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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떡볶이 발언', 무엇이 문제였을까

'황교익 vs. 언론' 논쟁을 지켜보다 생겨난 의문들

등록|2018.02.05 17:52 수정|2018.02.05 17:52
SNS를 보다가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나온 영상을 보았다. 치킨은 맛이 없다는 것이 영상의 내용이었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떡볶이는 맛이 없다'는 그의 발언이 촉발한 뜨거운 논쟁의 연장선인 탓이다. 많은 이들이 황씨의 말을 비판했지만, 과연 그의 말은 들을 가치가 없는 '헛소리'에 불과했을까?

'이명박 정부가 떡볶이 시장을 밀어줬다'와 '맛없는 음식이다' 사이의 연결고리?

▲ <수요미식회>에서 한 ‘떡볶이는 맛이 없다’라는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의 발언은 논란을 불렀다. ⓒ 수요미식회 갈무리


논란은 잘 알려졌다시피 <수요미식회>에서 한 '떡볶이는 맛이 없다'라는 발언에서 시작되었다.

"많이 먹게 하는 음식이 맛있는 음식이라고 착각들을 한다. (중략) 계속 먹게 만드는 음식이니까 떡볶이는 맛없는 음식이다. 한국 사람들이 떡볶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익숙해져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떡볶이밖에 먹을 수 없던 (60년대) 상황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떡볶이는 그렇게 맛있는 음식, 지금까지도 맛있게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고 보기 힘들다."

"개개인의 기호가 모이면 사회적인 맛이라고 하는데, 이런 음식을 맛있다고 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떡볶이를 맛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

"먹을 기회가 많아지니까 떡볶이를 익숙한 맛으로 기억하고 추억을 더 해서 나는 원래 떡볶이를 좋아하는 유전자가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된다."

이런 발언들이 논란이 되자 황교익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맛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주입'되는지 시리즈로 글을 올리는데, 갑자기 여기서 이명박 정부가 등장한다.

물론 이명박 정부의 등장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는 무려 18건의 연속된 포스팅을 통해 당시 MB정부 때 떡볶이 사업을 진흥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음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떡볶이가 한식 세계화의 선두주자가 되는가 하면, '떡볶이 전문가 과정'이 개설되는 등 황씨가 말했듯 먹을 기회도 많아지고 사회적으로 많이 띄워주는 모양새가 있긴 있었다. 황씨는 그리고 '먹는 일이 곧 정치적인 일인 줄 사람들은 모른다'라는 결론을 낸다.

▲ 황교익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맛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주입’되는지, 특히 MB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집중조명한다. 하지만 그것과 개인의 입맛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 황교익 페이스북 갈무리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먹는 일은 곧 사회적 맥락에 따라 구성되고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역으로 사회적 맥락과 정치적 의미가 없는 채로 먹는 일 또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개인의 입맛에 사회적 맥락과 정치성이 얼마큼 개입되어 나타나는지 수치화하여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없다면, 애초에 이명박 정부가 떡볶이를 밀어주었다는 사실로부터 떡볶이가 맛이 없다는 결론이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라는 사회적 맥락과 정치성이 개입되지 않던 시절에도 떡볶이는 있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먹었다.

물론 '떡볶이가 맛이 없다'라는 주장 자체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황교익 개인의 '취향'이자 '의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결론을 내는 논리의 구조다. 개입 정도의 과학적 규명 없이 '이명박 정부가 세뇌했기 때문에 맛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흔한 음모론에 불과하지 않나. 애초에 입맛과 사회적 맥락, 정치성이 얼만큼의 비율로 개입될 수 있느냐는 규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음모론이라고 하기에도 힘들다.

'떡볶이는 정말 맛없나'라고 받아친 언론의 대응마저도...

▲ '떡볶이 논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떡볶이가 맛이 없다는 그의 ‘의견’은 개인의 취향 차원에서 충분히 내놓을 수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한겨레>는 그렇지 못했다. ⓒ 한겨레 기사 갈무리


황씨의 발언이 담고 있는 문제들이 이렇다면, 그를 비판하는 쪽은 문제가 없었을까? 애초에 이 발언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떡볶이는 맛있는 음식이다'라는 논리로 반박을 해서는 안된다. 애초에 떡볶이가 맛이 없다는 황교익의 '의견'(이것이 '의견'이라는 '사실'이 중요함은 위에서 설명했다.)은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실과 의견을 넘나들며 조악한 논리구조로 그것들을 이어보려는 무리수를 비판해야 한다.

하지만 <한겨레>는 '바로 그 오류'를 저질렀다. <한겨레> 1월 24일 자 기사의 제목은 무려 '황교익과 '떡볶이 논쟁'... 정말 떡볶이는 맛이 없는가?'이다. 벌써 패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논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떡볶이가 맛이 없다는 그의 '의견'은 개인의 취향 차원에서 충분히 내놓을 수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떡볶이가 맛이 있는지 아닌지를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는 것은 사실 무의미하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가 페이스북을 통해 이 기사를 쓰기 위해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고 밝혔는데, 황교익의 '떡볶이 사회적 세뇌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문 교수는 '떡볶이 열풍에 대해 부분적으로는 설명할 순 있으나 전체를 설명할 순 없다'라고 대답함과 동시에 'MB 때 정말 떡볶이 진흥의 노력이 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그런데 기사에서는 문 교수의 인터뷰가 통째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문 교수의 지적 이후 한겨레 기사는 몇 시간 후 수정되어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한다)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결국 수정 전의 기사는 오롯이 황교익을 공격하기 위해 쓰여졌고 그 과정에서 문 교수 같은 의견은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날아가 버렸다. 이 촌극을 어떻게 봐야 할지 난감하다. 황교익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불필요한 논리구조까지 동원했고, 그런 황교익을 비판하기 위해 언론은 비판지점이 아닌 부분을 강조해서 기사를 써버렸다. 이 흥미로운 논쟁이 소모적인 진흙탕 싸움이 되어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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