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광고' 낸 지지자가 사생팬? 뜻도 모르면서...
[게릴라칼럼] '문재인 대통령 생일 축하 광고'를 둘러싼 풍경 몇 가지
▲ 12일 방송된 SBS <8시 뉴스>의 한 장면. ⓒ SBS
"같이 축하하는 거니까 훈훈한 분위기가 나는데요? 정치적으로 안 바라보셔도 될 거 같아요." (김경민/서울 서초구)
"그만큼 대통령이 존경받고 있다는 거고. 성의껏 하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요. 막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지." (진효철/중국 산동성)
"무슨 짓을 하는지 잘 이해가 안 가요. 잘생긴 사람은 맞는데, 연예인하고는 다른 사람 아니에요?" (광고 게재에 부정적인 시민)
12일 SBS <8 뉴스>는 <'문 대통령 생일 축하' 광고 두고…"훈훈해" VS "지나쳐"> 리포트를 내보내며 위와 같은 시민 반응을 전했다. <8 뉴스>는 "'대한민국에 달이 뜬 날', 오는 24일, 문재인 대통령의 생일을 맞아 지지자들이 만든 광고입니다"라며 "광화문, 여의도 등 서울 지하철역 10곳에서 볼 수 있고 QR 코드를 찍으면 생일까지 남은 시간이 나타납니다"라고 보도했다.
SBS가 전한대로,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직 대통령의 생일 축하 광고가 흔히 '아이돌' 그룹의 팬들이 자비를 들여 게재하는 지하철 광고판에 등장한 것은 전례가 없다.
이 같은 전례 없는 광고를 접하는 시민들의 반응은 소셜미디어에서도 대동소이했다. 출범 6개월이 넘도록 70% 전후의 지지율을 유지 중인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반영한다거나, 아이돌 못지않은 '문재인 팬덤'의 활발한 활동을 입증하는 사례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관제데모'가 동원된 소위 '박근혜 팬덤'의 활동과는 방법과 양태가 천지차이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들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정치권에서 특히 그랬다. 그러나, 비판 지점의 번지수가 잘못돼도 한참이나 잘못됐다. "사생팬" 운운한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대표적이다.
"사생팬" 운운한 김성태 원내 대표, 그 뜻은 아는 걸까
▲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달 24일 문재인 대통령 생신인가 보다. 일찌감치 저도 축하드린다.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통령 생신 축하드리는 것까지 좋은데, 지하철은 시민의 공기이고 지하철 광고판은 공공의 정보를 소통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안타까운 죽음과 그리고 소외취약계층들의 엄동설한 삶의 어려운 현장을 덮어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생신축하 광고가 서울지하철 역사 내에 소통하는 공간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정말 대한민국 미래와 대통령 인기영합정치는 언제 끝날지 우려를 금치 못한다. 다시 한 번 생신을 미리 축하 드리만 이제는 사생팬들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의 대통령이 되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12일 자유한국당 원내 대책회의에서 나온 김성태 원내대표의 발언이다(관련 기사 : 문재인 대통령 생일 축하 광고에 김성태 "사생팬 대통령"). 제천화재참사 조사결과 발표와 박상기 법무부장관의 가상화폐 관련 발언을 두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던 김 원내대표는 뜬금없이 문 대통령의 생일을 거론하며 지하철 광고를 걸고 넘어진 것이다.
안타깝게도, 김 원내대표의 지적은 여러모로 방향타가 어긋나 보인다. 여러 상업광고들이 판을 치는 지하철 광고판을 두고 "시민의 공기"이자 "공공의 정보판을 소통하는 것"이라고 규정한 것부터가 추상적이기 그지없다. 김 원내대표가 근래 들어 대중교통을 얼마나 이용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많은 안타까운 죽음과 그리고 소외취약계층들의 엄동설한 삶의 어려운 현장을 덮어두고"라고 한 지적 역시, 왜, 어째서 "우려를 금치 못하"겠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정부가 삶의 어려운 현장을 돌아보지 않는 다는 것인지, 구의역 참사와 같이 "대한민국의 안타까운 죽음"이 지하철에서 이뤄진다는 것인지, 지하철이 "소외취약계층"만 이용한다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전형적인 딴지 걸기라 할 만하다.
걸작은 역시나 "사생팬들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의 대통령이 되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한 발언이다. 한 번 묻자. 김 대표는 '사생팬'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기는 한지 말이다. 개인의 사생활을 범죄 수준으로 침범, 종종 '스토커'로 불리며 팬덤 문화에서도 배척받는 '사생팬'과 지하철 광고가 어떻게 같은 수준에 놓일 수 있는지 그 잣대가 신기할 따름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를 가지고 기이한 딴지를 걸 시간에, 김 원내대표는 "공약대로 실천하면 나라 망한다"던 최근 '망언'이나 수습할 일이다. 허나 김 원내대표의 비판은 어쩌면 약과일지 모른다. 이번 축하 광고를 두고 '우상화'나 '주체사상' 운운하는 이들도 나왔기 때문이다. 고성국 TV조선 해설위원과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가 그 주인공이다.
'우상화' 논리, 번짓수가 틀렸다
▲ 11일 서울 5호선 광화문역에 걸린 문재인 대통령 생일 축하 광고. 이 광고는 "문재인 대통령을 응원하는 평범한 여성들"이라고 밝힌 지지자들이 마련한 것이다. ⓒ 권우성
"일종의 정치 행위다.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팬덤정치, 노무현 대통령 생전에 노무현 대통령 중심으로 간 게 있고,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가 자제를 했던 적이 있다. 개인을 우상화 시키는 건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먼저 자제시켰던 부분이 있다."
