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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받으며 자전거 타기, 이런 기분이구나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정진호 <별과 나>

등록|2018.01.29 09:03 수정|2018.01.29 09:04
빛이 없어야 비로소 보이는 빛이 있다. 주변이 조용할 때 비로소 들리는 풀벌레 소리처럼. (책날개 소개글)


▲ 겉그림 ⓒ 비룡소


서울에서 밤에 등불 없이 자전거를 달린다면 매우 아찔합니다. 오가는 자동차가 아주 많을 뿐 아니라, 길바닥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터라 자칫 크게 다치거나 목숨까지 잃을 수 있어요.

그렇다면 시골은? 시골이라 해서 아무 데에서나 등불 없이 자전거를 달리면 여러모로 아슬아슬합니다. 옛날하고 다르게 오늘날 시골은 빈 농약병이나 술병이 논둑길에 구르기도 하고, 경운기가 지나가며 남긴 흙발자국이 제법 두툼하게 곳곳에 있기 일쑤라, 자칫 논바닥이나 도랑에 처박힐 수 있어요.

시골에서 살며 곧잘 밤자전거를 달립니다. 두 아이를 샛자전거하고 수레에 태워서 슬슬 밤마실을 해 보는데, 일부러 등불을 안 켜고 천천히 달립니다. 늘 오가는 길이더라도 싸목싸목 달립니다. 자동차가 안 지나가는 조용한 시골길이어도 굳이 빨리 달릴 일은 없습니다.

밤에 자전거를 달릴 적에는 아이들한테 하늘을 올려다보라고 말해요. 아버지는 자전거를 달리느라 하늘을 볼 수 없지만, 너희는 우리 시골마을에서 얼마나 별이 쏟아지는가를 밤바람을 가르면서 누려 보라고 이릅니다.

▲ 속그림 ⓒ 비룡소


▲ 속그림 ⓒ 비룡소


그림책 <별과 나>(비룡소 펴냄)를 읽습니다. 글 없이 그림만 새까맣게 흐르는 그림책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밤에 자전거를 달리는데 등불이 망가졌는지 안 켜진다고 합니다. 이때에 이분은 등불 없이 달리기로 합니다.

따지고 보면 밤에 자전거가 등불 없이 달리면 안 됩니다. 이웃나라에서는 자전거에 등불을 안 켜고 밤에 달리면 '자전거 등록 취소'입니다. 자전거도 걷는 사람도 달리는 사람도 모두 아슬아슬한 일이거든요.

그런데 등불 없이 자전거를 달려 볼 수 있다면, 밤에 전깃불빛 아닌 별빛이나 달빛에 기대어 자전거를 달려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새삼스러운 밤빛을 누려요. '등불이 없어도 길을 보네?' 하고 느껴요.

자전거 아닌 두 다리로 걸을 적에도 이와 같아요. 아이들하고 밤에 틈틈이 뒤꼍이나 마을을 슬슬 거닐어 보곤 해요. 아이들은 처음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말하지만, 어느새 "다 보여!" 하고 말하지요. 밤눈을 트고 나면 하늘을 채운 쏟아지는 별빛이 더욱 환하면서 곱습니다.

밤눈을 트기에 별잔치를 누릴 수 있다고 할까요. 밤눈을 뜨기에 새로운 밤빛을 맞이할 수 있는 셈일 테고요.

▲ 속그림. 자전거 등불을 끄고 달리기로 하면서 밤빛이 얼마나 고운가를 새롭게 느끼면서 밤마실을 누린다. ⓒ 최종규


낮에 낮눈을 뜨면서 마주하는 낮빛이란 무지개빛입니다. 밤에 밤눈을 뜨면서 맞이하는 밤빛이란 별빛입니다. 무지개빛은 우리를 둘러싼 겉빛일 수 있고, 별빛은 우리 마음 깊은 자리에 서린 속빛일 수 있어요. 무지개빛이 있어 별빛이 한결 밝으면서 곱고, 별빛이 있으니 무지개빛이 더욱 환하면서 아름답지 싶습니다.

그림책 <별과 나>는 한밤에 등불 없이 자전거를 달리면서 마주하는 온갖 빛이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빛에 둘러싸여서 살아가는가를 보여준다고 할 만합니다. 자전거나 걷는 사람을 헤아리지 않는 기차나 자동차 등불빛 때문에 눈이 따갑습니다. 따가운 빛이 지나가고 나면 밤하늘은 더욱 까마면서 별빛으로 환합니다.

그나저나 이 그림책에는 자전거를 달리는 사람이 나오는데, 꼭 빈틈없이 자전거를 잘 그려야 하지 않습니다만, 조금 더 자전거스럽게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사람을 그릴 적에 팔다리나 머리나 눈코입을 아무 데나 붙이지 않듯이, 자전거를 그릴 적에 바퀴나 손잡이나 깔개나 발판이나 뼈대를 아무 데나 붙이면... 좀 거석합니다.
덧붙이는 글 <별과 나>(정진호 / 비룡소 / 2017.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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