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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진동에도 깜짝깜짝 놀라"… 청심환·신경안정제 다시 찾는 주민들

"또 지진"… 되살아난 지진공포 속 주민 트라우마 호소

등록|2018.02.11 16:31 수정|2018.02.11 16:31
(포항=김용민 최수호 한무선 기자) "건물 안에 들어가기 무섭습니다. 그렇다고 추운데 밖에 있을 수도 없고…"

11일 오전 경북 포항시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넉 달째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재민 김모(66)씨는 새벽에 들이닥친 지진에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난해 11월 규모 5.4 강진의 악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대피소에 같이 머물던 이재민 A(62·여)씨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워 119구조대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인근 북구 대흥동에 사는 주민 2명도 불안함을 호소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흥해체육관 대피소 임시진료소는 최근 들어 찾는 발길이 많이 줄었다가 이날 아침부터 다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청심환, 신경안정제 등 수요가 많이 줄어 얼마 남아있지 않았던 약품도 포항시 약사회 도움으로 속속 채워졌다.

대피소에 머무는 이재민 300여 명이 거의 예외 없이 "많이 놀랐다"거나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했다.

이재민 박모(65·여)씨는 "지난해 11월보다 지진 규모가 작다고 하는데 흔들리는 정도는 더 큰 것 같았다"며 "불안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재민 이모(70·여)씨는 "휴대전화 진동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랄 지경이다"며 "좀 진정되나 싶었는데 다시 이런 일이 생겨 불안해 죽겠다"고 하소연했다.

진앙인 흥해읍 바깥 지역이라고 별로 다르지 않다.

지난해 11월 강진 이후 80차례가 넘는 여진이 발생하면서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닌가 하는 막역한 공포를 느끼는 시민이 적지 않다.

북구 용흥동 주부 정모(44)씨는 "아이들과 남편 등 가족이 잠에서 깨어 한동안 어쩔 줄 몰라했다"며 "지난 4개월 가까이 지진 걱정에서 자유로운 날이 없었던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남구 대이동 김모(60)씨는 "지난해 강진 이후 크고 작은 진동에 시달리다 보니 좀처럼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며 "규모 2.0 정도도 생각보다 큰 흔들림을 느끼는데 3.0∼4.0 규모 지진은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아파트에 사는 일부 주민은 엘리베이터 이용도 최대한 자제하는가 하면 생수와 식료품, 상비약 등이 든 생존 배낭을 다시 점검하는 등 불안이 일상화하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포항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정신상담에도 다시 힘을 기울이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지진 직후부터 지금까지 주민 8천800여 명이 상담을 받았다.

그만큼 지진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큰 영향을 받는 주민이 많다는 얘기다.

그러나 올해 들면서 상담 건수가 큰 폭으로 줄어드는 등 주민들이 심리적으로 안정을 되찾아가는 분위기였다.

포항시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간호사, 심리상담사 등으로 꾸려진 기존 팀을 다시 정비하고 정신건강 핫라인(☎ 1577-0199)을 점검하는 등 지진 트라우마 최소화에 부심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현장 상담이 여의치 않은 홀몸노인 등을 위해 방문 상담도 하는 등 지진으로 인한 정신적인 상처를 조속히 치유하는 데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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