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 강력했던 커피
100% 믹스커피가 준 선물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집에 온 손님에게 인사처럼 '커피 한 잔'을 권하던 때가 있었다. 주로 인스턴트 믹스커피다. 프림에 사용되는 경화유지는 가공과정을 통해 대부분 포화지방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자주 마시면 콜레스테롤을 높인다는 논란이 있기도 하다. 그래도 어쩌다 먹게 되는 믹스커피는 내 오랜 그리움의 맛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의도에 있는 무역회사를 들어갔다. 그곳에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커피를 타는 일이었다. 경리부 미스 미라는 내 또래 여직원이 탕비실 찬장을 열고 메모해서 붙여놓은 글을 보여주며 말했다.
"김 과장님은 커피 둘에 설탕 둘 프림 하나, 이 대리님은 커피 하나에 설탕만 두 개..."
메모지에는 회장을 비롯해서 사장 부장 과장 대리 일반 평직원인 남성들의 이름이 모두 써 있었다. 출근하면 회사의 모든 남성들 취향대로 나와 미스 미는 매일 모닝커피를 탔다. 당시 40대의 사장이 유화물감처럼 탁한 커피믹스 취향이었다면 60대 초반의 회장은 프림없이 커피와 반 스푼의 설탕만 넣은 아메리카노 스타일이었다는 걸 기억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20대의 한 때를 잠시 방황했다. 서울 삼각지와 남영동 언저리를 헤매다 그림을 그리겠다고 찾아간 화실에서 나는 정사각형의 네모난 믹스커피를 처음 맛보았다. 화실에는 미술대를 준비하는 입시생과 취미, 혹은 미술대전을 목표로 그림을 그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나는 그저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캔버스 앞에서 무모한 붓질을 하고 있었다. 그림 속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마시던 한 잔의 커피믹스는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의 경계에 서 있는 나를 잠시 마주하는 시간이 되었다. 네모의 자줏빛 비닐포장에 인쇄된 '맥스* 커피믹스'. 그 맛을 떠올리면 지금도 화실의 테레핀 송진냄새가 코에 먼저 감돈다.
요즘은 교회의 모임이나 회식 등이 있을 때 밥을 먹고 카페에 가서 따로 차 한 잔으로 마무리 할 때가 있다. 커피 한 잔 값이 웬만한 밥 한 끼 값과 거의 맞먹기도 한다. 카페마다 커피 맛이 달라 선호하는 카페도 제 각각이다.
얼마 전, '가족모임'이란 이름으로 열 식구가 모였다. 2년 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중심으로 모였던 가족들이 소식을 나누고 살자는 의미에서 여성들(작은시누, 큰시누, 나와 아랫동서, 막내동서) 생일 위주로 모이기로 했다.
어머니가 계실 때는 남녀노소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명절이면 서로 얼굴을 봤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뜸해지긴 했다. 어머니 슬하 6남매 중, 시숙네만 서울에 계셔서 5남매의 부부가 모인 것이다. 모두 대전에 살다가 막내 시동생이 세종으로 이사를 해서 우리는 밥을 먹고 커피는 막내네 집에 가서 하기로 했다.
"나, 이런 거 말고 믹스커피 줘봐~"
"어머, 우리 집에 믹스커피는 없는데."
막내동서가 꽤 괜찮은 커피를 대접하겠다고 정성껏 내린 커피를 내오자 누군가 믹스커피를 찾았다.
오랜만에 5남매의 부부들이 모이니 할 얘기가 쏟아져 나온다. 그러다 최근 청주에 사시는 시댁의 작은 외숙모님이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퇴원한 얘기를 했다. 우린 오늘 아니면 갈 시간이 안 된다 하여 모두 청주로 향했다. 작은 외숙모님은 어머니의 작은올케이다.
20대 후반, 결혼하기 전 대전에 인사하러 왔을 때 장차 시어머니가 될 분 옆에서 작은 외숙모님은 당신의 타고난 유머와 재치로 어색한 자리를 재밌는 분위기로 만드셨다. 어머니와 작은 외숙모, 두 분은 시누와 올케로 관계가 무척이나 애틋했다.
어머니는 생전 작은 외숙모를 만나러 청주에 가실 때마다 여행의 기쁨을 만끽하셨다. 그 기쁨 뒤에는 어머니의 막냇동생(작은 외삼촌)의 각별한 애정이 있었다.
