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 평범한 아버지가 두 딸에게 주는 선물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 2018년 2월 19일
▲ ⓒ 조상연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오늘은 아버지가 쓸쓸하구나. 이런 일 가지고 기죽을 아버지는 아니지만,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으니...
두 달 전, 모모 문학 잡지에 내 글이 소개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제 교보문고에서 그를 만났는데 안 되겠단다. 내가 언제 글 실어달라고 했던가? 왜 안 되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래요" 웃고 말았는데 잡지사에서 왜 못 싣겠는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한다.
첫째,
등단한 작가도 아닐뿐더러 시집을 낸 시인이 아니어서 어렵다.
둘째,
등단도 안 한 사람의 글이 너무 뛰어나면 기성 작가들의 위상이 떨어진다.
셋째,
농심이라는 대기업의 이름값이 있어서 검토를 해봤지만 알고 봤더니 경비원이더라. 글쓴이를 경비원이라고 소개를 할 수 없지 않으냐? 누구나 다 글을 쓰는 것이라면 대학은 왜 다니며 문창과는 왜 있느냐? 한마디로 이런 사람의 글을 싣는다는 것은 잡지사의 위상을 떨어트림과 동시에 기존 작가들을 기만하는 것이다.
- 이상했다. 전혀 서운하지가 않았다. 그의 말이 흥미로웠을 뿐이었다. 나는 오로지 나일 뿐이다. 나의 사유에는 시비가 없다. 나의 사유는 동과 서를 가르고 시공을 초월한다. -
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수필가 또는 시인 타이틀이 필요치 않은 사람이다. 또한, 아버지는 시인이 될 만한 재목이 아니다. 억지로라도 그 이유를 대라면 못 댈 것도 아니나 아버지 평소의 생각이 이렇다.
우선 아버지는 외로움을 모르는 사람이다. 절절하게 그리워할 만한 사람도 없다. 문득문득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리울 뿐이다.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몸부림치며 울다가 기가 꺾여 까무러치기도 했지만 '아, 이런 게 슬픔이구나' 먼 훗날 알았다. 왜냐하면, 그 뒤로 눈물 흘릴 일이 없었으니까. 예전에 수술실 들어갈 적에 무서워서 운 적은 있어도 가슴이 아파서 운 적도 없었다.
들길에 소복이 피어있는 안개꽃을 보면 남들은 가던 길도 멈추고 사진을 찍어가며 예쁘다 곱다 입으로 호 불어보는 낭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가던 길이나 어서 가자며 재촉하니 아름다움이 뭔지도 모른다. 동백은 빨간 꽃, 백합은 하얀 꽃, 수선화는 파란 꽃, 국화는 장례식장에서 흔히 보는 꽃, 내가 아는 꽃은 항상 이렇다. 불의를 보며 분노를 하지만 이내 잊히고 수많은 철학서를 읽지만, 남들과 사상을 논할 만큼 해박한 지식도 없다.
아버지가 시인이 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아버지는 너희들과 아버지의 삶을 지지해주는 평범한 것들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들은 아버지가 시인이 아니어서 글을 실어줄 수 없다지만 아버지가 쓰는 글은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아낙도 이해하는 평범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다.
평범하지 않은 것들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평범하다는 것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상식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것들은 재물이 있고 없고 배우고 못 배우고 사람을 구분 짓기 때문이다.
아래의 시는 사랑하는 딸들에게 평범한 아버지가 주는 선물이다.
-
붉은 꽃.
조상연
아무런 뜻도 없이
그냥 피지는 않았으리
하늘을 향해 '퉤' 하고
가슴을 치는 사연 하나 없이
무작정,
무작정 붉어지지는 않았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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