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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미스터리 작가를 위한 법의학 Q&A>

등록|2018.01.26 15:05 수정|2018.01.26 15:05

▲ <미스터리 작가를 위한 법의학 Q&A> 책표지. ⓒ 들녘

주로 밤에 영업하는지라 아침 9시 무렵이면 불이 꺼져 있어야 할 한 노래방이 영업할 때처럼 불이 켜져 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 경찰관에 의해 그곳에서 일하던 여인의 죽음이 발견된다. 왼쪽 가슴 등이 흉기로 찔려 계산대 앞에서 죽은 여인. 타살이 분명했다.

그런데 목격자가 전혀 없는 데다가,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라곤 아마도 범인의 소지품으로 보이는 물건 하나 뿐.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고 만다. 당시 여인에게는 고등학생 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자라 형사가 되는데 어떤 사건을 수사하던 중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잡게 된다.

소설 같은 이 이야기는 2004년에 대구에서 발생, 13년이 지난 지난해(2017년) 12월 범인이 검거된 일명 '대구 노래방 살인 사건'이다. 그렇다면 13년 동안 장기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던 살인 사건의 범인은 어떻게 잡을 수 있었을까? DNA덕분이라고 한다.

지난해 11월, 상해강도죄로 한 용의자를 검거한 경찰이 용의자가 범행 현장 주변에 담배꽁초를 버린 사실을 CCTV로 확인. 담배꽁초에서 확보한 DNA(유전자정보)를 장기미제사건 관련 DNA와 대조, 노래방 살인 사건 현장에서 확보한 DNA와 일치함을 알게 된 것이다.

13년 전의 범행을 완강하게 부인했던 범인은 DNA를 근거로 제시하자 순순히 자백, 다른 범행까지 자백했다고 한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이처럼 사건 현장에서 확보해 보관 중이던 DNA로 오랫동안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던 사건의 범인을 잡았다는 소식이 종종 보도되곤 한다.

얼마 전 해결된 '갱티고개 살인 사건(15년 미제, 2017년 12월 검거)'나 '노원구 주부 살인 사건(18년 미제, 2016년 11월 검거)'은 그 대표적인 사례. 검색창에 'DNA'와 '범인', '검거' 이 세 단어를 관련어로 검색하면 이처럼 DNA로 범인을 검거한 수많은 사례들이 검색된다.

Q. 채취한 DNA 샘플 양이 아주 적어도 활용가능한가요? 말라붙은 침이나 머리카락 한 가닥도 사용할 수 있나요?
A. 샘플에서 DNA를 추출하려면, 그 물건에 반드시 온전할 필요는 없으나 어쨌든 세포가 함유되어 있어야 합니다. 현미경으로 샘플을 살펴보았을 때 눈에 보이는 온전한 세포가 없는 경우에도 DNA가 조작이나 체액의 잔여물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해된 혈액, 체액, 혹은 신체 조직은 여전히 활용 가능한 샘플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해골화 된 유해에도 골수공간이나 뼈의 세포(골세포)에는 사용가능한 DNA가 있을 수 있습니다. 샘플의 크기와 관련해서는, 크기가 클수록 좋긴 하지만 체액이나 조직의 흔적만으로도 결과 산출이 가능합니다. 침은 음료수잔, 물린 자국, (침을 발라 붙인) 우표나 봉투에서 채취할 수 있습니다. 형광분광법을 활용한 새로운 기술은 인간 피부에서 침 잔여물이 묻어 있는 아주 작은 부위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 사망하고 5시간 30분이 지난 후 강간살해를 당한 여성피해자를 강에서 건져 올렸는데, 그 몸에 있던 물린 자국만으로도 DNA 검사에 충분한 침을 얻었다고 합니다. (449~451에서 필요에 의해 부분 발췌)


<미스터리 작가를 위한 법의학 Q&A>(들녘 펴냄)를 통해 알아가는 법의학의 세계는 흥미롭고, 놀랍다. 저자는 40여년 경력의 심장 전문의이자, 미스터리 소설 작가인 D. P. 라일. 미국의 여러 드라마 자문의사로 활동할 정도로 관련 부문 권위 있는 전문가라고 한다.

이 책은 '미스터리 작가들을 위한 블로그'를 운영해 온 저자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에게 법의학 관련 질문들을 공모해 여러 사람들에게 필요하며, 흥미진진한 질문들을 뽑아 답을 제시, 바탕으로 엮었다고 한다. 단답형 답이 아니라 다양한 사례와 관련 지식들을 섞어 들려준다. 그래서 책은 쉽다.