"아이고,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혀. 119는 생각도 안 나. 그래도 옆집에 우덜보다 좀 젊은 사람들이 사니께 그 짝으로 막 달려갔지. 여기 신고 좀 해달라구 말여. 어휴 마누라 갔으면 나는 안 돼, 못살어~"
작은 외삼촌이 기력 없고 눈빛이 흐려진 작은 외숙모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사건 당일'을 얘기하셨다. 그 순간은 아직도 아찔하다며 목소리가 떨렸다. 작은 외숙모님 입가에 연한 미소가 머무는가 싶더니 못내 안쓰러운 표정이 되었다. 그 표정을 감추기라도 하듯 작은 외숙모가 방안에 둘러 앉아있는 우리에게 말했다.
"니들 커피 한 잔씩 햐~, 저 짝에 가서 머릿수대로 타와 봐."
그러자 내 옆의 아랫동서와 막내동서가 냉큼 일어나 주방으로 나갔다.
"아, 나는 커피가 좀... 오기 전에도 먹고 왔는데..."
"마셔, 오늘 이 커피는 다 마셔야 돼. 작은 외숙모님 선물이야!"
막내 시동생이 커피에 이견이 있는 듯, 중얼거리면서 말했다. 그러자 막내의 바로 형인 아래 시동생이 강력하게 못을 박았다.
"어여 마셔. 하루 한 잔은 치매에도 좋댜~. 난 하루에 꼭 두 잔은 마신다. 이게 비타민이여. 피부도 고와진다구, 허허허"
내년이면 구순에 접어드는 동갑내기 부부, 풀기가 다 빠진 노부부는 서로에게 믹스커피를 권했다. 먼저 갈 뻔했던 작은외숙모가 커피 한 모금을 천천히 마셨다. 작은 외삼촌은 작은 외숙모가 당신 옆에 있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다행이다 싶어 가슴을 쓸어냈단다.
"먼저 가기만 해봐, 내가 가만 안 있을거여~"
"그럼 어떡혀?"
"가서 끄집어 와야지 머~"
80대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외삼촌과 작은 외숙모, 그리고 70대부터 60대 50대가 모두 섞인 한 방의 열두 명은 웃으면서 설탕 한 톨 빼지 않은 온전히 100프로의 달달한 믹스커피를 홀짝였다.
'치매예방과 비타민, 피부가 고와지는' 믹스커피는 그동안 마셔왔던 그 어떤 믹스커피보다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내 인생의 커피가 되었다.
집에 온 손님에게 인사처럼 '커피 한 잔'을 권하던 때가 있었다. 주로 인스턴트 믹스커피다. 프림에 사용되는 경화유지는 가공과정을 통해 대부분 포화지방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자주 마시면 콜레스테롤을 높인다는 논란이 있기도 하다. 그래도 어쩌다 먹게 되는 믹스커피는 내 오랜 그리움의 맛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의도에 있는 무역회사를 들어갔다. 그곳에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커피를 타는 일이었다. 경리부 미스 미라는 내 또래 여직원이 탕비실 찬장을 열고 메모해서 붙여놓은 글을 보여주며 말했다.
"김 과장님은 커피 둘에 설탕 둘 프림 하나, 이 대리님은 커피 하나에 설탕만 두 개..."
메모지에는 회장을 비롯해서 사장 부장 과장 대리 일반 평직원인 남성들의 이름이 모두 써 있었다. 출근하면 회사의 모든 남성들 취향대로 나와 미스 미는 매일 모닝커피를 탔다. 당시 40대의 사장이 유화물감처럼 탁한 커피믹스 취향이었다면 60대 초반의 회장은 프림없이 커피와 반 스푼의 설탕만 넣은 아메리카노 스타일이었다는 걸 기억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20대의 한 때를 잠시 방황했다. 서울 삼각지와 남영동 언저리를 헤매다 그림을 그리겠다고 찾아간 화실에서 나는 정사각형의 네모난 믹스커피를 처음 맛보았다. 화실에는 미술대를 준비하는 입시생과 취미, 혹은 미술대전을 목표로 그림을 그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나는 그저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캔버스 앞에서 무모한 붓질을 하고 있었다. 그림 속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마시던 한 잔의 커피믹스는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의 경계에 서 있는 나를 잠시 마주하는 시간이 되었다. 네모의 자줏빛 비닐포장에 인쇄된 '맥스* 커피믹스'. 그 맛을 떠올리면 지금도 화실의 테레핀 송진냄새가 코에 먼저 감돈다.
요즘은 교회의 모임이나 회식 등이 있을 때 밥을 먹고 카페에 가서 따로 차 한 잔으로 마무리 할 때가 있다. 커피 한 잔 값이 웬만한 밥 한 끼 값과 거의 맞먹기도 한다. 카페마다 커피 맛이 달라 선호하는 카페도 제 각각이다.
