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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파이 좋아하던 북한사람 생각나... 평창올림픽 기간 중 방북 신청할 것"

[내가 본 평창①]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장

등록|2018.01.30 12:05 수정|2018.01.30 12:12
"동계 스포츠에 대한 전 세계인의 공감을 연결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모든 세대가 참여할 수 있으며..."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슬로건 '하나된 열정(Passion Connected)'의 의미를 이 같이 설명합니다. <오마이뉴스>는 평창을 바라보는 경기장 밖 수많은 열정들을 소개합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하나된 공간에 모여 평창올림픽이 너, 나, 우리 모두의 올림픽이 되길 기원합니다. [편집자말]

▲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장. ⓒ 개성공단기업협회


"정말 기대 밖이었죠."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올해 첫날을 떠올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날 신 회장은 자신의 회사가 있는 충남 예산의 가야산을 오르고 있었다.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알려진 산이다.

새해 첫날, '신년에는 모든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야산을 찾았던 신 회장은 하산 도중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평소 알던 기자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를 발표했는데, 앞으로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전해온 것이다(관련기사 : "평창 올림픽 돕는 건 응당한 일... 북남 당국 시급히 만날 수 있을 것").

"(북한이) 그렇게까지 할 거라곤 생각 못했어요. 우리도 곧장 대응하고, 북쪽에서 다시 대응하고... 결국 9일에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잖아요. 열흘도 안 돼서 지난 10여 년을 뛰어넘는 전기가 마련된 겁니다."

경의선 육로로 도착한 현송월 단장평창 동계올림픽 북측 예술단 사전점검단을 이끄는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21일 오전 경의선 육로를 통해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한 뒤 이상민 정부합동지원단 국장과 악수하고 있다. ⓒ 통일부제공


개성공단 문이 닫힌 지 2년. 그 동안 기업들은 여러 차례 방북을 신청했으나 단 한 차례도 개성공단에 가지 못했다. 공장에 두고 온 제품과 자재가 어떤 상태로 남아있는지 한번만이라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절절하다.

이런 상황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이란 기회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지난 17일 서울 영등포구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신 회장은 "우리나라가 올림픽과 참 인연이 많은 것 같다"라며 옅은 미소를 내보였다.

"이제 70년 굴레 벗어던져야"


신 회장은 대뜸 "굴렁쇠 소년, 그 정도의 나이이신가요?"라며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굴렁쇠 소년'이 잠실주경기장에 굴렁쇠를 굴리며 등장하던 모습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기자가 "딱 1988년생입니다"라고 답하자, 신 회장은 "아주 중요할 때 태어났네요"라며 말을 이어갔다.

"당시 노태우 정부였거든요. 군사정권이라고 해서 데모도 많이 했을 땐데, 그 정부에서 올림픽 전에 전격적으로 북방정책을 시행했어요. 직전 하계올림픽이 1984년 LA올림픽이었고, 그 전이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이었잖아요? 둘 다 반쪽짜리 올림픽이 되고 말았죠. 한창 냉전시대일 때라 동서가 갈라져 있었기 때문에, '너네가 올림픽 하면 우리는 안 가'라는 식이었죠."

의도가 어땠든 당시 노태우 정부는 올림픽에 사활을 걸었고, '반쪽 올림픽' 딱지가 붙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이 직접 "참가하는 모든 국가 선수와 임원의 안전을 보장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소련 등 동구권 국가의 참여를 호소했다. 신 회장이 말한 북방정책은 그런 맥락에서 시작됐다.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이야기했지만, 서울올림픽 당시 국민소득이라고 해봐야 2500달러였습니다. 근데 북방정책과 올림픽을 계기로 30년 만에 3만달러를 바라보는 시대가 됐잖아요. 그 동안 정권이 바뀌고 최근 개성공단까지 폐쇄돼 버렸지만 어쨌든 서울올림픽이 남북관계 개선과 그에 따른 경제발전에 기폭제가 된 겁니다."

