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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트트릭 아드리아노 '마무리 골은 이동국을 위해'

[2018 AFC 챔피언스리그 E조] 키치 SC 0-6 전북 현대

등록|2018.02.21 09:40 수정|2018.02.21 09:40
새로운 팀 유니폼을 입고 뛴 첫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아무리 아드리아노가 대전 시티즌, FC 서울을 거치며 그 실력이 충분히 검증된 골잡이라고 하지만 아시아 정상의 클럽 중 하나인 전북 현대에 와서 뛴 첫 경기부터 탁월한 골 결정력을 발휘할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최강희 감독이 이끌고 있는 전북 현대(한국)가 한국 시각으로 20일 오후 9시 홍콩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8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E조 키치 SC(홍콩)와의 어웨이 경기에서 새 골잡이 아드리아노의 해트트릭 활약에 힘입어 6-0의 대승을 거두고 단독 선두에 올라섰다.

이승기가 만든 승리의 발판, 아드리아노가 끝내다

홈 팀 키치 SC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올라온 챔피언스리그 본선 무대를 겨냥하여 한국 축구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우루과이 출신 베테랑 골잡이 디에고 포를란을 데려왔다. 그는 전북 현대의 라이언 킹 이동국과 동갑내기여서 이 만남이 더욱 뜻깊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이동국은 벤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57분에 그라운드를 밟았고 디에고 포를란은 선발로 나와 72분에 벤치로 물러났다. 실제로 둘이 골잡이로서 대결을 펼친 시간은 15분에 불과했지만 팀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가는 너무도 분명했다.

디에고 포를란은 미드필더 겸 골잡이 역할을 모두 해내야 했다. 키치 SC가 전북 현대에 비해 챔피언스리그 본선 경험도 이번이 처음이라 경기력 차이를 숨길 수 없었다. 또 한 명의 외국인 선수 알렉스를 맨 앞에 두고 뒤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처리해야 하는 역할 바로 그것이었다.

반면에 이동국의 동료 골잡이는 비교적 많은 편이다. 러시아 월드컵을 겨냥한 한국 국가대표 간판 골잡이로 떠오르고 있는 김신욱도 있고 2016년 이 대회 득점왕(13골)에 오른 아드리아노도 이번에 데려왔기 때문에 동갑내기 디에고 포를란에 비하면 부담이 훨씬 덜하다고 하겠다.

어웨이 팀 전북은 미드필더 이승기의 과감한 몸놀림 덕분에 일찍부터 점수판을 넉넉하게 만들 발판을 마련했다. 경기 시작 후 5분 만에 이승기의 드리블을 막기 위해 키치 SC 주장 로콴이가 반칙을 저질러 페널티킥이 선언된 것이다.

11m 지점에 공을 내려놓은 주인공은 전북의 새 골잡이 아드리아노였다. 상대 골키퍼 왕젠펑의 세이브 타이밍을 빼앗는 아드리아노 특유의 페널티킥은 오른쪽 구석으로 낮게 깔려들어갔다. 단 6분 만에 새내기로서 첫 경기 첫 골의 감격을 동료들과 누린 것이다.

종료 직전 쐐기골은 동국이형에게

아드리아노의 탁월한 골 감각은 14분에 이어진 두 번째 골에서 완벽하게 입증됐다. 오른쪽 윙백 이용의 1차 슛이 키치 SC 골키퍼 완젠펑의 선방에 막히고 나온 것이 이승기의 오른발 2차 슛까지 이어졌지만 역시 왕젠펑의 슈퍼 세이브는 빛났다. 하지만 상대 골키퍼의 손끝에 공이 맞고 굴절되는 각도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아드리아노의 위치 선정이 놀라웠다. 완승의 조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추가골의 시점이라 할 수 있는데 아드리아노는 해트트릭 가능성을 전반전 15분도 안 되어 밝힌 셈이다.

25분에는 왼쪽 윙백 김진수가 비교적 먼 거리에서 티아고의 패스를 받아 과감한 왼발 슛을 날려 추가골을 터뜨렸다. 32분에는 득점 선수와 도움 선수의 역할을 바꿔 티아고가 활짝 웃었다. 김진수의 낮은 왼쪽 크로스를 향해 티아고가 골문 앞으로 달려들며 몸을 날린 것이다.

