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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 가맹점주보다 '갑질 회장'이 더 안타깝나요?

정우현 미스터피자 회장 '갑질 혐의' 1심 재판 집행유예... '경제' 만능주의 사회

등록|2018.01.27 19:29 수정|2018.01.27 19:30
필자는 이전에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였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프리랜서와 시급제 근로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전에 활동했던 가맹점주협의회 경험을 살려 가맹점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관련 기사를 기고하기도 합니다. - 기자말

▲ '치즈 통행료' 등 갑질 논란과 '보복영업' 혐의를 받고 있는 미스터피자 창업주 정우현 전 엠피(MP)그룹 회장이 지난해 7월 3일 오전 9시17분경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 최윤석


스마트폰에 보이는 현재 기온 '-13도'. 귓전을 거칠게 스치는 겨울바람과 오토바이의 엔진 소음을 뚫고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을 통해 희미하게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렸다. 전화가 연결되자 바람과 오토바이 소음을 이겨내기 위해 전장의 병사처럼 서로에게 소리를 질러대야 했다.

"여보세요!!"
"사-님!! 집-유-"
"뭐라고요!"
"집행유예라고 정우현이 집행유예! 카톡에 관련기사 링크했어 봐봐!"


사무실에서 본 메시지에는 '미스터피자 갑질' 정우현 MP 회장, 1심서 징역3년-집행유예'란 기사 제목이 떠 있었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설던 '오너 리스크'란 단어를 익숙하게 만든 인물, 수많은 프랜차이즈 분쟁 중 언론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며 프랜차이즈 '갑질'의 대명사처럼 인식된 정우현 미스터피자 회장의 1심 재판 결과가 1월 23일에 나왔다.

'지천명'이란 나이인 내가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또 관료 몇 사람이 바뀌었다고 이 나라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충분히 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허탈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허탈은 분노와 배신이란 감정으로 바뀌었다.

필자와 팟캐스트 동반 진행자인 김경무씨는 그동안 한두 차례씩 미스터피자 정우현 회장의 재판 현장을 직접 참관하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재판 현장을 정리하여 팟캐스트로 방송하였기에 그 누구보다도 재판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 측에 의해 제시된 각종 증거는 정우현 회장의 혐의 입증에 충분해 보였다. 심지어 정우현 측 변호사는 검찰 측 증인으로 출두한 정우현씨 측근에게 "검찰에 뭐 꼬투리 잡힌 것 있냐?"라는 다소 황당한 발언을 하기도 했단다. 그래서 우리는 물론 이 재판의 직접 당사자인 미스터피자 가맹점주들 모두 재판 결과에 긍정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상대적 약자인 가맹점주들에게 불가항력적 존재였던 본사 오너에게 한동안 이 사회에서도 희미해졌던 단어인 '사법정의'와 '인과응보'가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1월 23일은 그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날이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법과 윤리를 준수하며 회사를 운영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을 저버렸다"면서도 "토종 피자기업을 살릴 마지막 기회를 빼앗는다면 피고인과 가맹점주에게 가혹한 피해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의 횡령과 배임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피해액이 회복됐고 반성의 기회를 가졌기에 집행유예를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선고 다음 날인 24일 우리는 예정된 '팟캐스트' 녹음을 진행하며 '미스터피자 3대가맹점주협의회 회장'으로 7개월 동안 본사 앞 노상에서 철야로 천막 시위를 하며 분쟁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김진우 점주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어제의 충격에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라는 말로 심경을 토로했다.

"검찰 구형 9년이었으니 적어도 3, 4년의 실형을 받을 줄 알았다. 이전에 집행유예를 4년이나 준 경우가 있었는가?"

"재판부는 다수의 가맹점주들이 제출한 정우현 회장에 대한 선처 탄원서를 감안했다고 하면서 그보다 훨씬 많은 가맹점주들의 엄벌을 요구하는 '진정서'는 왜 전혀 언급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이 사건의 당사자로서 느꼈던 '법감정'에 반하는 판결을 내린 재판부에 대해 상당한 실망감과 분노를 표현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기업 오너들에 범법 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경미한 처벌이 결국 이런 일들이 끊이지 않게 만든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여전히 기업에게만 관대한 사법부의 태도를 꼬집은 것이다.

