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문장에 녹아 있는 그릇된 역사관
[서평] 오기와라 히로시의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표현력이 탁월하다.
적갈색 기와 때문에 의도한 배색처럼 보이는 파란 하늘, 그리고 물감이 모자라 칠하지 못한 빈자리처럼 보이는 소나기구름이라니. 선명한 여름 하늘이 눈앞에 그려진다.
텔레비전과 장식장과 어항이 놓인 평범한 방을 묘사하는 와중에, 갑자기 열대어 한 마리가 톡 하고 가볍게 움직인다. 송사리와 형광펜이라는 단 두 단어로 열대어가 살아난다.
나는 몇몇 소설가들이 마치 의무라고 생각하면서 페이지를 채우는 데 쓰는 시시껄렁한 사물 묘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미술 취향도 마찬가지여서, 정물화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그냥 갑자기 저런 생생한 묘사로 사람을 놀래키는데 놀라지 않을 재주가 있나. 글에서 그림이 보이는데. 글을 읽다가 갑자기 멈추곤 하면서 오기와라 히로시의 책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를 봤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작가 오기와라 히로시는 영화 <내일의 기억>의 원작 소설을 쓴 사람이라고 한다. 평생 보아온 영화 중에서 최고의 엔딩을 가진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아주 긴 시간 동안 잔잔한 여운이 마음에 남아있게 하는 그런 영화. 소설로도 읽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칭찬은 여기까지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침략전쟁의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추한 민낯이다. 저자는 1956년생. 전쟁에 대해서는 부모 세대가 술자리에서 허풍을 섞어 가며 하던 이야기로나 들었을 세대다. 전쟁 직후에 일본은 가난했지만, 1956년이라면 너무 어려서 기억나지도 않을 거다. 1960년대부터 일본 경제는 이미 승승장구, 위풍당당이었으니까.
역사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일본 작가들이 수도 없이 많다.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를 보면서 불쌍한 남매의 운명에 얼마나 가슴 아파했던가. 그게 저들의 '의도된' 전략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은 직시해야 한다. <반딧불의 묘>에 나오는 남매의 아버지는 1급 전범이다. 살아있었다면 교수형에 처해졌을 것이다. 그 잘난 군함을 타고 얼마나 많은 살육과 파괴를 일삼고 다녔을지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해군 전력이 반 토막이 난 다음에도 육군에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자랑스러운 대일본 해군이다.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보면, 서로 정보 공유를 하지 않는 일본 육해군의 실상이 잘 드러나 있다. 해군이 전멸한 게 언제인데, 육군은 해군지원을 기다리면서 섬에서 버틴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죽어 나가는 것은,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온 학도병들이다.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받지 못했을 거라 추정되는 또 한 사람의 작가, 오기와라 히로시의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로 돌아와 보자. 이 책은 여섯 개의 단편 모음이다. 무려 네 개의 단편에 태평양 전쟁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아련하고 소중한 추억을 이야기하는 듯한 말투다. 아래는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에 나오는 장면이다. 이발소 주인은, 태평양 전쟁 당시 군입대를 위해 머리를 깎으러 온 사람을 회상한다.
침략전쟁을 일으켜 놓고, '나라를 지킨다'는 것이 무슨 의도를 가진 표현인지 알고 싶다. 게다가 'A 또는 B'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잘 보면, 'A 또는 그저 B'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결의는 생각이 있는 행동이고, '그저 회한에 젖어 있는' 것은 생각이 없는 행동이라는 표현이다. 문장력의 귀재인 저자가 '그저'라는 단어를 그저 썼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다른 단편에서도 태평양 전쟁에 대한 회고나 언급이 등장한다. '그 어려운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려고 많은 사람들이 숭고한 희생을 했지' 투의 회고다. 침략 전쟁의 가해자라는 의식은 그야말로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가장 가관인 것은 역시 '멀리서 온 편지'다. 이 단편은 태평양 전쟁이 주제와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정은 뒷전이고 일만 중시하는 남편의 태도를 참다못한 주인공은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온다.
남편이 '당장이라도 갈게. 기다려줘. 미안해'라는 문자를 보내기를 기대했지만, 남편은 '일 끝내고 토요일쯤엔 집에 갈 수 있을 거야'라는 문자를 보낸다. 분노 게이지가 올라간 주인공은 이혼까지 생각한다. 그런데 알 수 없는 문자가 날아오기 시작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괴문자의 내용은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었다. 할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장렬히 죽어가면서도 아내 걱정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남편을 용서한다.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침략자의 적반하장격 태도도 물론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태평양 전쟁에 대한 현재의 일본인, 즉 주인공의 태도다. '나라를 위해 죽기까지 했는데, 이런 문제로 남편을 괴롭히지 말자'는 것이 주인공의 결론이다. 태평양 전쟁은 일본인들에게 여전히 '이루지 못한 대의'인 것이다. 아베가 추진하고 있는 소위 '정상국가화'에 따라 일본이 본격 무장에 나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하얀 벽은 완전히 칙칙하게 변했지만, 적갈색 기와 탓에 파란 하늘 색이 마치 거기다 그런 색을 바르라 주문해놓은 것 같다. 미처 바르지 못해 하얗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소나기구름이 지붕 위에서 양팔을 벌리고 있다. 누군가를 껴안으려는 듯이. (58쪽)
적갈색 기와 때문에 의도한 배색처럼 보이는 파란 하늘, 그리고 물감이 모자라 칠하지 못한 빈자리처럼 보이는 소나기구름이라니. 선명한 여름 하늘이 눈앞에 그려진다.
