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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섹스 파업을 일으킨 고대 그리스 여자들

[문학의 숲에서 온 편지2] 아리스토파네스의 <뤼시스트라테> 희곡

등록|2018.01.19 17:02 수정|2018.01.19 17:02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파업이 있습니다. 당장 국내 뉴스만 훑어봐도 하루가 멀다 하고 다양한 파업 관련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그만큼 파업은 중요한 사회적 행위이지요. 하지만 세상에나. 섹스 파업은 들어본 적이 없으시겠지요?

오늘은 동맹 섹스 파업에 돌입했던 여자들의 이야기들 들려드릴까 합니다. 그것도 전쟁 중에 적국의 여자들과 함께 파업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리스 희극 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가 쓴 작품인 <뤼시스트라테 (Lysistrata)>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2> 책 표지 ⓒ 숲


작품을 쓴 시기는 아테네 동맹과 스파르타 동맹이 주도권을 놓고 겨뤘던 펠로폰네소스 전쟁 (BC 431 ~ 404)의 후반인 기원전 411년입니다. 기원전 411년에 아테네 인들에게는 심각한 위기감이 감돌았습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원정을 간 134척의 배와 5000명의 중장보병 및 1500명의 경보병으로 구성된 아테네 군대가 패배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아테네 시민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당시 참혹한 상항에 대해 김진경씨의 글을 인용합니다.

병이나 부상으로 죽은 자의 시체가 같은 장소에 첩첩이 쌓였으며 그 악취와 기아와 갈증 때문에 그야말로 생지옥이 70일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들에게는 하루 한 잔의 물과 한 줌의 밀만이 주어졌다. 다른 포로들은 노예로 팔렸으나 아테네 일들은 6개월이나 더 방치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영광과 몰락/김진경)
시칠리아 원정에서 몰살당한 아테네군 소식에 시민들은 어땠을까요? 승전의 희망을 갖고 더 강력히 힘을 모아 싸우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겠지만, 반전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스파르타와 타협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전쟁 중에 전쟁을 반대하는 희극을 상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뤼시스트라테>는 이러한 염원이 반영된 작품입니다.

<뤼시스트라테>는 '아카르나이 구역민들'과 '평화'에 이어 아리스토파네스의 이른바 전쟁 희극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남자들이 전쟁을 종식시킬 가망이 없어 보이자, 아테네 여자 뤼시스트라테는 여자들이 평화조약 체결을 이끌어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지혜로운 여자가 생각한 두 가지 방법은 첫째는 남편이나 애인과의 섹스를 거부하는 섹스 파업, 둘째는 파르테논 신전에 적립해 놓은 전쟁 기금을 쓸 수 없도록 (돈이 있으면 전쟁이 계속되기 십상이니까요.)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뤼시스트라테는 적국인 스파르타와 테바이 여인들을 한데 소집하여 동맹 섹스 파업을 결의하게 되는 것이지요. 과연 파업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그리고 에우리피데스 세 명의 그리스 비극 작가들의 작품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메데이아', '아가멤논' 같은 작품들을 읽어 보셨거나 적어도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에 반해 희극 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데요. 저도 이번에 처음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아리스토파네스를 읽게 된 계기는 2017.10.30일자 한겨레 신문 기사였어요. 기사에 따르면,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위가 밝히길,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미화했다며 문체부가 연극 <개구리> 대본까지 고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구리> 원작자인 아리스토파네스를 찾아 보게 된 것이지요.

<아리스토파네스>(천병희 역)에 따르면, 아리스토파네스(BC 446~385)는 공동체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실명으로 무차별 인신공격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구름' 속에서는 소크라테스를 현학적인 소피스트로 비하하였고, 당시 계몽주의자였던 에우리피데스를 '개구리' 작품 속에서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뤼시스트라테>는 아주 재미있는 코미디입니다. 읽는 내내 웃음짓게 되실 텐데요. 파업을 결의하는 여자들의 소동(전쟁을 막기 위해선 뭐라도 하겠다고 호언장담 하다가 그게 섹스를 금하는 거라니까 못하겠다고 아우성입니다), 코러스 남자 노인들과 여자 노파들의 대립과 화해, 파업 성공을 위해 남편을 따돌리는 여인의 지혜, 당시 성 문화 등 여러 가지를 해학적으로 보여줍니다. 처음 뤼시스트라테가 파업의 방법을 제안하지 반응이 이렇습니다.

뤼시스트라테: 앞으로 우리는 남근을 삼가야 해요.
(여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면서 몇 명은 떠나려고 돌아선다.)
왜들 돌아서는 거죠? 어디로 가려는 거죠? (중략)
칼로니케: 난 못해요. 전쟁이야 계속되든 말든.
뮈르니에: 제우스에 맹세코, 나도 못해요. 전쟁이야 계속되는 말든
이렇게 섹스를 금하는 것은 어림없다는 여자들에게, 적국 스파르타 여자가 나섭니다. "여자가 남근 없이 혼자 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그렇다 해도 우리에겐 평화가 필요해요." 여자들은 파업 결의를 하고 아크로폴리스에 점령하러 몰려갑니다. 여자들의 파업이 시작되자 남자 노인들이 분기탱천하여 나섭니다.

노인 코러스: 원 참. 오래 살다 보니 별별 희한한 일도 다 있구나.
이봐. 스트뤼모도로스. 누가 이런 말을 들으리라
생각이나 했겠나! 우리가 먹여 기른 여자들이,
집 안의 명백한 악(惡)인 여자들이
신성한 여신상을 차지하고
우리의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하고
빗장과 자물쇠로
문을 걸어 잠갔다니 말일세!
파업을 모의한 여자들을 전부 불태워 죽이자며 기세 등등한 남자 노인들. 그러나 불을 피우고는 피어 오르는 연기에도 힘들어 하는 나약하고 힘 빠진 노인들일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파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됩니다. 여느 파업 현장처럼 장기화될수록 이탈자가 생겨나지만, 평화를 열망하는 여자들의 연대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결국 남자들이 휴전 조약을 맺게 되지요.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커지는가 싶더니, 남북 고위급 회담이 성공리에 개최되어 팽팽하던 긴장이 좀 누그러졌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의 대결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 정치의 역학 속에서 언제 어떻게 위기감이 고조될지 알 수 없습니다.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을 정치권에만 맡겨둘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깨어있는 시민들의 강력한 반전 평화 의지가 절실합니다. 미세먼지로 외출이나 야외 활동이 어려운 요즘 같은 날에, 이 작품을 읽으며 한껏 웃어보시기 바랍니다. 고대 그리스 여자들의 지혜로운 섹스 파업 이야기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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