▲ 한 상에 둘러앉은 가족모임. ⓒ 한미숙
얼마 전, '가족모임'이란 이름으로 열 식구가 모였다. 2년 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중심으로 모였던 가족들이 소식을 나누고 살자는 의미에서 여성들(작은시누, 큰시누, 나와 아랫동서, 막내동서) 생일 위주로 모이기로 했다.
어머니가 계실 때는 남녀노소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명절이면 서로 얼굴을 봤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뜸해지긴 했다. 어머니 슬하 6남매 중, 시숙네만 서울에 계셔서 5남매의 부부가 모인 것이다. 모두 대전에 살다가 막내 시동생이 세종으로 이사를 해서 우리는 밥을 먹고 커피는 막내네 집에 가서 하기로 했다.
▲ 가족이 모인 자리, 감사기도! ⓒ 한미숙
"나, 이런 거 말고 믹스커피 줘봐~"
"어머, 우리 집에 믹스커피는 없는데."
막내동서가 꽤 괜찮은 커피를 대접하겠다고 정성껏 내린 커피를 내오자 누군가 믹스커피를 찾았다.
오랜만에 5남매의 부부들이 모이니 할 얘기가 쏟아져 나온다. 그러다 최근 청주에 사시는 시댁의 작은 외숙모님이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퇴원한 얘기를 했다. 우린 오늘 아니면 갈 시간이 안 된다 하여 모두 청주로 향했다. 작은 외숙모님은 어머니의 작은올케이다.
20대 후반, 결혼하기 전 대전에 인사하러 왔을 때 장차 시어머니가 될 분 옆에서 작은 외숙모님은 당신의 타고난 유머와 재치로 어색한 자리를 재밌는 분위기로 만드셨다. 어머니와 작은 외숙모, 두 분은 시누와 올케로 관계가 무척이나 애틋했다.
어머니는 생전 작은 외숙모를 만나러 청주에 가실 때마다 여행의 기쁨을 만끽하셨다. 그 기쁨 뒤에는 어머니의 막냇동생(작은 외삼촌)의 각별한 애정이 있었다.
"아이고,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혀. 119는 생각도 안 나. 그래도 옆집에 우덜보다 좀 젊은 사람들이 사니께 그 짝으로 막 달려갔지. 여기 신고 좀 해달라구 말여. 어휴 마누라 갔으면 나는 안 돼, 못살어~"
작은 외삼촌이 기력 없고 눈빛이 흐려진 작은 외숙모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사건 당일'을 얘기하셨다. 그 순간은 아직도 아찔하다며 목소리가 떨렸다. 작은 외숙모님 입가에 연한 미소가 머무는가 싶더니 못내 안쓰러운 표정이 되었다. 그 표정을 감추기라도 하듯 작은 외숙모가 방안에 둘러 앉아있는 우리에게 말했다.
"니들 커피 한 잔씩 햐~, 저 짝에 가서 머릿수대로 타와 봐."
그러자 내 옆의 아랫동서와 막내동서가 냉큼 일어나 주방으로 나갔다.
"아, 나는 커피가 좀... 오기 전에도 먹고 왔는데..."
"마셔, 오늘 이 커피는 다 마셔야 돼. 작은 외숙모님 선물이야!"
막내 시동생이 커피에 이견이 있는 듯, 중얼거리면서 말했다. 그러자 막내의 바로 형인 아래 시동생이 강력하게 못을 박았다.
"어여 마셔. 하루 한 잔은 치매에도 좋댜~. 난 하루에 꼭 두 잔은 마신다. 이게 비타민이여. 피부도 고와진다구, 허허허"
내년이면 구순에 접어드는 동갑내기 부부, 풀기가 다 빠진 노부부는 서로에게 믹스커피를 권했다. 먼저 갈 뻔했던 작은외숙모가 커피 한 모금을 천천히 마셨다. 작은 외삼촌은 작은 외숙모가 당신 옆에 있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다행이다 싶어 가슴을 쓸어냈단다.
"먼저 가기만 해봐, 내가 가만 안 있을거여~"
"그럼 어떡혀?"
"가서 끄집어 와야지 머~"
80대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외삼촌과 작은 외숙모, 그리고 70대부터 60대 50대가 모두 섞인 한 방의 열두 명은 웃으면서 설탕 한 톨 빼지 않은 온전히 100프로의 달달한 믹스커피를 홀짝였다.
'치매예방과 비타민, 피부가 고와지는' 믹스커피는 그동안 마셔왔던 그 어떤 믹스커피보다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내 인생의 커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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