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 여행은 세상을 통으로 볼 기회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 2018 2월 26일
▲ ⓒ 조상연
저만치 밝아오는 아침이 아름답다. 까만 하늘에 붉은 빛으로 그라데이션을 이루며 떠오르는 해가 아름답다. 오늘 같은 날은 일상에 실망한 마음일랑 접어두고 오인태 시인이 사람이 고여드는 따듯한 곳이라며 장담하는 미조포구, 그곳에 가고 싶다.
바다를 떠돌던 고단한 배들마저 밤이면 찿아와 마음을 풀어놓는다며 '미조포구'라는 시에서 장담한 그 미조포구 촌놈횟집에 가서 도다리 한 점 초고추장에 푹 찍어 소주 한 잔 했으면 싶다. 미조에 가서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첫차 타고 훌쩍 떠났다가 막차 타고 올라오겠다는 거다. 작은딸이 잘 하는 그런 거 한 번 해보겠다는 거다.
아버지는 마음 먹으면 떠났다가 마음 변하면 중간에서라도 되돌아올 줄 아는 딸들이 부럽구나. 때로는 유명한 빵 하나 먹어보겠다고 첫차 타고 군산으로 떠났다가 막차로 되짚어 올라오는 너희들이 부럽다. 아버지는 24살 때 너의 엄마를 만나서 바다를 처음 보았고 나이 오십 중반이 되어 제주도행 비행기를 처음 타보았다.
여행을 너희들 못지 않게 좋아하고 오토바이로 엄마와 함께 전국일주를 열손가락이 모자르게 떠나봤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땅을 벗어나본 적이 없구나. 그게 좀 아쉽다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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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딸이 여행에서 돌아왔다.
"여행 즐거웠어?"
"공중부양하는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왔어요."
"공중부양 사진 찍으러 비싼 비행기값 없애가며 여행갔냐?"
"여행가면 특별한 뭘 해야 돼요? 공중부양이 보기에는 쉬운 일 같아도 꽤 어려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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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여행은 세상을 보기 위해 떠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뜨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는 류시화 시인의 말이 생각나는구나.
아버지는 여행을 가겠다며 회사까지 그만두는 용기를 가진 너희들이 황당하기도 하지만 부럽다. 여행을 하며 신기한 돌을 보았노라, 여행길에 만난 나뭇가지를 흔드니 바람이 일더라, 못보던 꽃이 있더라, 만나는 새로운 것마다 확인을 해가며 사진으로 찍어 아버지에게 보내줄 때 마음이 참 좋았다.
여행을 즐길줄 아는 너희들에게 아버지가 엄마와 여행을 다니며 지은 시가 있단다. 아직 젊은 너희들이 이해할지 모르겠으나 시가 어찌 이성적 판단에만 기대겠느냐. 느낌이라는 것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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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맞춤
한 때,
오토바이 뒤에 아내를 태우고
들길로 숲길로 다니다가
예쁜 들꽃 피어 눈에 뜨이면
꽃잎 따서
내가 먼저 입맞춤 한 뒤에
아내의 입술에 대어주고는 했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볼우물이 살짝 패이며 배시시
꽃잎처럼 발갛게 웃고는 했었다
이제는 나도 늙고 아내도 늙었다
예쁜 들꽃도 눈에 잘 안 뜨일뿐더러
혹, 눈에 뜨여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우면
배 고프니 어여 밥집이나 가자며 눈을 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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