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꽃들이 시 한편에... 봄을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
공영해 시인, 네 번째 작품집 <아카시아 꽃숲에서> 상재
이 봄 다 가기 전 너를 찾고 말리라
날마다 수소문하며 골짜기를 누벼왔다,
눈웃음 생생한 기억 노랑 적삼 여며 입은
공영해 시인의 시조 '노랑제비꽃'의 1연이다. 봄이 다 가고 있는데도 노랑제비꽃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날마다 노랑제비꽃이 어디 있는지 수소문을 했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그때 시인의 마음을 휘젓는 눈웃음을 쳤던 기억이 생생한 노랑제비꽃이다.
1연에서 주목할 부분은 '이 봄 다 가기 전에'이다. 그가 노랑 적삼을 입고 눈웃음을 치는 것도, 그 기억이 생생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핵심은 이 봄이 가고 나면 노랑제비꽃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정인(情人)을 찾아헤매는 그 심정, 누가 알리!
그래서 시인은 2연에서 '진달래 분홍치마 펄럭이는 팔부 능선 / 송이가 살다간 물 한 방울 없는 동네 / 그쯤에 너는 있어라, 비가 되어 찾으마'라고 말한다. 비가 되어서, 너의 생명을 이어줄 존재가 되어서 너를 찾겠다는 각오다. 혹여 잘 보이지 않는 것이 혹독한 가뭄 때문이라면 내가 비가 되어서라도 너를 살리고야 말겠다는 결심이다.
살아야 하고, 살려야 한다
▲ 공영해 시조집 <아카시아 꽃숲에서>의 표지 ⓒ 공영해
비린 생 핏빛 유혹 지체 높은 귀비(貴妃)라 해도
할머닌 피는 족족 꽃잎을 따버렸다
떼어야 정을 떼어야 잡초로나 산다시며
아무리 내 마음을 흔들었고, 또 기억에 생생한 노랑제비꽃이라도 살아 있어야 꽃이다. 시인은 작품 '양귀비'에서 그렇게 말한다. 할머니는 지체 높은 양귀비를 살리기 위해서는 꽃잎을 떼어줘야 한다는 세속의 진리를 갈파하셨다. 그냥 두면 목숨을 앗긴다. 꽃잎을 따버리면 양귀비인 줄 모르니 생을 유지할 수 있다. 죽은 양귀비보다 산 잡초가 낫다.
시인은 삶에 대한 예찬은 계속된다. '즐거운 만찬'도 그 중 한 편이다. 마당에 배추를 심어 놓았는데 여기저기 상한 잎이 눈에 띈다. 시인은 '마당에 심은 배추 상한 잎이 보였다 / 이 필시 배추흰나비 애벌레 짓이렷다 / 살의를 눈치챘을까, / 오리무중 / 그 행방'이라고 1연에서 울화를 토로한다.
하지만 2연에 오면 사뭇 다르다. 시인은 '밤중에 수색을 했다, 이럴 수가, 민달팽이 / 그 굼뜬 걸음으로 몇 시간을 기어 와서 / 시식들 하시고 있다'라고 상황을 말한 뒤 '울컥했다 / 찡한 만남'이라고 격정을 내보인다.
핵심은 '그 굼뜬 걸음'이다. 배추 잎사귀를 먹기 위해 그 굼뜬 걸음으로 몇 시간을 기어왔다. 그 광경 앞에서 어찌 울컥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리 배추가 상하기로서니 살의를 가질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의 인생도 그와 같을 것이다.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사람들도 잔치를 연다
시인은 동네사람들이 잔치를 여는 일을 통해 그 이치를 묘파한다. 특히 평민들의 삶은 더욱 그렇다. 무시로 잔치를 열 형편이 안 되는 평민들은 어렵사리 한데 모여 음식을 먹고 술잔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애지중지한다. 그래서 평민들은 그때가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는 때일지라도 결코 준비한 잔치를 포기할 수 없다.
꽃대궐 시끌벅적
잔치 준비 한창이다
이랴아! 쉬지 말고 연자방아 돌리라 보자 떡쇠놈은 멍석 깔고 떡칠 준비 하였느냐 수유댁 꽃물 풀어 소쿠리 층층 찌지미요 명자년은 진달래랑 동글납작 화전이다 청매화 벌떼 불러 바깥손님 맞을 준비 목련댁은 오지랖 넓어 여기 펄럭 저기 펑펑 버선발이 모자란다 앵두 살구는 동풍에 향기 놓아 손님 초대 바쁘구나 홍매아씨 연지곤지 몸단장 막 끝내자 개나리 울을 치고 바람개비 돌리면 하낫둘 민들레 어린이 재잘재잘 몰려들고
꽃샘이 제아무리 시새도 이 잔치판은 못 엎어
봄이 와서 세상에 꽃이 만발하는 정경을 가전체 소설처럼 의인화한 걸작 '꽃잔치'는 동네사람들이 잔치를 연 양 자연 현상을 형상화했다. 당연히 시 작품을 감상하려면 사람 이름들이 꽃이름인 데 주목할 일이다.
홍매아씨는 연지곤지 몸단장을 끝냈고, 목련댁 명자년 수유댁은 손님 맞을 준비에 바쁘다. 청매화와 민들레 어린이도 중의법 명명이다. 꽃샘추위가 살을 에지만 사람들은 결코 잔치판을 접지 않는다. 얼마나 기다리고 준비한 잔치인데! 마을사람들은 모두 홍매아씨를 위해, 그리고 서로를 위해 비가 되려 한다. 시인은 이런 세상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1999년 등단, 삼형제 문집도 발간
공영해 시인은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시인으로 본격 활동을 시작한 때는 1999년으로, <시조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수준 높은 작품을 다수 발표한 공로로 가락문학상과 경남예술인상을 받았다.
시집으로 <모과향에 대한 그리움>, 시조집으로 <낮은 기침>과 <천주산, 내 사랑>을 펴냈다. 형제들도 모두 문인들이어서 삼형제 문집 <방앗간집 아이들>을 발간한 특이한 이력도 있다. 이번에 출간한 <아카시아 꽃숲에서>는 그의 개인 창작집으로는 네 번째 저서이다.
덧붙이는 글
공영해 시조집 <아카시아 꽃숲에서>(2017, 황금알), 119쪽,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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