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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 2018 2월 18일

등록|2018.02.18 14:00 수정|2018.02.18 14:48

▲ ⓒ 조상연


무엇을 해도 요란스럽지 않고 조용한 딸에게.

편지 제목이 좀 생경스럽겠지만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이라고 했다. 가만히 누워 네 생각을 하다가 문득 미국의 여류시인 글로리아 밴더빌트(Gloria Vanderbilt)의 '사랑은 천천히 오는 것'이란 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도 요란스러운 아버지와 달리 매사에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네가 연애마저도 하는 듯 마는 듯, 그런 모습을 보며 내 딸은 너무 일찍 철이 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달이 하루 하루 커지듯 조용하고 더디게 오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 했던 밴더빌트 시인의 시가 아니어도 커피포트의 물 끓는 소리처럼 요란스러운 드라마 속 사랑이 아닌 "저 둘이 진짜 연애를 하는 게 맞기는 맞는가?" 의심이 들 정도로 조용한 너의 연애를 보며 아버지는 믿음이 가는구나.

아버지는 너의 엄마를 만난 지 3개월만에 결혼을 했는데 그 짧은 연애를 하는 동안 아버지의 고향인 홍천과 청량리 시장 그리고 미아삼거리를 발칵 뒤집어놓을 정도로 요란스러웠다. 이랬던 아버지의 눈에 비친 너희들의 연애는 가을바람에 무심한듯 흔들리는 신작로의 코스모스처럼 편안함을 느낀다.

마음에 들다

김선태

너를 향한 마음이 내게 있어서
바람은 언제나 한쪽으로만 부네.

나는 네가 마음에 들기를 바라는 집
대문도 담장도 없이 드나들어도 좋은 집.

마음에 든다는 것은 서로에게 스미는 일
온전히 스미도록 마음에 안방을 내어주는 일.

하지만 너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사람
나는 촛불을 켜고 밤늦도록 기다리는 사람.

그렇게 기약 없는 사랑일지라도
그렇게 공허한 사랑일지라도
너를 향한 마음이 내게 있어서
바람은 언제나 한쪽으로만 부네.

천년의 시작 '한사람이 다녀갔다' 16쪽

아버지더러 사람의 삶을 딱 두 부류로 나누라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서 빨주노초 색을 발견하는 사람,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에서 도레미파를 듣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세상 모든 것에서
쉽게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
사랑이야 좀 더디게 오면 어떠하랴

내 귀에 들리는 모든 것이 도레미파에 솔라시도요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빨주노초에 파남보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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