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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 부모와 학생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들

[TV리뷰] < SBS 스페셜 - I ROBOT : 내 아이가 살아갈 로봇 세상>

등록|2018.01.09 11:24 수정|2018.01.09 11:24
지난 2016년 12월 31일 EBS 장학 퀴즈는 인공지능 '엑소브레인'과 상하반기 왕중왕 김현호, 이정민 학생, 그리고 수능 만점자 윤주일, 카이스트 학생 오현민씨의 대결을 특집으로 마련했다. 결과는 인공지능 엑소브레인의 우승. 2위와 160점이나 차이나는 압도적인 우승이었다.

이 대결의 참가자였으며 서울대에 진학한 김현호 학생에게 이날의 경험은 허망하고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남는다. 김씨는 말한다. 방송 전 예비로 시험을 볼 때만 해도 엑소브레인은 학생들보다 압도적으로 우수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전 준비과정과 몇 시간의 녹화 과정에서 인공지능은 스스로 진화하여 학생들을 압도했다. 

이런 경험을 했기에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한 김현호씨에게 미래에 대한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 경영학과 학생 다수가 선택했던 회계사란 직업은 20년 안에 없어질 직업의 1순위이다. 동기들과 경영 하나로는 먹고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며 프로그래밍 학원이라도 다녀야 하나 고민하는 김씨와 동기들.

▲ I ROBOT - 내 아이가 살아갈 로봇 세상 ⓒ sbs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두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고민이 깊다. 도대체 4차 산업혁명시대에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인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존의 교육과정이 요구하는 학과 공부를 제쳐둘 수 없기에 혼란만 가중된다. 스스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내는 중2 과학 영재 이준서군에게 부모들이 역사 성적에 대한 잔소리를 늘어놓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 것이다.

4차 산업혁명, 혼란에 빠진 학생과 학부모들

1월 7일 방영된 < SBS 스페셜 - I ROBOT : 내 아이가 살아갈 로봇 세상>은 혼란에 빠져 있는 교육과 학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변화이다. 이 거대한 변화는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 것일까? 1,2차 산업혁명으로 인간의 육체적 노동을 기계가 대신했다. 그리고 3차 산업 혁명을 시작으로 이제 4차 산업 혁명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신하기 시작한다.

반도체 부품업체의 인공지능 로봇 소이어. 사람 200명이 하던 일을 소이어의 도움으로 3명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저 사람 수의 문제가 아니다. 알지 못하는 분야의 일도 하루 이틀 학습을 하면 인간을 대체할 정도의 학습 능력을 지닌다. 점심시간이나 브레이크 타임도 없고, 오버타임까지도 가능한 24시간 풀가동 소이어의 능력은 미래 사회 인간의 자리를 대체할 로봇의 현주소다. 일본의 한 로봇호텔은 안내, 청소, 요리 등 사람 30여 명이 할 일을 단 7명만으로도 가능케 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인공지능 로봇의 대두는 한국 사회에서는 '알파고의 충격'으로 집약된다. 프로 바둑기사 중에서도 내로라하는 이세돌은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40여 년 전 유망 직종이었던 전화 교환원이나 버스 안내양 등이 이제 사라지고, 문선공이란 직종은 그 이름조차 낯설어진 세상처럼, 수십 년 내에 우리 사회 직업들은 혁명적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이 관련 학자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고민은 바로 이런 미래사회의 예측 불가능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 I ROBOT - 내 아이가 살아갈 로봇 세상 ⓒ sbs


4차 산업 혁명, 새로운 가능성이 세상

대부분의 4차 산업혁명 다큐들이 미래의 불가지론에 근거한 불안함과 혼돈을 강조하지만, SBS 다큐의 시선은 이와 좀 다른 지점을 포착한다.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이런 변화에 내던져진 인간의 현실을 기계와 인간의 달리기에 비유한다. 1,2,3차 산업혁명 역시 기존의 직업들을 사라지게 했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들은 더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

로봇 공학자 오준호씨는 오늘날 사람들의 불안을 2차 산업혁명으로 자동차가 보급되자 인간과 자동차의 달리기를 예로 들며 좌절했던 당시 사람들과 비교한다. 자동차가 등장했지만 그 자동차로 인해 인간의 생활이 보다 편리해진 것이 압도적인 만큼, 소프트웨어의 발전에 인간은 또한 적응할 것이라는 것이다.

다큐는 인공지능에 대한 불안의 실체에도 과감하게 접근한다. 화제의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 로봇으로 최초 시민권을 획득하고 토크쇼에도 출연했던 로봇 소피아를 인문학자 최진기씨가 만나 정해진 매뉴얼 없이 대화를 나눠본다. 그 결과는? 최진기씨는 소피아를 '동문서답의 마법사'라 여유롭게 정의 내린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마네킹을 씌워놓은 인공지능 스피커 같은 소피아는 프로그래밍 된 용어가 아니면 대화가 불가능하다.

이런 다큐의 실험에 대해 MIT에서 세계 최초 4족 보행 로봇을 만든 로봇학자는 확신을 더해준다. 최초의 4족 보행 로봇이지만 이 로봇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계단, 문턱, 좁은 골목 등 인간에게는 사소하고도 자연스러운 장애물들이다.

소피아와 4족 보행 로봇 사례는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무시하고 있는 인간의 적응력이 여전히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인간이 세상의 주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공지능은 프로그램 된 학습으로 바둑을 이길 수 있지만, 수세미를 쓰고 밥풀을 긁어내는 등 다양한 적용이 필요한 접시닦이일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은 바로 이런 인간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오바마 대통령이 강조한 뒤 우리 사회에 화제가 되었던 코딩 교육이 2018년부터 중학 과정에서 의무 과정이 되었다.

▲ I ROBOT - 내 아이가 살아갈 로봇 세상 ⓒ sbs


코딩 조기 교육보다 중요한 것

컴퓨터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코딩. 중학 과정에서 의무가 돼 34시간을 이수해야만 한다. 34시간은 중학교 전체 과정에서 1%에 불과한 시간. 현장에서 가르치는 김현석 선생은 1주일에 한 시간 가르치는 방식의 코딩 교육은 결국 또 한 과목의 국영수가 될 뿐이라 비관한다. 그러나 현장의 비관과 다르게 유치원에서 부터 코딩교육은 붐을 이루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

결국 또 하나의 선행학습이 되어가고 있는 코딩교육 붐에 대해 다큐는 방향을 정정한다.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아빠의 샌드위치 코딩 교육이 그 예다. 동영상 속 아빠는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아이와 학습한다. 아이가 써준 매뉴얼에 따라 샌드위치를 만들어보는 아빠. 그러나 아이의 어설픈 요리 매뉴얼에 번번이 실패한다.

▲ I ROBOT - 내 아이가 살아갈 로봇 세상 ⓒ sbs


코딩의 코자도 꺼내지 않는 코딩교육. 이것이야 말로 생활 속에서 실행하는 진짜배기 4차산업 시대의 교육이라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의 관건은 문제 해결 능력과 체계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논리력이라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떤 상황이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이라고 다큐는 결론 내린다.

우리 시대의 4차 산업혁명은 화두이자 딜레마다. 비감했던 기존의 4차 산업혁명 다큐와 달리 < SBS 스페셜 - I ROBOT : 내 아이가 살아갈 로봇 세상>은 인간을 낙관한다. 그러나 그 낙관은 잘 준비된 자의 몫이다. 가장 자연스럽고 인간의 적응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만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을 키워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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