송사리에 형광펜으로 색칠을 한 듯한 열대어 (165쪽)
텔레비전과 장식장과 어항이 놓인 평범한 방을 묘사하는 와중에, 갑자기 열대어 한 마리가 톡 하고 가볍게 움직인다. 송사리와 형광펜이라는 단 두 단어로 열대어가 살아난다.
나는 몇몇 소설가들이 마치 의무라고 생각하면서 페이지를 채우는 데 쓰는 시시껄렁한 사물 묘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미술 취향도 마찬가지여서, 정물화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그냥 갑자기 저런 생생한 묘사로 사람을 놀래키는데 놀라지 않을 재주가 있나. 글에서 그림이 보이는데. 글을 읽다가 갑자기 멈추곤 하면서 오기와라 히로시의 책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를 봤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작가 오기와라 히로시는 영화 <내일의 기억>의 원작 소설을 쓴 사람이라고 한다. 평생 보아온 영화 중에서 최고의 엔딩을 가진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아주 긴 시간 동안 잔잔한 여운이 마음에 남아있게 하는 그런 영화. 소설로도 읽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칭찬은 여기까지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침략전쟁의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추한 민낯이다. 저자는 1956년생. 전쟁에 대해서는 부모 세대가 술자리에서 허풍을 섞어 가며 하던 이야기로나 들었을 세대다. 전쟁 직후에 일본은 가난했지만, 1956년이라면 너무 어려서 기억나지도 않을 거다. 1960년대부터 일본 경제는 이미 승승장구, 위풍당당이었으니까.
역사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일본 작가들이 수도 없이 많다.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를 보면서 불쌍한 남매의 운명에 얼마나 가슴 아파했던가. 그게 저들의 '의도된' 전략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은 직시해야 한다. <반딧불의 묘>에 나오는 남매의 아버지는 1급 전범이다. 살아있었다면 교수형에 처해졌을 것이다. 그 잘난 군함을 타고 얼마나 많은 살육과 파괴를 일삼고 다녔을지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해군 전력이 반 토막이 난 다음에도 육군에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자랑스러운 대일본 해군이다.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보면, 서로 정보 공유를 하지 않는 일본 육해군의 실상이 잘 드러나 있다. 해군이 전멸한 게 언제인데, 육군은 해군지원을 기다리면서 섬에서 버틴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죽어 나가는 것은,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온 학도병들이다.
▲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표지 ⓒ 알에이치코리아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받지 못했을 거라 추정되는 또 한 사람의 작가, 오기와라 히로시의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로 돌아와 보자. 이 책은 여섯 개의 단편 모음이다. 무려 네 개의 단편에 태평양 전쟁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아련하고 소중한 추억을 이야기하는 듯한 말투다. 아래는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에 나오는 장면이다. 이발소 주인은, 태평양 전쟁 당시 군입대를 위해 머리를 깎으러 온 사람을 회상한다.
거울 속에 보이던 그 남자의 긴장한 얼굴이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리는군요. 나라를 지키겠다는 결의를 굳히고 있었는지, 그저 회한에 젖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요. (111쪽)
침략전쟁을 일으켜 놓고, '나라를 지킨다'는 것이 무슨 의도를 가진 표현인지 알고 싶다. 게다가 'A 또는 B'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잘 보면, 'A 또는 그저 B'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결의는 생각이 있는 행동이고, '그저 회한에 젖어 있는' 것은 생각이 없는 행동이라는 표현이다. 문장력의 귀재인 저자가 '그저'라는 단어를 그저 썼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다른 단편에서도 태평양 전쟁에 대한 회고나 언급이 등장한다. '그 어려운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려고 많은 사람들이 숭고한 희생을 했지' 투의 회고다. 침략 전쟁의 가해자라는 의식은 그야말로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가장 가관인 것은 역시 '멀리서 온 편지'다. 이 단편은 태평양 전쟁이 주제와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정은 뒷전이고 일만 중시하는 남편의 태도를 참다못한 주인공은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온다.
남편이 '당장이라도 갈게. 기다려줘. 미안해'라는 문자를 보내기를 기대했지만, 남편은 '일 끝내고 토요일쯤엔 집에 갈 수 있을 거야'라는 문자를 보낸다. 분노 게이지가 올라간 주인공은 이혼까지 생각한다. 그런데 알 수 없는 문자가 날아오기 시작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괴문자의 내용은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었다. 할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장렬히 죽어가면서도 아내 걱정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남편을 용서한다.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이번이 마지막 소식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은 사나이의 본분이라 생각하면서도 당신과 아직 보지 못한 아이만 생각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라고 불리는 한이 있어도 살아 돌아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183-184쪽)
침략자의 적반하장격 태도도 물론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태평양 전쟁에 대한 현재의 일본인, 즉 주인공의 태도다. '나라를 위해 죽기까지 했는데, 이런 문제로 남편을 괴롭히지 말자'는 것이 주인공의 결론이다. 태평양 전쟁은 일본인들에게 여전히 '이루지 못한 대의'인 것이다. 아베가 추진하고 있는 소위 '정상국가화'에 따라 일본이 본격 무장에 나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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