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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회장은 권력자 아냐" 황당한 한화의 해명

[TV리뷰] SBS <그것이 알고싶다>, 김승연 회장 수감생활 의혹 추적

등록|2018.01.14 17:31 수정|2018.01.14 17:33

▲ 한화그룹 최선목 홍보실장은 1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해 재벌 회장이 권력자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 SBS




"재벌 회장이 그렇게 권력자는 아니라고 봐요. 그런 수감 과정에 있어서 실제로 의학적으로 판단이 되고 의사들도 자기 의사면허를 걸고 진단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한화그룹 최선목 홍보실장이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아래 <그알>) 취재진에게 밝힌 입장이다. 이 말 속에서 재벌의 오만이 묻어난다.

일단 방송 내용부터 짚어보자. <그알>은 13일 오후 방송된 '회장님의 이상한 수감생활' 편을 통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수감생활을 추적했다. 김 회장은 부실 계열사를 부당 지원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로 기소돼 지난 2012년 8월 서울서부지법으로부터 징역 4년, 벌금 50억 원의 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

그러나 김 회장이 구치소에 수감된 기간은 4개월에 불과했다. 그는 2012년 12월 우울증과 호흡곤란을 이유로 서울 보라매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김 회장은 하루 이용료 100만 원인 병원 특실에서 1년 3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법원은 2013년 1월 구속집행정지결정을 내렸다. 이후 법원은 그해 3월, 5월, 8월, 11월 등 네 차례에 걸쳐 구속집행 정지를 결정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4년 2월 김 회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한화 그룹 규모를 따져볼 때, 그의 배임·횡령은 회사는 물론 우리 경제에도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런 김 회장의 실질적 수감기간이 4개월에 불과했고, 1년 3개월을 병원 특실에서 보냈다는 사실은 상식과 괴리가 있어 보인다.

법원, 김 회장에게 은전 베푼 것 아닌가?

▲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2012년 8월 구속 수감됐으나 그가 구치소에서 보낸 시간은 4개월에 불과했다. ⓒ SBS


<그알> '회장님의 이상한 수감생활' 편을 보면서 사법부 개혁이 시급하다는 점을 절감한다. 구속집행정지는 필요한 제도 중 하나다. 문제는 운영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교정 시설에 수감됐다면 처우는 불편부당해야 한다. 그러나 실태는 달랐다.

김 회장의 구속집행정지를 건의한 장본인은 남부구치소장이었다. 구치소장이 구속집행정지를 건의할 수는 있다. 단, 재소자가 연고자가 없을 경우에 한해서다. 김 회장은 엄연히 가족도 있고, 회사에 그의 신병만을 전담할 담당자도 임명할 위치에 있었다. 그럼에도 구치소장이 직접 구속집행정지를 건의한 것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강변했다.

"사회에서는 이해를 못하는데 저희들은 이해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런 것을 다 감내를 잘 하죠. 감내를 잘 하는데 지위가 높아져 있는 사람일수록 감내를 못합니다. 절대 못합니다."

이 말을 다시 풀이하면, 고위층에 있는 사람일수록 수감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몸에 이상이 생긴다는 말이다. 교정시설의 책임자가 했을 거라고는 믿기지 않는 말이다. <그알> 취재진이 접촉한 수감자 역시 구치소장의 말에 아연실색했다.

더 큰 문제는 법원이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병으로 수감생활을 할 수 없다는 김 회장 측의 주장을 네 차례나 수용했다. <그알> 취재진은 의료진이 법원에 낸 소견서를 전문의들에게 전달해 자문을 구했다. 그 결과 소견서 곳곳에 허점이 발견됐다. 더구나 2013년 1월 구속집행정지 결정 이후 작성된 소견서엔 '알츠하이머형 치매/초기 치매' 소견이 적혀 있었으나 2014년 2월 집행유예 결정이 내려진 이후 소견이 빠진 사실도 발견했다.

법원이 의료진이 낸 소견을 면밀하게 들여다 봤다면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법원이 김 회장에게 은전을 베풀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통계가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한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이 <그알> 취재진에게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김 회장이 풀려나던 2013년, 구속집행정지를 제기한 2만6716명의 재소자 가운데 484명만 집행정지 결정을 받아냈다. 전체의 1.8%에 불과한 수치다. 법원이 극히 일부에게만 구속집행정지처분을 내렸다는 의혹이 이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박주민 의원은 <그알>에 출연해 이 같이 말했다.

"구속집행정지라는 제도는 필요한 제도에요. 구속을 해놓고 나서 뭔가 사정변화가 생긴다거나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면 편의를 봐줄 필요는 있겠죠. 그러나 적용되는 실태를 볼 때 굉장히 불공정하게 적용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거죠."

기울어진 저울추, 바로 잡는 게 적폐청산

▲ 김승연 회장의 구속집행정지를 요청했던 남부구치소장은 김 회장에게 특혜를 준 점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 SBS


저울추가 기울어져 있다면, 기울어진 저울추엔 힘 있는 자들이 속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재벌 회장이 특히 그렇다. 지난 2007년 삼성의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자신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이렇게 적었다.

"민병훈 부장판사(현 변호사)가 진행한 삼성 1심 재판이 끝난 뒤, 나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 주류의 질서가 정말 튼튼하구나' 하고 느꼈다고 말했다.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들이 보이지 않는 그물망으로 단단하게 묶여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그물을 쥐고 있는 것은 재벌이다. 이게 현실이다. 그리고 이런 질서는 너무 안정적이어서 바깥에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바뀌지 않는다."

김 변호사가 삼성그룹 비리를 폭로했던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재벌의 힘은 막강하다. 재벌회장이면 회사에 수천억 원대의 손실을 떠넘겼어도 병실에서 1년 3개월 동안 요양생활을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재벌 회장이 그렇게 권력자는 아니라고 본다'는 한화그룹 최선목 홍보실장의 말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최 홍보실장은 김회 장의 특혜 의혹에 대해 "법원하고 의사들의 여러 가지 결정과 판단, 이런 것들을 다 부정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즉, 의료진과 법원이 '정당한' 판단을 내렸다는 말이다.

결국 재벌개혁은 재벌개혁에 그치지 않는다. 사법부 개혁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 언론도 빼놓을 수 없다. 보수 언론, 특히 경제신문들은 재벌회장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경제를 들먹이며 재벌회장 구명운동을 펼친다. 이 같은 보도 태도는 현재 진행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김 회장의 의혹을 정면 제기한 <그알>과 독립언론 <뉴스타파>의 보도는 큰 의미가 있다.

지난해 새정부 출범 이후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법부라고 예외일 수 없다. 사법부가 재벌회장에 우호적인 한 적폐청산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재벌의 돈다발에 사법부의 저울추가 기울어지는 일만큼은 바로 잡자. 이게 바로 적폐청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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