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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가족이 본 <1987> "끝나고 일어날 수 없었다"

"사실대로 만들어진 영화"... 단순한 영화로만 기억되지 않길 바라

등록|2018.01.09 15:34 수정|2018.01.09 15:34

▲ 지난해 1월 13일 경남 양산 성전암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의 30주기 추도식에서 누나 박은숙(56)씨가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고 있다. ⓒ 정민규


기자가 박종철 열사의 가족들을 만난 건 딱 1년 전 이맘때였다. 박종철 열사의 서른 번째 추도식이 있던 경남 양산의 성전암이란 사찰에서였다. 30년이 흘렀지만 가족들은 20대에 멈춰선 박 열사의 영정을 바라보다가 얼굴을 파묻었다.

그날 기자는 누나 박은숙(56)씨에게 만약 박종철 열사가 살아 있었다면 어떻게 지냈을 거 같으냐고 물었다. 박씨는 "매 주말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을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잘못된 권력을 향한 분노의 촛불이 매주 전국의 거리에서 타오를 때였다. 

바로 그 주말 부산 서면 중앙대로를 가득 메운 1만 명의 시민 틈에서 박종철 열사의 가족을 다시 만났다.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 박정기씨도 휠체어를 탄 채 촛불을 들었다. 시민들은 1분 동안 촛불을 내려 놓고 박종철을 추모했다.

박은숙씨가 무대에 올랐다. "아마도 네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함께 감격에 겨워 이 촛불광장에서 민주주의를 돌려 달라고 마음껏 소리질렀을 거야"라고 눈물을 흘리며 말한 박씨는 "되살아난 너와 함께 희망을 노래하고 싶단다"라고 소원했다.

박종철 열사 누나는 <1987> 어떻게 봤을까?

▲ 지난해 1월 13일 경남 양산 성전암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의 30주기 추도식에서 어머니 정차순(86)씨가 아들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 정민규


1년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국민은 정권을 교체했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촉발한 6월 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도 다시 만들어져 주목받고 있다. 바로 그 영화 <1987>을 박씨의 가족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오랜만에 박은숙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박정기(91)씨와 어머니 정차순(86)씨는 고령과 희미해진 기억으로 말을 나누기가 어려웠다. 아버지 박씨는 지난해 겨울 쓰러지며 요추 골절상을 입어 현재까지 온전하게 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거동이 불편한 두 어르신은 아들을 다룬 영화도 그래서 보지 못했다.

영화를 어떻게 보았냐는 기자의 말이 떨어지자 누나 박씨가 "아..."하며 뜸을 들였다. "가슴이 먹먹하죠"라고 입을 뗀 박씨는 "어떻게 그 시절을 버텨 왔는지 모르겠다"고 회상했다. 31년 전 가족들은 죄인 취급을 받았다고 했다. 박은숙씨는 "종철이가 간첩이라도 되는 거처럼 가족까지 죄인으로 취급했다"면서 "시신도 소동을 부려서 겨우 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가족들은 <1987>을 시사회에서 배우들과 함께 먼저 볼 수 있었다. 박씨는 "영화가 사실 그대로 만들어졌다"라고 했다. 박은숙씨는 "마지막 철이가 고문 당하다 죽는 모습을 보고 그 충격에 우리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영화가 끝난 뒤 다들 일어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영화 끝난 뒤 일어날 수 없었다"

▲ 지난해 1월 14일 저녁 서면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11차 부산시국대회에서 박종철 열사의 누나인 박은숙(56)씨가 눈물을 흘리며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 정민규


하필 왜 내 동생이었을까하는 생각은 없었을까. 박씨는 "종철이 외에도 많은 학생이 고문을 받았다"면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고, 그게 결국 내 가족의 일이 되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통화 중 언성이 높아졌을 때도 있었다. 바로 전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보수 정부가 밝힌 것"이라고 말한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을 이야기할 때였다. 박씨는 "자유한국당과 그 추종자들이 군데군데에서 태극기를 앞장세우고 궤변을 토하고 있다"면서 "박종철 고문치사는 자기들이 죽인 사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씨는 우리 사회가 다시는 역사를 되돌려서 안 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래야만 동생이 바친 목숨이 그나마 가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박은숙씨는 <1987>이 단순한 영화로서만 기억되지 않기를 바랐다. 인터뷰 끝자락 박씨는 "이렇게 기억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기자에게 전했다. 이 말은 단지 기자에게만 건네는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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