지난 11일 고성국 TV조선 해설위원은 <TV쇼>에 출연해 이번 생일 축하 광고를 두고 이렇게 평했다. 여지없이 고 노무현 대통령을 언급하는 동시에 '팬덤정치', '개인의 우상화'로 연결 지은 것이다. 더군다나, 노무현 대통령이 "먼저 자제시켰다"면서 문 대통령 역시 그래야 한다는 뉘앙스를 비추기까지 했다. 헌데, 고성국 위원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기는 한 걸까.
고성국 위원이야말로 대표적인 '친박', '친박근혜' 평론가 아니었던가. 그는 과거 2012년 박사모 등 박근혜 팬클럽의 초청 강연에 나서서 물의를 빚고 방송에서 하차한 전력의 소유자인 동시에 박근혜 정부 들어 공영방송 KBS 입성을 두고 KBS 새노조의 반발을 샀던 인물이기도 했다.
특히 고 위원은 박근혜 정부가 대놓고 압박을 가한 것으로 드러난 tvN에서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고성국의 빨간의자>라는 토크쇼를 조기대선 직전인 작년 4월까지 진행한 바 있다. 한국 정치 평론계에서 유례없는 '팬덤평론'의 창시자인 동시에 '친박' 성향으로 tvN과 같은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로 발탁된 것 아니냐는 눈길을 받았던 그가 고작 지하철 광고를 두고 고 노무현 대통령을 거론하며 '팬덤정치', '우상화'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자체가 어불성설이요, <TV조선>에서나 가능한 발언이라 할 만 하다. 적어도 고 위원이 '정치평론'을 계속하려면 사과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본인 스스로가 '팬덤정치'에 적극 부응했으며, 국정농단 사태는 물론 수많은 '불법' 행위로 구속·수감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정치평론가'라면, 게다가 다시 TV에서 '정치평론'을 하려고 한다면, 최소한 사과부터 하는 게 먼저 아니겠는가.
1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상화'를 넘어 "김일성 주체 사항의 영향"이라 주장한 김문수 전 지사의 경우는 상징하는 바가 더욱 크다. 김 지사는 "북한에는 3만여 개의 김일성 동상이 있다고 한다"며 "남한에는 위대한 촛불 혁명 대통령 '이니(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 문 대통령을 부르는 애칭)'의 생일 축하 영상과 방송을 널리 오랫동안 울려 퍼지게 할 지어다"라고 썼다.
본인의 낡은, 편협한 세계관을 그대로 드러내는 비교 글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에도 눈겨여 볼 점은 존재한다. 김 지사가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결정돼 있던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까지도 기어이 취소시켰지 않습니까?" 그 대신 문재인 대통령 자신의 취임 기념우표는 발행했지요?"라고 한 대목이다. 본인 스스로가 한국에서 행해진 '우상화'가 무엇인지, 그 비교 잣대가 얼마나 뒤틀렸는지, 김성태 원내대표와 같이 팩트 자체가 잘못됐는지를 드러내는 결정적 한 마디랄까.
<조선일보> 옥외전광판 속 '문재인 생일축하 광고', 볼 수 있을까
먼저,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는 전임 대통령들이 으레 해왔던 행사다. 비교 대상이 아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정부가 발행을 취소한 박정희 100주년 기념우표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오히려, 소셜미디어 상에서는 구미시를 비롯해 여러 지자체가 천문학적인 액수를 들여 강행했거나 강행하려고 했던 '박정희 기념사업'이 재조명되고 있는 중이다. 지지자들이 자발적으로 사비를 들여 진행한 지하철 광고가 '우상화'가 아니라 수백억의 혈세가 들어간 '박정희 기념사업'이야말로 '우상화'라는 논리다. '사생팬' 논리도 코미디지만, '우상화'야말로 견강부회라는 지적이 빗발치는 이유다.
이번 지하철 광고를 '노무현 팬덤'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아이돌 문화에서 차용한 지하철 생일축하 광고는 지지자들이 스스로를 건강하고 '포지티브'한 지지 세력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인 동시에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등에 업은 채 긍정적인 이미지를 어필, 좀 더 넓은 지지층을 확보하는 데 일조하겠다는 진화된 정치 행위의 일종이라 할 만하다.
이미 이러한 포지티브한 행위들은 '이니 굿즈' 등을 통해 그 진화상이 증명되지 않았는가. 팬덤의 활동도 그러하다. 지난 2008년 미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에서 증명됐듯, 팬덤이 가진 긍정적이고 자발적인 활력이 실제 선거전에 미친 영향은 오바마의 당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는 이미 정설에 가깝다. 그 반대편엔 아마도 '관제데모'와 '가짜뉴스'로 점철된 '박근혜 팬덤'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 12일, 한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 옥외전광판에 문재인 대통령 생일 축하 광고 게재를 추진하겠다는 사용자가 나타나 화제를 모았다. 이 사용자는 <조선일보> 관련 담당자와의 문의 통화 내용을 공개하며, "OK 사인이 떨어졌다", "20초 분량 100회", "10분마다 1번씩", "부가세 포함 77만 원"이라고 구체적인 조건까지 제시했다.
지금이 그런 시대다. '우상화'나 '주체사상' 운운하는 '꼰대'들의 '망상'이나 진영논리와는 달리, 자유분방하게, 기존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정치를 향유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시대 말이다. 곧 <조선일보> 옥외전광판에서 문 대통령의 생일 축하 광고를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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