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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을 받아들일 때 일어나는 일

[리뷰] 아서 프랭크 지음 <아픈 몸을 살다>

등록|2018.01.30 20:10 수정|2018.01.31 08:20
질병에 대한 사회 인식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사람들은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몸과 마음을 관리한다. 운동, 음식 조절, 스트레스 관리와 같은 나름의 노력을 하고 그런 노력들이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아픈 몸을 살다>의 저자 아서 프랭크도 그랬다. 그는 달리기, 철인 3종 경기 등을 해왔고 그것들 덕분에 건강을 유지해왔다고 믿었다. 우리는 정말 몸을 통제할 수 있을까?

▲ <아픈 몸을 살다> ⓒ 봄날의책


건강한 몸을 가지는 것이 개인의 노력과 의지에 달려있다는 생각은, 건강하지 않은 개인을 자기관리능력이 부족한 문제적 존재로 만든다. 그래서 아프다는 것은 곧 무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어느새 건강도 능력이 되었다. 질병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라 몸을 제대로 통제하고 관리하지 못해서이다. 개인에게 발병에 대한 책임이 전가된다. 심지어는 아픈 사람도 평소에 운동을 안 했다거나, 스트레스 관리를 못했다는 식으로 스스로에게 발병의 원인을 찾는다. 그래야만 병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건강한 사람들은 질환이 '그냥 생기지' 않는다고 믿고 싶어 한다. 자신이 건강을 통제할 수 있으며 자신이 노력해서 건강을 얻었다고 믿고 싶어 한다. (중략) 너무도 많은 사람이 아픈 사람에게 원인을 돌리면서 쉽게 균열을 봉합한다. 아픈 사람에게 암을 부르는 성격이 있다고 믿을 때, 아픈 사람 이외의 모두에게 세계는 덜 취약하고 덜 위험해진다. 아픈 사람조차 병이 그냥 생겼다기보다는 자신이 무언가 잘못해서 생겼다고 믿기도 한다. 불확실성보다는 죄책감이 더 편할 수도 있는 것이다."(175-176)


건강한 몸이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질병을 가진 사람은 비정상이 된다. 그들은 생산성이 떨어지고 비효율적인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경계 밖으로 밀려난다. 여기에 병이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더해져 질병의 발병뿐 아니라 치료의 책임까지 아픈 사람에게 전가된다.

자연스럽게 질병을 가진 사람은 치료를 삶의 최우선적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질병을 치료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니다. 질병을 치료하는 일은 중요하다. 다만 질병이 제거된 상태에만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질병의 치료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루저로 만든다.

다음이나 네이버에는 환우 카페가 넘쳐난다. 아픈 사람들은 그곳에서 병에 대한, 의사에 대한, 치료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그곳에서는 질병에 대한 극복 서사가 환영받는다. 질병을 이겨내고 정상적 삶으로 복귀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언젠가는 나의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질병을 치료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는 중요하다. 하지만 아픈 몸을 가진, 질병의 현 상태가 문제적인 것으로만 인식되면 아프고 병든 현재의 삶은 무의미하고 가치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어떤 질병은 만성으로 남아있거나 죽음이 결말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질병의 극복이 이상적인 결말이 될 수는 없다.

질병에 대한 극복의 서사에 매몰되지 않을 때 질병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 아픈 몸을 살아내는 사람들에게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아서 프랭크는 질병의 극복보다는 "새롭게 되기(9쪽)"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서 프랭크는 현대의학의 전문성이 '아픈 몸'을 대상화한다고 보았다. 의사들은 생리학적으로 접근하면서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측정 가능한 지표들을 가지고 설명한다. 즉 질병을 환자의 몸으로부터 분리하여 객관화한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질병을 자신의 몸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

또한 그는 질환(disease)과 질병(illness)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질환은 측정 가능한 몸의 상태로부터 파생된 객관화된 대상이지만, 질병은 "질환을 앓으면서 살아가는 경험(28)"이라고 보았다. 즉 질병은 환자의 주관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경험이며, 병을 치료하는 과정은 고장 난 기계를 고치는 것과는 다르다. 질병은 결코 환자와 분리될 수 없다.

