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이 김 성희롱한 진행자에 '해고' 철퇴, 한국은?
[주장] '이런 일은 용서할 수 없다'는 단호함이 느껴진 대응... 우리 사회도 바뀌어야
▲ [올림픽] 웃음 터진 클로이13일 강원도 평창군 휘닉스파크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금메달 주인공인 재미교포 클로이 김이 기자회견을 통해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3일, 미국의 클로이 김(17세, 미국 나이)은 천재적인 실력을 보여주며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미국의 방송인 패트릭 코너(Patrick Connor)는 14일, '바스툴 라디오(Barstool Radio)'의 한 라디오 쇼인 'Dialed-In with Dallas Braden'에서 클로이 김을 언급하며 성희롱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4월 23일, 클로이 김의 18번 째 생일이 이제 별로 안 남았다"며 "그녀가 18살이었다면, '작고 귀여운 것(a little hot piece of ass, '섹시하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이라고 해도 괜찮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라디오 쇼의 본 진행자 브래든은 "그만하세요"라고 반응했다.
이 발언을 한 뒤, 코너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다음 날, 그는 뒤늦게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하찮고 역겨운 발언이었다"며 "클로이 김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가 뒤늦게 사과문을 올린 것에 대해 한 트위터리안이 "그걸 이제 알았느냐"라고 묻자, "사실 Deadspin의 기사 전까지는 별 생각 없었고, 처음 내 태도는 (비판에 대해) 방어적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도를 지나쳐 잘못을 저질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답했다.
▲ 패트릭 코노어의 트위터 갈무리 ⓒ 패트릭 코노어
코너는 미국의 라디오 방송국인 KNBR에서 'The Shower Hour with Patrick Connor'이라는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었는 데, 해당 발언으로 인해 KNBR에서 해고됐다. KNBR의 프로그램 감독인 제레미아 크로웨(Jeremiah Crowe)는 미국의 매체 Deadspin(링크)에 "패트릭 코너는 더이상 큐뮬러스 미디어(Cumulus Media)와 함께 할 수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코너는 문제의 발언을 한 '바스툴 라디오'에선 해고 당하지 않았다. 논란이 불거진 후, 코너가 출연한 방송에서 해당 발언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댈러스 브래든은 방송에서 코너에게 욕을 섞어가며 "네가 한 잘못은 네가 처리해. 계속 이런 식이면 이번 세번째 방송(문제의 발언을 한 것이 코너의 2번째 방송이었다)이 네 마지막 날이 될 거야. 우린 이렇게 일하지 않아"라며 "이건 전혀 가볍지 않은 문제"라고 비판했다.(링크)
이에 코너는 "클로이 김과 그의 아버지에게 죄송하다"며, "그들은 멍청하고 바보같고 미성숙한 나의 언급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한편, 클로이 김은 이에 대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논란 이후 코너가 밟게 된 일련의 절차가 가혹한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희롱 발언을 내뱉은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해당 발언을 한 방송에서 공식적으로 비판을 받고, 방송에 부적절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일부 프로그램에서 내려왔다. 한편으론, 그가 완벽하게 책임을 졌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코너는 문제를 발언을 했던 방송을 여전히 진행하고 있으며, 클로이 김의 가족이 아닌 그 아버지에게 대표로 사과의 말을 전했다.
그럼에도 이 '당연한' 대응이 좀 놀랍기도 했다. '이런 일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경고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료 진행자인 브래든은 침묵하지 않고 화를 내며 약 3분 동안 코너에 대한 비판을 공개적으로 쏟아냈다. KNBR 측도 '가차없이' 그를 해고했다.
그동안 '일단 사과하고 좀 눈치보다 복귀하면 돼', '지금은 여론이 안 좋으니까 일단 하차시키자' 식의 대응이나 '사과했으면 됐지', '이 정도 일로 난리야'라는 한국 사회의 시선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한국 사회에서 성희롱 발언은 흔히 유머 코드로 해석된다. 또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도 자연스럽다. JTBC의 <아는 형님>과 같은 프로그램이 이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한 여성 아이돌 가수가 출연한 방송에서 남성 출연자는 "(여성 가수와) 키스신은 저 친구가 하고 베드신은 제가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또 다른 방송에서 남성 가수가 야동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적도 있다. 이 불편한 발언들은 모두 농담, 혹은 재밌는 일화 정도로 치부된다.
이뿐일까. 성범죄 혐의를 받은 남성 연예인들에게 옹호성 발언이 쏟아지고, 피해자는 '꽃뱀'으로 손가락질 받는 장면도 흔하다. 실제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 등으로 유죄를 받은 남성 배우들이 자숙 기간을 보낸 뒤 복귀해,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경우도 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나 방송도 이정도인데, 한국 사회 전반은 어떨까. 여성을 향한 폭력에 무감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간 가려져왔던 문제들이 #미투 운동 등을 통해 이제서야 터져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남성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사내새끼가 실수할 수도 있지', '남자들은 원래 그런 거야'라며 용인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여성의 피해는 부차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다. 성범죄가 만연해질 수밖에 없다.
이 침묵을 우리가 계속 깨야 한다. '사회적으로 사소한 것'이라며 용인됐던 것들에 계속해서 'No'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잭슨 카츠는 TED 강연 '여성 폭력은 결국 남성의 문제'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자가 자리에 없는 상황에서도 당신이 성차별적인 발언을 듣거나 여자를 희롱하고 비하하는 말을 한다면, 같이 웃거나 못 들은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야, 그거 안 웃겨'라고 해야 합니다. ...현장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침묵은 곧 동의이고 공모 아닌가요? ...그동안 남성들 사이에는 엄청나게 많은 침묵이 있었습니다. 그 침묵을 깰 필요가 있습니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사소하게 여겨지던 문제들에 대해 동의의 침묵을 깨길 바란다. 더이상 피해자가 침묵해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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