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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들고 죽은 유엔군, 무슨 이유였을까

[박도 기자의 사진 근현대사 16] 전쟁과 죽음

등록|2018.02.08 16:58 수정|2018.02.08 16:58

▲ 1950. 12. 8. 고토리. 장진호전투에서 혹한을 만나 동사한 유엔군 시신들. ⓒ NARA


전쟁은 죽음의 잔치다

"War is death's feast."

이는 영국 속담으로, '전쟁은 죽음의 잔치'라는 말이다. 어떠한 전쟁이든, 전쟁에는 죽음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1950~1953년 한국전쟁 기간 중 사망자는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해 피아 300여만 명으로 추산된다. 쌍방 전선에서 교전 중 전사자는 80여만 명에 이르지만, 나머지는 전쟁 중 폭사, 아사, 학살 등 민간인 피해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번 회에서는 '전쟁과 죽음'이라는 주제로, 이와 관련된 사진들로 엮어봤다. 삼가 전쟁 중 희생된 영령들을 조상(弔喪)하면서 이번 회 기사를 송고한다.

* 이번 기사에는 죽은 사람의 사진이 많습니다. 임신부나 노약자, 어린이 등 심약하신 분들께서는 주의하시길 부탁합니다.

▲ 1951. 5. 24. 중국군 시신을 매장하고자 밧줄로 끌어 옮기고 있다. ⓒ NARA


▲ 1950. 8. 25. 피란민의 시신들. ⓒ NARA


▲ 1950. 9. 29. 대전, 민간인 학살로 보이는 암매장된 시신들로 흉기인 해머가 옆에 놓여 있다. ⓒ NARA


▲ 1950. 9. 29. 전주, 한 아낙네가 학살된 남편의 시신 앞에서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 NARA


▲ 1950. 10. 14. 원산, 민간인 학살로 보이는 시신들. ⓒ NARA


▲ 1950. 10. 24. 진남포, 한 남정네의 시신. ⓒ NARA


▲ 1951. 4. 4. 홍성, 수로에 널브러진 유엔군 시신들. ⓒ NARA


▲ 1950. 11. 14. 함흥. 어느 아버지가 덕산 광산 인근 밭에 늘려져 있는 400여 구의 학살 시신 가운데서 아들을 찾고 있다. ⓒ NARA


▲ 1952. 6. 6. 거제도, 포로수용소 안에서 시위를 주동한 포로가 죽자 동료 인민군들이 영정을 앞세우고 시신을 묻으러 포로수용소 바깥 무덤으로 운구하고 있다. ⓒ NARA


▲ 1953. 5. 16. 유엔군이 한 전우의 죽음에 조총을 쏘고 있다. ⓒ NARA


▲ 1951. 5. 17. 중국군 시신 더미 ⓒ NARA


▲ 1952. 7. 6. 아무렇게나 팽개쳐진 중국군 시신 ⓒ NARA


▲ 1951. 5. 24. 중국군 시신을 매장하고자 가지런히 눕히고 있다. ⓒ NARA


▲ 1951. 4. 부산 유엔군 묘지에 헌화하는 소녀. ⓒ NARA


▲ 1958. 5. 28. 미군 무명용사의 시신을 성조기로 감싼 채 본국으로 송환하고 있다. ⓒ NARA


덧붙이는 글 여기에 수록된 사진 이미지들은 눈빛출판사에서 발간한 박도 엮음 <한국전쟁 ‧ Ⅱ>에 수록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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