김진우 점주는 인터뷰 말미 "회장이 감옥에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정의를 세워주길 바라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지금은 실망스럽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낙담했지만, 상고심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경제가 정의를 이긴다면, 서민은 어떻게 살까

▲ 미스터피자 창업주 정우현 MP그룹 회장이 검찰에 소환된 지난해 7월 3일 오전 미스터피자가맹점주협의회가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향후 대응방안 등을 논의 중인 서울 서초구 미스터피자 본사 모습. ⓒ 연합뉴스


프랜차이즈 사업의 특성상 본사와 가맹점주간 '힘의 균형'은 태생적인 한계가 분명하다. 본사 쪽에 일방적으로 쏠린 힘의 균형을 기업이 스스로 맞춰 주길 바라는 건 허황된 바람이다. 어느 미국 드라마에 등장한 적 있는 '전갈과 거북이'의 우화가 이를 대신 설명해줄 수 있다.

이 우화에서 거북이 등 위에 올라타고 강을 건너던 전갈은 자신의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강 한복판에서 거북이를 독침으로 찔러 죽인다. 여기서 전갈을 본사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힘을 가진 기업은 법과 제도로서 어느 정도 통제할 필요가 있다. 이번 판결은 '이윤'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기업에게 '면죄부'를 준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본다.

'카푸친 원숭이' 실험으로 유명한 '도덕성(공정성)에 대한 동물실험'에서도 확인되었듯 영장류인 원숭이는 물론 개조차 불공정한 보상에 화를 내거나 적대적인 행위를 보인다고 한다. 하물며 지성을 가진 인간인 가맹점주는 어떨까. 가맹점주들은 엄동설한에 손발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배달하고 주방에서 하루 12~13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하며, 심지어 가족까지 희생시켜 돈을 번다.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데, 정우현 회장은 동생의 업체를 치즈 유통과정에 끼워 넣어 이익을 얻게 한 불공정 행위를 벌였다. 또 '치즈 통행세' 논란이나 보복 출점 의혹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일부는 무죄를 받았고, 유죄 판단을 받은 부분에서도 '집행유예'로 책임진다. 이처럼 가맹점주들에게 희생만 감수하라는 판결이 나온다면, 가맹점주들을 개나 원숭이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는 것 아닌가. 우리의 분노와 적개심은 무시되는 것인가.

이번 재판을 지켜보고 판결까지 보면서 필자는 문득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가 떠올랐다. 고졸 출신의, 정말 아무 배경도 학벌도 없는 '가정주부' 여주인공이 미스터피자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규모의 대기업 'PG&E'를 대상으로 소송을 벌인다. 중금속 크롬 유출의 피해자인 마을 사람들을 대신해 미국 사상 최대 규모의 배상금을 받아낸 실화다.

내가 여기서 주목한 것은 유명한 법무법인도 아닌 일개 평범한 시민이 주도한 소송에 대한 미국 사법부의 태도다. 그들은 '경제'가 아닌 '사람'에게 주목하고 그 합당한 판결을 내렸다. 보복 출점과 치즈 납품 업체에 압력을 가하는 등 전 가맹점주를 힘들게 한 행위를 지극히 자유로운 '경쟁 활동'의 과정으로 판단하며, '사람'보다 '경제'를 더 우선의 가치로 선택한 우리 사법부와는 너무도 대비된 결과였다.

결국 한동안 '갑질'이란 단어로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미스터피자 정우현 회장'의 1심 판결은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그 어떤 가치보다 '경제'가 우선시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정'과 '공평' 그리고 그것을 아우르는 '도덕'이라는 가치가 너무도 쉽게 무시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 것이다.

특히 판결문에서 "기울어 가는 토종 피자기업을 살릴 마지막 기회를 빼앗는다면 피고인과 가맹점주에게 가혹한 피해를 초래한다"라는 대목은 '도덕과 정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겨야 하는 사법부, 더 나아가 이 사회 전체가 '경제'라는 가치에 얼마나 경도되어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외국은 물론 우리나라 법원 앞에도 설치되어 있는 정의의 여신 '디케' 동상, 한 손에는 칼을 또 다른 한 손에 저울을 들고 있으며 때로는 천으로 눈을 가린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디케'의 눈 가리개는 외부의 영향과 편견을 가린 공평함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눈 가리개에 대한 다른 해석도 있다. 1494년 알브레히트 뒤러의 '정의의 여신'이라는 목판화에선 광대가 여신의 눈을 뒤에서 천으로 가리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당시 사법 기관을 어지럽힌 브로커를 풍자했단다.

최근 라디오에서 들었던 어느 지식인의 인상 깊은 촌철살인이 있다.

"과거에는 권력이 '총칼'을 휘둘렀다면 지금은 '법봉'을 휘두른다."

지금 그 법봉이 자본에 의해 눈이 가려진 채 휘둘러진다면 어떨까. 이 사회에서 가맹점주들과 같은 상대적 약자들은 물론, 부의 척도에 의해 사회 진출 전부터 공정한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현재의 젊은이들은 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에 언급된 인터뷰는 본인이 운영하는 팟캐스트 '인생 가비멀희' 15화에 방송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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