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잡지 멸종 시대'에 창간 예고, 이 잡지에 기대를 건다
[하성태의 사이드뷰] 3월 창간 예고한 새 영화비평잡지 'FILO'를 소개하며
▲ <FILO>가 텀블벅 페이지에서 소개한 한국의 영화잡지들. ⓒ FILO
"신문지 접기 놀이를 아시나요. 지난 10년간 영화 잡지를 만들며 내내 그 신문지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몇몇은 폐간, 몇몇은 수년이 지나도록 '잠정 휴간' 상태입니다. 그래도 영화인들과 영화로 이야기하는 나날이 좋아, 좁아져 가는 지면 위에서 부둥켜안고 버텼습니다. 이제 영화 곁에 다르게 설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인가 봅니다. 여전히 영화는 거기 있으니까요. 늘 감사했습니다. 다시 만나요, 우리."
지난달 12월 22일 244호를 끝으로 폐간한 <매거진 M>의 한 기자는 이런 마지막 소감을 남겼다. 그의 말처럼, 영화는, 한국 영화는 여전히 거기에 있지만 영화잡지들의 설 자리는 지금도 한없이 협소해지고 있다. 앞서 2009년 주간지 <FILM2.0>이 폐간된 이래 같은 해 <프리미어>가 사라졌고, 가장 대중적이라 여겨졌던 <무비위크>도 2013년 폐간했다.
"최근 격주간지 <매거진M>은 예고대로 7호부터 주간지로 발행을 바꾸었다. 하지만 <무비위크>의 기자들이 참여했을 뿐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무비위크>를 보던 독자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다. <무비위크>의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110 페이지 분량의 <무비위크>를 보다가 50 페이지 분량의 <매거진M>을 보면 "2000원이 아깝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매거진 M> 설명회에 다녀온 영화 마케터들의 반응도 미지근하다. 특별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랬던 <매거진 M>은 '뉴스 한 줄' 나지 않을 만큼 쓸쓸하게 퇴장하고 말았다. 적어도, <필름2.0>이나 <프리미어>, <무비위크> 등 일종의 선배잡지들이 사라졌던 '그때'는 폐간이 '뉴스'가 되던 시절이었다. 그 이후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영화뉴스'를 둘러싼 매체 환경의 변화속도는 급격했고,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 무료 뉴스를 비롯해 스마트폰의 상용화와 함께 팟캐스트, 유투브, 그리고 '씨네토크' 등 다채로운 플랫폼의 등장과 채널의 변화는 치명타였다.
그만큼 무료 '영화뉴스'가 인터넷을 점령하고 스마트폰 어플로 유통되는 지금, '유료'이자 '오프라인' 영화잡지들의 '멸종'은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형국이다. 2000년대 무섭게 경쟁했던 유료 영화잡지, 주간지들은 이제 <씨네21>와 <맥스무비> 뿐이다. 그리고, 2018년 1월 새로운 형태의 영화잡지 혹은 평론지가 창간을 선언했다. "'영화'를 뜻하는 'film'과 '어떤 것을 좋아하는'이란 뜻의 'philo-'"를 합친 제목의 <FILO>가 그 주인공이다.
'FILM' + 'philo' = <FILO>
▲ 창간 준비 중인 <FILO>의 참고용 시안. <FILO> 측은 "위 이미지는 참고용 시안이며 최종 표지는 작업중입니다"라고 밝혔다. ⓒ FILO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쓸 때 어떤 감정을 느낍니까?"내 대답. "불안과 행복."무엇보다도 영화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기억을 다루는 것이다. …그것은 내게서 사라져 가는 시간과 남아 있는 시간 사이에서 오가는 불안과 행복 사이의 경기장이다.- 정성일,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책머리에 중
<FILO>의 '텀블벅' 페이지 소개 글에 등장하는 정성일 평론가의 글이다. 마치 그러한 '영화읽기'의 '불안과 행복'을 전염시키겠다는 듯, 3월 초 창간호 발매를 예고한 <FILO>는 '영화잡지' 멸종의 시대에 출현한 격월간 '영화비평잡지'다. 최근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고 프로젝트 비용 모금을 위한 텀블벅 페이지를 통해 프로젝트의 전모를 공개했다.
우선 필진의 면면이 영화 팬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키노> 편집장 출신 영화평론가이지 영화감독인 정성일 평론가를 필두로 정한석, 남다은, 이후경, 허문영 평론가가 국내 고정 필진으로 참여한다. 호주의 영화평론가인 에이드리언 마틴과 일본의 영화감독인 스와 노부히로는 해외필진으로 이름을 올렸다. <FILO> 측은 신인필진 김병규와 함께 "매호 다양한 해외, 신인필진과 함께합니다"라고 밝혔다.
또 <FILO>는 편집 방향으로 ▲ 특집과 기획이 없고 ▲ 1부와 2부가 있고 ▲ 고정 코너는 없고 자유 연재는 있다, 는 세 가지를 방향을 천명했다. 각각 "필자들이 지지하는 각각의 영화를 동등하게 사랑하려 한다", "1부에는 우리와 같은 시대에 공존하고 있는 영화들에 대한 감상과 사유를, 2부에는 동시대 영화의 경계를 넘어 영화에 관한 다양한 시선과 통찰을 담을 것", "정해진 코너와 분량을 채우기 위해 아무 영화에게나 구애하고 싶지 않다"는 설명이다.
오는 3월 5일부터 격월간 발간을 예고한 <FILO>는 텀블벅을 통해 '14,400,000원'을 목표로 오는 2월 20일까지 출판 비용을 모금 중이다. 21일 오후 3시 415명이 후원했고, 현재 17,926,302원을 모금, 목표액의 124%를 달성하며 호응을 얻고 있다.
"<FLILO>와 함께 영화를 다시 사랑해보는 건 어떤가요?"
▲ <FILO>가 소개한 창간호 목차. ⓒ FILO
"좋은 영화, 중요한 영화, 특별한 영화가 곧잘 조용히 사라져버리는 요즘, 그런 영화들에 글과 사랑을 아끼지 않는 유일한 잡지가 되고자 합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소중한 영화들에 바쳐질 페이퍼 매거진으로서 책이 주는 기분 좋은 무게감, 종이의 질감이 주는 차분함, 정돈된 글이 주는 명쾌함이 영화와의 더욱 특별한 만남을 선사하리라 믿습니다."
'영화 정보의 홍수'라는 표현은 이미 2000년대에 유행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대결구도였다. 그리고 2010년대, '그 많던 영화잡지는 어디로 사라졌을까?'란 질문과 함께 영화기자들은 어디론가 흩어졌고, '영화잡지'가 맡던 역할을 TV가, 팟캐스트가, 유투브가, 그리고 씨네토크가 나눠하고 있다.
영화 담론을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던 '(영화) 전문가의 시대'에서 다채로운 플랫폼을 통해 영화 정보를 향유하고 나누는 '공유의 시대', '정보의 시대'로 변화를 맞았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하여,
<FILO>는 텀블벅 페이지에서 이렇게 물었다.
"<FLILO>와 함께 영화를 다시 사랑해보는 건 어떤가요?"
<FILO>의 창간 소식이 전해진 후 소셜미디어 상에서는 남다른 호응이 이어지는 중이다. 1990년대 영화광 세대에게는 묘한 향수를, 2010년대 새로운 관객층에게는 좀 더 깊이 있고 무게감 있는 영화 담론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다. 남다른 '영화 사랑'을 고백하며 창간을 선언한 <FILO>가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관심있게 지켜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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