그는 심장마비와 암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아픈 경험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질병은 이전의 삶에서 누렸던 것들을 잃게 한다. 건강한 상태일 때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등산과 같은 일들을 불가능하게 하고, 체력의 급격한 저하를 가져와서 친구들과의 관계를 축소시키기도 한다. 그뿐인가, 언제 갑자기 통증이 찾아올지 모르는 아픈 몸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을 무의미하게도 만든다. 어떤 질병이든 질병은 나름의 상실을 가져온다.
"캐시와 내가 삶에 걸었던 순진한 기대도 사라졌다. 일을 하며 이런저런 것들을 성취하고, 아이들을 낳아 자라는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과 경험을 나누고, 우리 부부가 함께 늙어가리라는 기대가 평범해 보이던 때도 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음을 안다. 삶은 예측할 수 없다. 무엇이 기대할 수 있는 평범한 일인지, 캐시와 나는 이제 잘 모르겠다. 삶에 거는 순진한 기대를 잃었다는 것이 이 질병을 겪으며 얻은 수확으로 보일 날이 언젠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상실로 느껴진다."(66)
그런데도 전문가들은 질병으로 겪게 되는 삶의 변화는 사소한 것으로, 혹은 쓸데없는 것으로 여기곤 한다. 중요한 것은 치료이므로 질병으로 달라진 삶에 재빨리 적응하고 모드를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질병은 대상화할 수 없는 존재의 일부이기 때문에, 질병으로 인한 삶에서의 상실을 먼지 털듯이 털어낼 수 없다. 아서 프랭크는 그때까지 자기 자신과 함께 살아온 몸의 일부와 헤어지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보았으며, 충분히 애도한 후에야 질병으로 인한 상실과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너머의 새로운 삶을 바라볼 수 있다고 보았다.
"전문가들은 적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나는 애도가 '긍정하는 일'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싶다. 질병이나 죽음 때문에 사라진 것을 애도하는 일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긍정한다. (중략) 이렇게 충분히 애도한 후에야 한 사람은 상실을 통과하여 다른 편에 있는 삶을 발견할 수 있다."(68-69)
아서 프랭크는 그동안 부정되었던 상태인 "아픈 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그것은 현재 아픈, 과거에 아팠던, 그리고 언제가 아프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몸을 부정하지 않도록 이끈다. 또 건강한 몸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아픈 몸의 경험 속에서만 배울 수 있는 존재에 대한 성찰을 공유한다. 아프다는 것은 취약하다는 것이며, 취약함을 받아들이는 경험은 삶을 의지대로 통제할 수 없음을 수용하는 과정이다. 그것을 통해서 삶에 집착하거나 연연하지 않게(혹은 할 수 없게) 됨으로써 자유를 얻게 된다.
"건강한 사람은 자신이 의지를 발휘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계속 확인하고 증명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건강이 필요하다. 반면 아픈 사람은 자신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자기 의지를 전혀 행사하지 않아도 세계가 이미 완벽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아픈 사람은 자유롭다."(40)
<아픈 몸을 살다>는 병을 내 몸으로부터 추방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완치라는 결과를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병이 낫든 낫지 않든 그 상태로 온전하며, 중요한 것은 "질병의 한가운데서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244)"를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강물 위에 빛나는 햇빛을 소중히 할 수 있을 때, 그래서 그 빛이 거기 계속 비칠 것을 상상하고 믿을 수 있을 때, 나는 이 세계 너머에 속하는 평화를 느끼며 더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내가 사라진 후에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떠 있을 미소를 상상할 수 있을 때, 여기 있어서 행복하다. 하지만 반드시 여기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기쁨은 집착하지 않는 데 있다."(224) 
우리는 현재 아프거나, 과거에 아팠거나, 미래에 아플 수 있으며, 혹은 아픈 몸을 돌보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아픈 몸을 살다>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덧붙이는 글 <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봄날의책,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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