그리고는 전반전 종료 직전에 아드리아노에게 정말로 해트트릭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에도 이승기가 얻어낸 페널티킥이었다. 아드리아노는 첫 번째 페널티킥 방향과는 반대로 차 넣어 그물을 시원하게 흔들어댔다. 11미터 지점에 놓은 공을 향해 매우 느린 걸음으로 다가와서 상대 골키퍼의 타이밍을 빼앗는 노련함과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슈팅 기술이 어우러진 작품이었다.

이렇게 전반전에만 5-0 점수판을 만든 전북 선수들은 후반전에 더 많은 골을 기대했지만 키치 SC 선수들의 저항이 거셌다. 그들은 수비에만 치중한 것이 아니라 골잡이 알렉스를 중심에 두고 과감하게 역습을 전개하여 전북과 당당히 맞서고자 했다.

하지만 '홍정호-최보경-이재성'으로 이루어진 전북의 쓰리 백은 이 경기를 통해 프로 데뷔전을 치른 골키퍼 송범근의 클린 시트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경기 종료 직전에 전북 현대의 마무리 골이 하나 더 나왔다.

예상보다 많은 골이 터졌기에 싱겁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전북 선수들에게는 특별한 추가골이었다. 후반전 교체 선수 이재성의 가로채기 직후 해트트릭의 주인공 아드리아노가 자신의 네 번째 골을 터뜨릴 슛 각도가 열렸지만 욕심내지 않은 것이다. 바로 이동국을 빛내는 감각적인 전진 패스를 넣어주었다.

이 공을 받은 이동국은 엇박자 슛 타이밍으로 키치 SC 골키퍼 왕젠펑을 완전히 속여 넣었다. 후반전 점수판을 0-0으로 끝내기 싫어서 그런 것처럼 후반전 추가 시간 3분 만에 이루어진 아름다운 마무리 골이었다.

2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노릴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아드리아노가 자신의 네 번째 골 기회를 이동국에게 분명히 양보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일주일 전 전주성의 기억을 떠올리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J리그의 다크 호스 가시와 레이솔에게 먼저 두 방을 얻어맞고 휘청거리던 팀을 후반전 교체 선수 이동국이 극적으로 구해낸 것이다.

▲ 전북 현대의 이동국 선수. (자료사진) ⓒ 연합뉴스


당시에 이동국의 명품 회전에 이은 감아차기 대역전 결승골을 생각하면 새내기 골잡이 아드리아노가 존경할 수밖에 없는 명장면 바로 그것이었다. 아드리아노 자신의 골 감각도 특별하지만 팀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이동국의 존재감은 실로 놀라울 뿐이다.

이제 이들이 엮어내는 2018년판 전북의 닥공은 오는 3월 1일 오후 2시 전주성에서 더 뜨겁게 시작한다. 리그 챔피언과 FA컵 우승 팀이 맞붙는 슈퍼 컵 성격으로 K리그 1 울산 현대와의 공식 개막전이 열린다. 축구의 봄이 성큼 다가왔다.
덧붙이는 글 2018 AFC 챔피언스리그 E조 결과(20일 오후 9시, 홍콩 스타디움)

★ 키치 SC 0-6 전북 현대 [득점 : 아드리아노(6분,PK), 아드리아노(14분), 김진수(25분,도움-티아고), 티아고(32분,도움-김진수), 아드리아노(45분), 이동국(90+3분,도움-아드리아노)]

◎ 키치 SC 선수들
FW : 김신욱(57분↔이동국), 아드리아노
MF : 김진수, 이승기(56분↔이재성), 손준호, 티아고(77분↔한교원), 이용
DF : 홍정호, 최보경, 이재성
GK : 송범근

◇ E조 현재 순위
1 전북 현대 6점 2승 9득점 2실점 +7
2 텐진 취안젠 4점 1승 1무 4득점 1실점 +3
3 가시와 레이솔 1점 1무 1패 3득점 4실점 -1
4 키치 SC 0점 2패 0득점 9실점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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