DNA 관련, 책에서 읽은 것을 조금 더 이야기하면, "모든 사람의 DNA 패턴은 어떤 정자가 어떤 난자를 수정시키느냐에 따라 잉태 순간에 결정, DNA는 한 사람의 몸에 있는 모든 세포에는 동일하며 그 사람의 평생 동안 변화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같은 패턴을 갖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일란성 쌍둥이라는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사건 현장에서 모낭 하나만 발견되어도 범인을 잡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피해자의 옷이나 피부에 묻은 가해자의 침 한 방울만으로도 범인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DNA 관련 기술이 발전했다고 한다. 범인을 잡는데 DNA가 절대적으로 유용하게 쓰이는 이유다.

'미스터리 작가를 위한'으로 독자층을 한정하고 있다. 그런데 나처럼 미스터리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위에 언급한 사건들처럼 뉴스를 통해 종종 접하곤 하는 사건을 이해하는데 도움 되는 법의학 지식들은 물론, 알고 있으면 도움 될 의학적 지식(아래 인용처럼)들을 비교적 쉽고 흥미롭게 알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Q.알코올 섭취로 동사를 막을 수 있나요? 알코올이 (한밤 중 얼어붙은 호수의 얼음사이에 빠져 나오지는 못하나 주머니에 브랜디 한 병이 있는 사람의) 생존에 도움이 될까요? 술이 일종의 부동액처럼 작용할까요?
A. (…)추위는 정반대입니다. 신체는 열을 붙들어 두려고 합니다. '방열기'를 통해 손실되는 열을 줄이기 위해 혈액은 피부로부터 먼 곳으로 방향을 돌립니다. 추울 때 사람들이 더 창백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산에서의 고립 등으로) 극단적인 추위에 노출되었을 때 동사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몸을 감싸고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 머물며(공기의 이동은 열기를 더 많이 흡수합니다) 얼음 동굴이나 일종의 땅굴을 팜으로써 주변 기온을 비교적 따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체열이 '고치' 안에 갇히게 되므로 열 손실이 덜 일어납니다. 알코올은 피부의 혈관을 확장시키는데, 이는 혈류를 증가 시키고 따라서 열 손실도 늘어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알코올을 섭취한 이후 얼굴이 상기되죠. 레드와인의 경우에 특히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종류의 알코올 섭취로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추운 환경에서의 알코올 섭취는 바람직한 방향과는 정반대입니다. 알코올은 열 손실을 촉진하기에 동사도 앞당깁니다. 알코올은 인간의 혈류에서 부동액처럼 작용하지 않습니다. - 106~108에서 필요에 의해 부분 발췌)
사실 '법의학자가 알려주는 살해와 상해의 모든 것'이란 부제가 붙어 있고, 부제가 암시하는 것처럼 끔찍한 내용이 좀 많긴 하다. 그런데 500여 쪽짜리 좀 두꺼운 책인데도 놓지 못하고 읽은 흥미진진한 책으로 더 기억될 것 같다. '법의학'이란 섣불리 접할 수 없는 그리 흔하지 않은 소재의 책인 만큼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것들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부검이나 도핑처럼 어떤 뉴스를 볼 때 궁금했던 것들이나, "화장할 때 시체가 움직이기도 한다는데?"나 "시각 장애인들도 시각적인 꿈을 꿀까?"처럼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흔한 궁금함이지만 전문적인 답을 찾기 쉽지 않았던 것들, 그 확실한 답을 들을 수 있어서 뭣보다 좋았다.

외에도 ▲자동차 사고를 당해 비장이 파열되고도 살아남을 수 있나? ▲냉동고에서 생존할 수 시간은? ▲터널 양 끝에서 불이 났는데 그 터널 안에 사람이 있으면 생존할 수 있을까? ▲엑스레이 필름을 복사할 수 있나? ▲인공혈액은 무엇? ▲혈액 도핑은 무엇이며, 어떻게 할까? ▲음식섭취가 알코올 중독을 막을 수 있나? ▲목을 찔린 사람이 말을 할 수 있나? ▲먹으면 사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사람이 계속 생존할 수 있게 하는 약이나 독극물은? ▲화재나 폭발사고로 인해 번질 수 있는 유독성 살충제가 있나? ▲거짓말탐지기를 속이는 게 가능한가요? ▲인간의 피부에서도 지문을 떼어낼 수 있나? ▲부검은 언제 실시되며, 부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은? ▲부검을 통해 임신이나 출산 내력을 알 수 있나? ▲사지절단 환자의 체중은 어떻게 추정? 등, 다소 엉뚱해 보이거나, 드라마 등에서 종종 다루나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는 설정, 뉴스를 통해 접하곤 하는 사건·사고들과 관련된 상황 등 157개의 질문과 답을 11장으로 나눠 들려준다.
덧붙이는 글 <미스터리 작가를 위한 법의학 Q&A>(D. P. 라일) | 강동혁 (옮긴이) | 강다솔 (감수) | 들녘 | 2017-11-30 | 정가: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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