며 들려준다. 아직 미완인 곡을. 이번에는 시작부터 맘을 단단히 먹었다. 끝나기만 하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리라. 근데 곡이 진짜 좋았다. 진짜 곡이 좋아서 나는 기립박수를 쳤고 사장님은 휘파람을 불었다.

그는 특유의 이국적인 미소로 화답했다. 부디 이 좋은 곡으로 그의 얼굴이 계속 환해졌으면. 그의 바람대로 김밥을 판다는 천국에 가서 가격표 보지 않고 맘껏 시킬 수 있길. 그래서 나도 걱정 없이 그를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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