신 회장은 "개성공단은 물론 남북관계가 다 막힌 상태에서 30년 만에 다시 올림픽을 치르게 됐다"라며 "서울올림픽을 거울삼아 평창올림픽을 다시 점프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북한이란 변수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 지난 2007년 3월 개성공단에서 북한 여성노동자들이 신발을 제작하고 있다. ⓒ 권우성


"북한을 활용하지 못하면 한강의 기적은 여기서 끝나 버립니다. 우리의 행복도 마찬가지죠. 평창올림픽을 토대로 한강의 기적을 넘어 대동강의 기적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이제 좀 70년의 굴레를 벗어던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신 회장은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등에 비난의 화살을 던지는 일부 야권 및 보수 세력을 향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데, 남 탓만 하고 있으면 국가적으로도 큰 마이너스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북방으로 문을 열어야 한다는 건 노태우 정부부터 30년 동안 줄곧 이어져왔던 겁니다. 색깔만 조금 달랐지 기조는 다 같았어요.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DMZ 세계평화공원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평창올림픽에 비난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은 모두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 거죠. 평창올림픽도, 개성공단도 그 의미를 생각해야지 고정관념으로 폄하해선 안 됩니다."

"주경기장에 개성공단 홍보관 연다"

신 회장은 개성공단 폐쇄 후 지난 2년을 "길게 느껴지지 않은 시간"이라고 떠올렸다. 그는 "2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모든 기업이 그야말로 경영 정상화를 위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다"라며 "때문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2년을 보냈다"라고 토로했다.

▲ 2008년 11월 28일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물품을 실은 차량들이 경의선도로를 통해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다. 도로 위로 개성공단이 보이며, 경의선도로주변에는 개성공단 전기 공급을 위한 송전탑이 세워져 있다. ⓒ 권우성


개성공단 물품 챙겨주는 출입사무소 직원정부가 개성공단 전원 철수를 결정한 뒤 첫날인 지난 2013년 4월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입주업체의 물품을 가득 싣고온 차량에서 짐이 떨어지자, 출입사무소 직원이 차량 운전자와 함께 짐을 옮기고 있다. ⓒ 유성호


개성공단기업협회가 정부에 제출한 피해 규모는 대략 1조 5000억원이었다. 피해 규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문재인 정부의 추가지원금 660억원을 합하더라도, 그 동안 개성공단 기업에게 지급된 지원금 규모는 피해액의 1/3 정도에 그친다. 그만큼 지난 2년은 그들에게 "정신없는" 시간이었고,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관계 해빙은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신 회장은 평창올림픽 기간 동안 세 가지 일을 계획하고 있다. 하나는 주경기장에 개성공단 홍보관을 여는 것이고, 둘은 직접 응원단이 되는 것이며, 셋은 다시 방북을 신청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만큼은 꼭 방북이 허용돼 개성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올림픽 기간 중) 우리가 개성도 가고, 쌍방으로 교류도 있어야 올림픽을 향한 기대도 높아지고 올림픽 성공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올림픽 이후에도 우리가 개성을 다녀온 것과 안 다녀온 것에 큰 차이가 있을 거예요. 방북은 남북 모두 승인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것 자체가 (남북이 관계 회복을 위해) 운을 뗐다는 것이고, 올림픽 이후 속도를 내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이어 신 회장은 "우리가 이번 올림픽을 잘 치러야 하는 건 국가적 대명제가 됐다"라며 "개성공단기업협회도 우리의 요구를 천방지축으로 하지 않고 국가의 이익이 무엇인지 고려하며 접근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인터뷰 말미, 신 회장은 "초코파이" 이야기를 꺼냈다. 초코파이는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들에게 최고 인기 간식이었다.

"(개성공단 입주 후) 처음 1, 2년은 말 그대로 서로 벌레 보듯이 했었거든요. 우리도 평생 교육을 그렇게 받아 와서... 그런데 지나고 나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말은 안 해도 무언의 표정에서 나름의 정을 느꼈죠.

뭐니 뭐니 해도 초코파이 하나를 더 주네, 덜 주네로 실랑이했던 때가 생각나네요. 지금도 눈에 아련해요. 먼 친척의 이름과 얼굴은 생각 안 나도, 개성공단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납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 그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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