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 꿈을 꾸었니라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 2018년 2월 1일
▲ ⓒ 조상연
꿈을 꾸었니라.
2018년 2월 1일
-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
퇴근하자마자 네게 온 시집을 정리하느라 (사실은 책장 옆에 그냥 쌓아놓았지만) 아침을 거르고 잠이 들었구나. 잠을 자면서도 흐믓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실룩거림을 느낀다. 자고 일어나니 아주 잠깐 꿈을 꾸었는데 여운이 길다.
네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보다. 사진관에 들린 너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사진관 문을 닫고 화양리 금강제화를 간 일이 있었지. 구두를 사 신키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아직 먼지도 안 묻은 네 구두를 옷소매로 닦아주던 일이 생생하구나. 어느 여름날 편의점 파라솔 아래 맥주를 함께 마시며 너도 기억이 난다고 했지만 그때 아버지 생각은 이랬단다.
"남들은 나이키 운동화 아니면 안 신는다며 길바닥에서 뒹구는데 저자식은 천치도 아니고 어째 말이 없노? 저도 보고 듣는 게 있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구두는 너를 위해 사준 게 아니라 평소 싸구려 운동화만 사 신킨 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게 아니었나 싶다. 구두를 신고 다른 집 아이들처럼 좋아서 깡총깡총 뛰지도 않고 무덤덤한 너를 보며 "이런 자식이 다 있노?" 의아했는데 그 성격은 지금도 여전해서 가끔 서운할 때가 있었지. 좋으면 좋은 표시도 내면 좋으련.
사람마다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이 천갈래 만갈래겠지만 아버지는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아버지가 사랑했던 흔적들을 꺼내보고는 한단다. 시를 읽다보면 잊혀졌던 오래된 일들이 크게 한 바퀴 돌아서 내 곁에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 그게 바로 사랑이었구나" 무릎을 탁 치면서 새삼 그리워지기도 하지.
딸아, 네 생각을 하며 이렇게 시집을 펼쳐놓고 글을 쓰는 아버지 마음이 좋다. 네가 있어 가능한 일이 아니겠느냐. 오늘은 김주대 시인의 시 한 편 읽어주고 싶구나. 네가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페이지 귀퉁이를 조그맣게 접어놓았으니 나중에 펼쳐보도록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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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다
김주대
이유식을 받아먹던 아기가 웃는다
앞 아기가 손을 팔랑대며 따라 웃는다
두 엄마도 웃는다
올려다보던 강아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꼬리를 흔든다
꼬리에 웃음이 떨어진 모양이다
천년의 시작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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